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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영옥 Dec 15. 2021

꿈이 점점 멀어져 가는 나에게

뮤지컬 <맨 오브 라만차>

인생 노래, 인생 사진, 인생 맛집, 인생 드라마... 내 인생에 손꼽을 만한 무언가는 '인생' 뒤에 붙일 수 있는 명사의 수만큼 많을 것이다. 그중 내게 '인생 뮤지컬'이라면 이 작품이 아닐까.


초연 당시 두 번을 관람했고 그로부터 정확히 10년 후 다시 보게 된 뮤지컬 <맨 오브 라만차>

2005년 초연 시 두 번 관람, 10년 후 관람

뮤지컬 <맨 오브 라만차>가 나의 인생 뮤지컬인 이유는 인생의 중요한 순간에 힘이 되어줬기 때문.

 

2005년, 새 직장을 다니기 시작한 지 이제 막 넉 달이 지났을 즈음 예상도 못했던 갑작스러운 제안을 받았다. 길게 고민할 시간도 없어서 바로 그다음 날 결정을 내려야 했다. 그리고 새로 일을 시작한 직장을 그만두고 후임을 찾아주고 주변을 정리하고, 제안을 받은 날로부터 정확히 21일 후 중국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중국에서 일을 하게 되었다.) 


그 제안을 받기 바로 전에, 그리고 중국으로 떠나기 전에 한국에서 마지막으로 본 공연이 바로 <맨 오브 라만차>(당시 제목은 <돈키호테>)였다. 그때까지 나는 일주일 이상 외국에 나가본 적도 없고 더군다나 살아본 적도 없었는데, 혼자 장기간 외국에 체류하며 일을 해야 한다는 건 설렘보다는 두려움이 먼저 다가오는, 그야말로 '무모한 도전'이었지만 꿈을 위해 자신에게 주어진 길을 따르겠다는 라만차의 기사 돈키호테의 노래가 내게 힘과 용기를 주었다. 중국에 가서는 그 노래 'The impossible dream' 가사를 출력해서 책상맡에 붙여놓기까지 했으니까.


왼쪽) 2005년 공연 리플릿  오른쪽) 2015년 공연 리플릿


라만차에 사는 노인 알론조는, 어느 날 정신이 나가 버려 자신이 기사 돈키호테라고 믿고 시종 산초와 함께 모험을 떠난다. 이미 유럽에서도 기사가 사라진 지 오래인데, 허름한 여관을 성이라 하고 여관 주인을 성주라 부르며 작위를 내려달라 하고 면도 대야를 황금투구라 하고 풍차가 용이라며 달려드는 돈키호테는 다른 사람들이 보기에는 그냥 '미친 노인'일 뿐. 여관에서 허드렛일을 하며 노새끌이들에게 몸을 파는 여자 알돈자에게도 그랬다. 처음에는. 


이 이야기는 극중극의 형식을 띤다. 세르반테스라는 작가가 종교 모독죄로 지하감옥에 갇히고 지하감옥의 다른 죄수들이 그들만의 재판을 치르려고 하자 자신의 죄를 변호하기 위해 세르반테스가 죄수들에게 돈키호테 이야기를 들려준다. 하지만 공연을 보다 보면 관객들은 알게 된다. 돈키호테가 세르반테스고, 세르반테스가 곧 돈키호테라는 것을.  


처음에 지하감옥 안의 죄수들이 세르반테스에게 세르반테스의 여러 죄목을 일러주는데 (지금 다 정확히 기억은 안 나지만) 첫 번째는 '이상주의자'라는 것이었다. 그 말은 들은 세르반테스는 말한다.

 

"나는 이상 없이 살 용기가 없소."  


이 말을 나는 그 뒤로 곰곰이 생각해보았다. 이상 없이 살 용기... 이상 없이 살 용기... 용기..... 


용기란 뭔가? 무언가 하기 힘든 일을 하는 힘이지 않은가?

높은 곳에서 다리에 끈만 묶고 뛰어내릴 용기, 불 속으로 뛰어들어 사람을 구해낼 용기, 모두 다 네라고 말할 때 혼자만 아니요라고 말할 용기 등. 그렇다면 세르반테스의 말은, '이상 없이 산다'는 게 어려운 일이라는 뜻일 텐데.


처음엔 요즘 시대와 맞지 않는 말이라고 생각했다. 요즘은 '이상을 가질 용기가 없다'가 더 어울리는 세상이라. 철저하게 갑에 의해 착취당해 평범한 삶을 사는 것조차 사치로 느껴지는 젊은이들에게 '이상을 가지라'는 말처럼 허황된 충고가 어디 있을까. 하지만 공연 중간에 나온 다른 대사를 듣고 이해했다.


"미쳐 돌아가는 이 세상에서 가장 미친 짓은 현실에 안주하고 꿈을 포기하는 짓이라오."  


나는 그 말을 이렇게 받아들였다. 

미쳐 돌아가는 이 세상에서 제정신 갖고 사는 게 가장 미친 짓이다!


