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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framemike Sep 06. 2022

땅과 바다


유년의 땅은 늘 불안정하다. 그곳이 대체로 타인에 의해 설계되므로, 자신이 설계할 수 없으므로, 그러나 마음을 나누는 사람들에게는 종종 서로의 유년에, 그 장소에 다녀올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다. 나는 H의 땅에서 무엇을 보고 온 걸까. 그 시절의 빈틈을 메워주기는 커녕 파도가 치면 사라질 모래성만 쌓다 온 것은 아닐까.

유년의 재건축, 이현아



기억이 잘 나진 않지만 수영을 배운 건 10살 이전이었다. 이제는 더 이상 수영을 못한다. 기껏해야 자유형, 배영, 평영이지만 지금은 아무것도 기억나지 않는다. 하지만 물은 좋아한다. 수영을 못하지만 물 속 깊이 들어가는 스쿠버 다이빙을 하고, 서퍼들의 성지라 불리는 발리에 가서 서핑도 배워봤다. 반면, 남들 다 하는 해수욕은 거의 해본 적이 없다. 수영을 하지 못하는 인간의 물놀이는 그리 심심해 보이진 않는다. 그럴 수 있는 이유는 둘 다 수영을 잘하면 좋지만 수영을 못해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스쿠버 다이빙과 서핑의 공통점은 일정 시점에 도달하지 못하거나, 지나면 땅에 발이 닿지 않는다는 것이다. 인간은 대개 땅에 있는 시간이 물에 있는 시간보다 많기 때문에 땅에 발이 닿지 않고 물에 잠기면 불안감을 느낀다. 산소통이 없고, 구명조끼 역할을 하기도 하는 서핑 보드와 리쉬(줄)로 연결되어 있지 않다면 나 또한 그런 불안을 많이 느꼈을 것이다. 더군다나 수영을 못하기 때문에 이런 안전 장치 없이는 절대 하지 못했을 것이다. 땅은 어쩌면 발을 딛는 곳이고, 안정감을 느끼게 하는 곳일지도 모르겠다.



서핑을 처음 배울 때 물을 얼마나 먹었는지 바다에서 나온지 두 시간이 지나서 가만히 있다가도 코에서 물이 나올 정도였다. 파도를 기다리는 라인업까지 가다가도 밀려오는 파도 때문에 제자리로 돌아오기를 반복했다. 간신히 일어나 파도를 타다 금새 넘어지며 물을 먹었다. 파도는 생각보다 거칠었다. 그럼에도 물이 좋은 이유는 그 속에서 자유로워지기 때문이다. 물 속에서 몸은 가벼워진다. 흔들림과 일렁임 가운데 안정감을 느낀다. 때로는 고요하기도 하다.



이현아 작가의 신작 ‘여름의 피부’에는 ‘땅’이라는 단어가 몇 번 등장한다. 땅은 그에게 있어 자신을 만들어주는 토대의 이미지다. 지금을 만드는 것이며, 언제나 돌아갈 수 있는 곳이다. 마음만 먹으면. 화가 이우환은 언제나 흔들리고 싶다고 말한다. 흔들림 속에서 균형과 긴장을 느낀다. 그리고 관계에 대한 말한다. 나는 그래서인지 이우환의 파란색에서 바다가 보인다.


흔들림 속에서 균형과 긴장을 느낀다.


땅은 너무나도 당연해서 알기 어려운 익숙한 존재다. 늘 발을 딛고 있기에. 시간의 흐름에서는 저 아래 자리잡은 것이 땅이다. 바다는 무서운 존재다. 깊이를 알 수 없고, 그 끝을 알 수 없기에. 흔들림 때문에 불안정하지만, 같은 이유로 자유로울 수 있다. 맨발로 땅을 밟으며 살고, 동시에 바다 속에 두둥실 떠다니며 살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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