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험의 시작
세 시간이 삼십 분 같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갓 대학생이 된 스무 살 적. 서울보다 강원도에 더 가까운 경기도에 살던 저는 그곳에서 학교까지 통학을 했어요. 편도로만 버스 한 시간, 지하철 십오 분, 도보 십오 분. 도합 1시간 30분, 왕복 3시간을 길바닥에 흘려버려야 했던 시절. 9시에 시작되는 수업을 들으려면 고등학생처럼 일어나 버스 안에서 아침잠을 충당하곤 했던 시절. 하지만 원하는 학과에 합격했기에 그것조차 행복했던 그 시절, 정말 궁금했던 게 있었어요. '도시 사람들의 얼굴은 왜 하나같이 굳어 있을까?'라는 거였지요. 도시를 상징하는 지하철. 그 안에 있는 이들 중 표정이 있는 사람이 단 한 명도 없었거든요.
그 상황이 너무도 수상했던 저는 지하철 창문에 비치는 얼굴에 괜히 미소를 실어보았어요. 입꼬리를 위아래로 움직여보기도 했고요. 그러다가 혼자만의 작은 실험을 시작했어요. 타인과 눈이 마주치면 먼저 웃어 보이는 것. 부끄럽긴 했지만 가끔은 웃음 응답을 받기도 했답니다. 하지만 아무래도 어색해지는 상황 때문에 실험은 곧 중지되었지요.
그렇게 4년 간 학교를 다니다가 직장도 다니고 결혼도 하며 살아가게 되었어요. 그러다 무심코 카메라에 찍힌 제 얼굴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시멘트 2톤을 부어서 꽁꽁 굳혀버린 콘크리트 같은 표정. 문득 대학교 1학년 때의 기억이 떠올라 굳은 입꼬리를 위 아래로 흔들어 보았어요. 쉽지는 않았지만 어찌 풀리더라고요.
그런데 돌아보니 굳어버린 표정을 쉽게 녹이는 것들이 있었어요. 따듯한 밥, 아기의 미소, 하늘의 별과 생명들이 그것입니다. 그래서 이렇게 혼자서나마 작은 실험을 시작해요. 새내기 시절 보았던 '회색 인간1'로 살아가고 싶지 않거든요.
어느덧 엄마가 된 지금. 아기가 잠의 품에 안긴 사이에 하려는 실험은 이것입니다. 아기와 함께 먹는 밥, 그걸 제공해주는 우주의 생명들, 생명이 다른 것들로 탈바꿈하는 간단한 요리 과정 따위를 적어내려가는 것이지요. 그러다 보면 제게 묻은 회색빛 입자들이 날아가 버리고 숨어 있던 색깔이 고개를 내밀 수도 있을까봐요. 덩달아 아기의 빛도 발하게 할 수 있을까봐요. 그렇게 도시 속에서도 숨 가다듬으며 살 수 있게 될까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