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막걸리를 좋아하지 않는다.
공대체전의 추억
나는 막걸리를 좋아하지 않는다. 아니다, 막걸리를 마실 일이 있으면 아주 맛있게 마시니까 좋아하지 않는다고 말하긴 좀 그렇긴 하다. 하지만 내가 막걸리를 직접 사서 마시거나, 술자리에서 먼저 막걸리를 시키거나 마시자고 권하지는 않는다. 그러니까 정확히 막걸리를 싫어하지 않지만, 좋아하지도 않는다.
대학 다닐 때 공대체전은 우리 학과의 가장 큰 행사 중 하나였다. 매년 5월 공대 학과 대항으로 체육대회를 개최했다. 체육대회니 어쨌든 이기는 게 좋은 건 당연하겠지만, 정말 우리 토목공학과는 공대체전에 목숨을 걸었다.
공대체전 전, 역학 수업에서는 무조건 줄다리기를 가지고 힘의 관계에 관해 공부했다. 줄다리기 출전 선수들의 키와 몸무게로 가장 강한 힘을 낼 방법에 전공 교수님들은 모든 지식을 쏟아 연구했다. 선수들의 위치 선정, 힘의 방향, 힘의 분배 등을 가르치셨고. 전공 교수님들의 지도 아래 엄선된 우리 과 40명의 선수들이 훈련을 했다. 교수님들의 빛나는 연구 때문인지 선수들의 피나는 훈련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우리 과는 10년이 넘게 줄다리기는 반드시 우승을 했었다.
줄다리기만큼 축구도 우리 과의 주력 경기였다. 하지만 축구는 단무지 산토끼라고 불렸던, 단순무식지랄의 산공과와 토목과, 기계과가 늘 우승을 두고 겨뤘다. 축구를 잘 모르는 내가 봐도 우리 과 축구부 실력은 별로였다. 그럼에도 우리 과가 우승을 두고 늘 겨룰 수 있던 것은 오로지 깡이었다. 그 깡이 잘 이해되지 않는 나에겐 경기에서 졌다고 전 축구부원이 머리를 깎고 나타났을 때 우습기만 했지만, 그런 깡으로 경기에 임하는 그들이 멋져 보이기도 했다.
내가 2학년 때인가, 3학년 때인가, 토목과는 처음으로 여자 발야구에 출전하였다. 공대체전에서 유일하게 여학우들이 겨루는 경기였는데, 토목과는 발야구를 출전할 수 있을 만큼의 여학생 수가 되지 않아 출전할 수가 없었다. 그해 1,2,3, 4학년에 대학원생까지 더해 처음으로 9명인가, 10명인가 발야구를 할 수 있는 선수 수가 충족되었다. 5월이 공대체전인데 3월 초부터 선배들이 거의 매일 발야구 연습을 시켰다. 정말 힘들게 연습했지만, 건축공학과 컴퓨터공학과 같은 여학생들이 많은 과에서 선발되어서 온 우수선수들과 나처럼 어중이떠중이 그냥 일단 데려온 선수들은 상대가 되지 않았다. 우리 과 여자발야구는 처참한 스코어 차이로 졌다. 다행히 그다음 해에는 다시 선수 수가 충족되지 않아 경기를 못 해 얼마나 다행이었던지
이런 공대체전의 우승 부상은 조잡한 트로피와 막걸리였다. 요즘처럼 몇백 미리리터의 막걸리병이 아닌, 스물서른 리터는 족히 되는 막걸리통으로 수십 통을 상품으로 받았다. 그 술을 토목과 수백 명이 모여 과 건물 앞 잔디밭에서 밤새워 마셨다. 처음에는 과 학생회장이 트로피에 막걸리를 채워 술을 돌리다가 그다음에는 체육부장의 구령에 따라 주전 선수들은 운동화에 막걸리를 따라 술을 마시고 MVP에게는 막걸리를 흔들어 술 샤워를 시켜줬다. 우승에 환호하는 학생들 사이에서 수백 리터의 막걸리는 학생들의 입안으로 삼 분의 일, 그냥 흘려 버려지는 것이 삼 분의 일, 그리고 학생들의 입에 들어갔다가 다시 게워지는 것이 삼 분의 일이었다.
따뜻한 5월이었다. 잔디밭에 부어지고, 게워졌던 막걸리는 푹 삭히고 썩어져 비 오기 전까지 과 건물 전체에서 썩은 내를 풍겼다. 막걸리의 숙취는 또 왜 그렇게 심했던가, 두통과 악취로 힘든 5월이었다. 그래서 난 여전히 막걸리를 좋아하지 않는다.
그런데 이렇게 글을 쓰고 있다 보니, 오늘 밤 나 왜 이렇게 막걸리가 땡기는 거지? 역시 난 막걸리를 좋아하지 않는다. 싫어하지는 않을 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