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VB 사태로 흔들렸던 미국 지역은행 문제가 연준의 적극적인 개입으로 진정 기미를 보이고 있습니다. 그러나 최근 미국 상업용 부동산 가격이 크게 하락하고, 공실률이 많이 증가하는 등 지역은행의 위기를 다시 재점화할 수 있다는 소식이 전해졌습니다.
상업용 부동산 대출의 약 70%를 지역은행이 도맡고 있어서 연체율이 올라갈 시에 연쇄 파산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는 상황입니다. 심지어 2008년 금융위기는 개인용 부동산이 문제였다면, 이번에는 상업용이 원인이 될 것이란 불안한 뉴스가 주류를 이루고 있습니다. 현재 미국 상업용 부동산 시장의 상황을 알아보고, 과연 지역은행은 풍전등화의 상황의 놓인 것인지 짚어보는 시간을 갖도록 하겠습니다.
팬데믹은 참 많은 것을 바꾸어 놓았습니다. 전염병 확산으로 어쩔 수 없이 재택근무를 시행했는데, 코로나와의 전쟁 종료를 선언했음에도 사람들은 직장으로의 복귀를 거부했습니다. 고급 인력일수록 더 완강하게 저항했습니다. 기업은 꼭 필요한 인재를 놓치지 않기 위해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이를 받아들여야 했습니다. 기술의 진보는 장소의 제약 없이 일을 할 수 있게 만들었고, 바이러스의 확산은 이를 촉진하게 된 것이죠. 재택근무의 확산으로 기업은 많은 공간을 임차할 필요가 없어졌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작년 연준이 급격하게 금리를 올리면서 기업은 불황을 대비해 선제적으로 대응하기 시작했습니다. 실적이 악화한 회사는 대규모 감원을 진행했고, 그렇지 않을지라도 비용 절감을 위한 자산 재조정을 시작합니다. 임차 면적이 큰 기업은 20~30%가량 공간을 축소하는 사례가 증가하면서 경제의 불확실성에 선제적으로 대응하는 것이죠.
그래서 재임대를 하는 물건이 많이 증가하고 있습니다. 사용 공간을 축소했으니 빈자리를 다른 임차인에게 내놓는 수요가 늘어나고 있습니다. 단기 계약이 가능하고, 시세보다 저렴하기 때문에 경제적 불확실성이 큰 현 상황을 고려하면 신규 사업자에게는 매력적이라 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러한 이유로 작년 4분기를 기점으로 임대 수요가 급격하게 꺾이기 시작합니다. 임대 수요가 마이너스로 전환하고, 공실률은 15.7%에 달했습니다. 2008년 금융위기 당시 최고치인 16.3%보다 낮지만, 이 추세라면 곧 이를 넘어갈 것으로 전망됩니다. 또한 재임대 공급이 역사상 최고치를 기록했습니다. 최근 나온 기사를 참조하자면, 올해 1분기 사무실 공실률은 19%로 1992년 이후 31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고 합니다.
상업용 부동산의 가격이 하락하고, 임대료 또한 떨어지면서 수익성이 악화하자, 이에 돈을 빌려준 지방은행의 위기설이 재점화되고 있습니다. 상업용 부동산 대출의 다수를 중소형 은행이 떠맡고 있어서 연체율이 올라갈 시에 줄도산으로 이어지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고개를 들고 있는 것이죠. SVB 사태가 이제 좀 진정되나 했는데 재차 은행의 시스템 문제가 불거진다면 불길이 걷잡을 수 없이 번질지 모릅니다. 그렇기에 지금부터 지역은행의 상업용 부동산 대출 상황에 대해 무디스의 리포트를 토대로 자세하게 알아보겠습니다.
현재 우리나라에서 나오는 기사를 보면, 상업용 부동산 대출의 약 70% 이상을 중소형 은행이 담당했다고 나옵니다. ‘대출의 편중 --> 상업용 부동산 수익률 하락 --> 연체율 증가 --> 유동성 문제 발생 --> 중소형 은행 줄도산’ 이런 논리로 글이 전개되고 있습니다. 안 그래도 불과 얼마 전에 지역은행이 문제가 되었으니 투자자는 더 불안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무디스는 이 통계 자체가 오류가 있다고 지적하고 있습니다.
상업용 부동산 대출 분포입니다. 은행이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은 맞습니다. 전체 대출의 38.7%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자산의 규모로 은행을 분류했는데 Top 25는 자산이 우리 돈으로 200조 원 이상, ‘Regional Bank’는 약 13조 원에서 200조 원 사이, ‘Community Bank’는 1.3조 원에서 13조 원 사이, ‘Small Bank’는 그 이하입니다.