모든 사물과 현상을 이성적으로 분석하고 받아들이는 건, 때론 고통이기도 하다. 기대와 다른 나의 실체를 직시해야 하니까. 극 속에서도 자신이 기사라는 착각에 빠진 돈키호테를 알론조로 되돌리기 위해 했던 방법도 바로 '거울을 보여주는 것'이었다. 거울 속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똑바로 바라보고 돈키호테는 자신이 멋진 기사가 아니라 늙고 초라한 노인이라는 것을 깨닫고는 다시 알론조로 돌아오게 된다. 


하지만 이상에 빠져 살던 사람이 이성을 되찾았을 때. 그는 과연 행복할까?  나는 현실적이고 비관적이고 비판적이고 이성적인 사람이다. (낙관적인 사람보다 비관적인 사람이 좀 더 실제에 가깝다는 연구결과도 있으니 비관적인 게 곧 현실적이라는 말과 같을 테다.) 그게 내 장점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나는 행복하지 않았다. 항상 괴로웠다. 비관적인 성격이라 남들보다 꿈도 크게 꾸지 않았는데 그 작은 꿈도 이루기가 어렵고 설령 이루었다 하더라도 꿈을 이룬 상태가 생각처럼 좋지 않았다.

 

<맨 오브 라만차>를 보고 용기를 얻어 꿈에 부풀어 떠난 중국 생활의 끝에 나는 이런 일기를 썼다.


 무언가 새로운 일을 시작할 때. 이 일로 인해 내 삶에 커다란 변화가 찾아오지 않을까 기대하곤 하지만 사실 변하는 건 없다. 세상은 그렇게 만만한 게 아니라는 것을, 내가 그렇게 대단한 존재가 아니라는 것을 차츰 알아가면서.... '사회'라는 것에 순응하게 된다.  


지금 다시 보면 손발 오그라들기 이를 데 없지만 당시엔 세상살이의 벽이 높음을 깨달은 실망과 좌절감이 컸다. 그래서 그냥 그렇게 보잘것없는 현실에 안주하고 꿈을 포기하고 사는 게, 과연 이성적인 행동일까? 우리는 모두 알고 있다. 우리가 사는 이유는 '행복하기 위해서'라는 것을. 그럼 이성적으로, 행복해지기 위한 방법을 찾아야겠지. 세르반테스와 돈키호테는 말한다. 그 방법이 바로 '이상을 갖는 것'이라고. 결국 이성적으로 생각해도 이상을 갖고 사는 게 옳은 일이고 그렇기에 이상 없이 살 용기가 없다고 한 것 같다.


2005년 <돈키호테> 공연 리플릿 뒷면


나도 점차 마음을 고쳐먹고 있다. 한 해 한 해 나이를 먹어갈수록, 나를 괴롭히는 건 세상이 아니라 나 자신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자꾸 꿈을 버리고 이상을 포기하고 이성적으로 따지려고만 드니 맘이 편할 수가 있나.

 

그래서 나도 다시 꿈을 꾸기로 했다. 당장 눈앞의 작은 꿈들. 그 꿈들을 이루어가며 살기로. 꿈을 이루었는데도 좋지 않으면 다른 꿈을 꾸기로. 그게 삶을 살아가게 하는 원동력이라는 걸 너무 늦게 깨달은 건 아니겠지. 


꿈이 아름다운 건, 자신뿐 아니라 주위까지 변화시키기 때문인 것 같다. 더 이상 떨어질 데가 없는 낮은 곳에서 험한 일을 하며 살던 알돈자도 죄를 짓고 지하감옥에 갇혀 살던 다른 죄수들도 돈키호테와 세르반테스의 열정에 감화되었으니.


10년이 지났지만, 10년 전에도 10년이 지난 후에도 여전히 <맨 오브 라만차>는 내 인생의 뮤지컬이다. 인생이 내 맘대로 되지 않을 때, 꿈이 점점 멀어져 갈 때, 'The Impossible Dream'을 흥얼거려보곤 한다.



The Impossible Dream  

To dream the impossible dream, 그 꿈 이룰 수 없어도

To fight the unbeatable foe, 싸움 이길 수 없어도

To bear with unbearable sorrow, 슬픔 견딜 수 없다 해도

To run where the brave dare not go 길은 험하고 험해도 

To right the unrightable wrong. 정의를 위해 싸우리라

To love pure and chaste, from afar, 사랑을 믿고 따르리라

To try when your arms are too weary, 잡을 수 없는 별일지라도

To reach the unreachable star! 힘껏 팔을 뻗으리라 

This is my Quest to follow that star, 이게 나의 가는 길이요

No matter how hopeless, 희망조차 없고

no matter how far, 또 멀지라도

To fight for the right 멈추지 않고

Without question or pause, 돌아보지 않고

To be willing to march into hell 오직 나에게 주어진

For a heavenly cause! 이 길을 따르리라 

And I know, if I'll only be true 내가 영광의 이 길을

To this glorious Quest, 진실로 따라가면

That my heart will lie peaceful and calm 죽음이 나를 덮쳐 와도

When I'm laid to my rest. 평화롭게 되리 

And the world will be better for this, 세상은 밝게 빛나리라

That one man, scorned and covered with scars, 이 한 몸 찢기고 상해도

Still strove, with his last ounce of courage, 마지막 힘이 다 할 때까지

To reach the unreachable star 나의 저 별을 향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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