느리게 쫓아오는 나의 시간

by 윙글

11월 18일


뻑뻑한 눈을 손으로 누르며 집으로 향하는 퇴근길.

역시나 택시 기사님의 운전은 다이나믹하구나...

캄캄한 밤길에 이리저리 휙휙 끼어들며 속도를 내는 택시 안에서 창밖을 바라보고 있었다.


'나는 멀미를 하지 않는다. 멀미를 하지 않는다...'

마음속으로 주문을 외우던 그때.


쾅!

몸이 앞으로 화악 쏠리며 안전벨트가 텅, 내 몸을 고정시켰다.


'사고 났구나!'


"괜찮으세요?"

운전기사 아저씨의 물음에 "네..."라고 대답하면서 제일 처음 든 생각은 하나였다.


'하아... 보험 부르고 어쩌고 저쩌고 하고 나면 한참 걸릴 텐데... 빨리 가야 되는데... 우리 애 밥...'


다행히 나의 걱정은 이어지지 않았다.

"이게..., 이 차가 이래요. 하아... 차가 지 맘대로 급브레이크를 밟아서..."

운전기사 아저씨는 자동 출동방지 시스템 때문이라는 말을 하며 다시 주행을 시작했다.


'사고 난 것이 아니구나. 다행이다. 집에 갈 수 있구나.'

나는 가슴을 쓸어내렸다.


그런데 무슨 충돌방지 시스템이 접촉사고 난 것처럼 이렇게 급하게 제동을 하는 것인지...

무슨 운전을 어떻게 하면 차가 스스로 급제동을 할 만큼 앞차와 붙어가는 것인지...

속으로 불만이 올라왔지만, 말을 꺼내봤자 집에 가는 시간만 늦어진다.

콩닥거리는 심장과 불만을 조용히 도닥였다.




다음날 아침, 사무실에서 일을 하다 저절로 앓는 소리가 흘러나왔다.

당연하게도 어디 아프냐는 사장님의 질문이 이어졌다.

(이번 겨울은 다들 아픈 것도 사장님 허락받고 아파야 한다고 하는 상황이다)


어제 퇴근길에서 차량 급제동이 있었고 그때는 아무렇지 않았는데 아침에 일어나니 목이 잘 돌아가지 않는다고 설명을 했다.


이야기를 들은 직원들은 택시 차량 번호 기록이 남아있냐는 말과 함께 이런저런 경험담들이 흘러나왔다.


그러다 내 입에서 나온 중얼거림.

"우리 애 밥 해줘야 하는데 사고 나서 늦는 줄 알고 얼마나 놀랐는지..."


그리고 터져 나온 웃음소리.

예상치 못한 직원들의 웃음에 나는 눈을 꿈벅거렸다.


그 상황에 그런 생각을 했냐...

교통사고 나는 데 애 밥 걱정 하셨냐...

사장님과 직원들이 다들 웃으며 농담을 주고받았다.


듣다 보니 나도 저절로 웃음이 흘러나왔다.

내가 그랬었구나...


사고가 났다고 인지하는 순간 나는, 나를 포함한 누군가가 다쳤을까 걱정을 한 것도 아니었고, 누구의 과실인가를 살펴볼 생각을 한 것도 아니었으며, 보험료를 받을 생각을 한 것도 아니었다.

그저 엄마를 기다리는 아이가 집에서 혼자 쫄쫄 굶을까, 그 걱정이 전부였다.


물론 정말로 큰 사고가 난 게 아니기 때문에 그런 생각도 할 수 있었던 것이겠지.

하지만 쿵하는 순간에는 분명 가장 먼저 떠오른 생각이 아이의 밥이었다.


내가 왜 그랬을까?


할 일을 꼭 해내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강한 탓인지, 아이를 사랑하는 엄마의 모성애인지...

그건 잘 모르겠다.


다만 내가 어떤 돌발 상황이 닥쳤을 때, 그 상황의 본질을 보는 것보다 내가 해야 하는 일이나 내 아이만을 바라본다는 것은 분명하다.


사실, 오래전부터 어렴풋이 알고는 있었다.

당황하는 순간이 오면 항상 사건의 본질에서 멀리 떨어져 버리는 나의 본성을.

그래서 어떤 일이 일어나고 나면 그 일을 실감하기가 오래 걸린다는 것을.


그래서 아직도 어릴 때 살았던 집이 꿈에 나오고,

나이 40이 넘었는데 학교에 다니는 꿈을 꾸고,

가끔씩 남편과 아이들이 낯설게 느껴질 때도 있을 만큼...


나의 시간과 실제 시간의 차이가 멀어지기도 가까워지기도 한다.


경주마처럼 어떤 일을 해야만 한다는 강박이 그 멀어지는 시간의 간격을 억지로 붙여 놓으며 달려가고 있다.

차분히 앉아 나를 돌아보고, 주변을 둘러보고, 감정을 느끼고, 생각을 정리하고...

그래야만 느리게 쫓아오는 나의 시간이 가까이 다가오려나 보다.


나는 지금 이렇게 살고 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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