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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framemike Sep 17. 2021

큰 그림을 그리고 싶어

여든다섯번째 이야기


나는 작은 것이 좋았다. 볼펜은 1.0짜리나 0.5짜리보다 0.38이나 0.28을 선호했다. 글씨를 쓸 때도 크게 쓰는 것보다 작게 쓰는 게 좋았다. 신발을 살 때도 크고 뚱뚱한 신발보다 발볼이 얇은 신발만 찾았다. 왜 그랬나 모르지만 항상 작은 것이 조금 더 끌렸다. 



중학교 미술 시간에는 늘 책상 배열이 달라졌던 것 같다. 두 개씩 나란히 붙어서 칠판을 바라보는 대열 대신 네 개 내지 여섯 개씩 책상을 붙여 친구들끼리 더 모여서 그림을 그렸다. 호쾌했던 미술 선생님은 여러 책상 그룹을 돌아다니면서 그림을 못 그리는 학생들에게 피드백을 주었다. 나는 늘 피드백을 받는 편이었다. 어느 날은 선생님이 내 4B 연필을 뺏고 직접 그림을 그려주었다. 순식간에 그림이 좋아지는 광경을 목격했다. 나는 물었다. “선생님이 그리니까 엄청 좋아졌어요. 이렇게 하면 A도 받을 수 있나요?” 선생님은 연필을 내려놓으시면서 말했다. “너는 B야.” 호쾌하신 분은 성적 앞에서는 단호했다. 



잠시 화방에 다닌 적이 있다. 화방에 가면 초보는 제일 기본부터 배운다. 선 그리기. 위에서 아래로.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계속 선을 그렸다. 그게 어느 정도 익숙해지면 크로키를 그렸다. 화방 선생님은 내 그림을 보며 늘 선이 짧다고 했다. 길게 그리고, 크게 그리라고 했다. 선생님은 내 그림을 보고 내 성격을 유추했다. 세심한 것 같은데 소심하기도 하다고 말이다. 그 말을 듣고 의식적으로 크고 긴 선을 그리려고 했지만 어느 순간 다시 짧은 선을 그리고 있었다. 그게 늘 마음에 걸렸다. 



친구와 함께 윤형근 전시를 보러 갔다. 갤러리에 걸려 있던 그림들은 꽤나 그 크기가 컸다. 큰 캔버스에 그려진 단색화는 웅장했다. 왠지 모르지만 압도되는 기분이 든다고 친구에게 말했다. 그러자 친구는 크기에서 오는 웅장함 때문에 작은 그림을 그리는 사람들이 큰 그림을 그리는 사람들을 싫어하기도 한다고 했다. 그림을 그리는 사람이 아니어서인지 그 말이 이해가 되면서도 나는 그저 큰 그림이 좋았다. 내가 갖지 못한 것에 대한 부러움 때문이었을까. 



정말 신기한 기회로 콘크리트 패널에 스테인을 먹인 적이 있다. 콘크리트 패널이 비싸다는 점과 한 번 칠한 스테인은 쉽게 되돌릴 수 없다는 점에서 뭔가 선뜻 칠하기 부담스러웠다. 패널이 한 장 남았을 때는 패널 주인이 스테인 작업을 했다. 바닥에 앉아 스테인을 적신 스펀지와 휴지로 거침없이 패널의 위아래를 오갔다. 지금껏 직접 화가의 작업을 보진 못했지만 큰 그림을 그리는 화가는 이런 모습이지 않을까 싶었다. 그날 그와 나는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크게 그리는 연습을 해야겠다.


항상 균형감에 대해서 이야기 한다. 선이 짧다. 크게 그리고 싶어 긴장을 풀고 선을 긋는다. 큰 획들은 어느새 다시 짧아진다. 관성이고 습관이겠지. 작게 그리고 있으면 무게추를 옮겨 다시 크게 그리면 된다. 이번엔 그 관성에 조금 더 저항을 해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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