지역은행 규모 이하에서 상업용 부동산 대출의 70% 이상 담당했다고 하는데 실제로는 26.6%를 차지합니다. 기본 전제부터 오류가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최근에 문제가 되었던 곳이 지역은행인데 이들은 단지 13.8%만을 보유하고 있습니다. 또한 대출처가 굉장히 다양하게 분산되어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즉, 상업용 부동산에 문제가 생길지라도 지역은행만 이 리스크를 부담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죠.
하지만 대출 잔액이 4.5조 달러로 우리 돈으로 약 6,000조 원에 달합니다. 와우, 천조국 사이즈 진짜 장난이 아니네요. 이 중 약 1,500조 원을 담당하고 있으니 결코 작은 규모는 아닙니다. 그렇기에 좀 더 면밀하게 볼 필요가 있겠습니다.
2008년 금융위기 이전에는 없었는데 현재 연준이 은행을 상대로 단기간 대출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은행이 유동성 문제 등의 어려움을 겪을 때, 1년 이내에 갚는 조건으로 대출을 받을 수 있습니다. 무엇보다 중요한 점은 은행 자산의 시장 가치가 아닌 장부 가치를 담보로 빌려준다는 점입니다.
SVB가 문제가 되었던 이유는 수익성을 극대화하기 위해 미국 국채 장기물을 위주로 자산을 보유했기 때문입니다. 예금자가 돈을 요구할 시에 국채를 팔아서 지급해야 했는데, 작년 가파른 금리 인상으로 가격이 내려간 상태였기에 문제가 된 것이죠. 은행이 만약 국채를 보유하고 있다면, 연준은 하락한 가치가 아닌 매입 가치로 급한 불을 끌 수 있도록 지원합니다. 그래서 일시적 유동성 위기가 불거져도 일정 기간 견딜 수 있도록 지원하고 있는 것이죠.
또한 은행의 자본 비율이 금융위기 이전에는 9~10% 수준이었습니다. 현재는 13~14%에 이르니 과거보다 많은 돈을 내부에 쌓아두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과거에는 더 많은 돈을 투자했기 때문에 수익률이 13~14%에 이르렀습니다. 현재는 내부에 더 많은 돈을 쌓아뒀음에도 수익률이 과거 못지않음을 알 수 있습니다. 과거보다 위험에 대한 대비가 더 잘되어 있는 가운데 수익성은 개선이 되었음을 알 수 있는 자료입니다.
금융위기 이전에는 없었던 대출 프로그램을 시행하고 있을지라도, 은행 시스템 신뢰에 금이 간 상태이기에 은행은 이전보다 대출 심사와 연장에 있어서 더 엄격해질 수 있습니다. 더 높은 금리 또는 더 많은 담보 제공을 요구함으로써 연체율이 올라갈 위험성이 있는 것이죠. 수년 안에 상당한 물량의 부채 만기가 다가오고 있기에 은행이 상업용 부동산 위험에 얼마나 노출되어 있는지 더 자세하게 살펴보겠습니다.
이 표는 은행의 자산 규모별로 상업용 부동산 대출에 자산 대비 얼마나 노출되어 있는지 설명하고 있습니다. 상위 25개의 은행은 겨우 4.3%로 아주 미미한 비중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2008년 금융위기는 이들이 흔들려서 발생한 문제였습니다. 오피스 빌딩 시장이 아무리 침체한다고 할지라도 이들이 진원지가 될 일은 없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Regional Bank’가 16.5%, ‘Community Bank’ 24.3%, ‘Small Bank’ 18.3%입니다. 최근 문제가 된 ‘Regional Bank’만 보더라도 전체 자산의 16.5%에 불과합니다. 혹시 문제가 생기더라도 내부의 자금으로 충분히 커버할 수 있는 수준입니다.
문제가 발생할 수 있는 부분은 ‘Community Bank’입니다. 이들이 평균적으로 자산의 24.3%를 상업용 부동산에 대출했기 때문입니다. 아까 언급했지만 ‘Community Bank’의 자산은 우리 돈으로 1.3조 원에서 13조 원 수준입니다. 대출 잔액 6,000조 원의 9.6%, 약 576조 원가량을 이들이 책임지고 있는데요. 정말 최악의 상황을 가정해서 모두 디폴트가 난다고 할지라도 829개의 은행으로 분산되어 있기에 굉장히 위험한 수준은 아니라는 것이죠.
‘지금까지 봤을 때는 문제가 없다는 것은 알겠는데요. SVB 사태만 보더라도 은행이 이익의 극대화를 위해 한쪽에 치우친 자산 배분을 할 수도 있잖아요. 그러니 상업용 부동산 대출로만 편중된 경우가 있지 않을까요? 이럴 경우 문제가 생길 수 있지 않을까요?’ 맞습니다, 은행은 업의 특성상 소수만 흔들려도 금융시장에 미치는 영향력이 크기 때문에 더 면밀하게 봐야 합니다. 평균의 함정에 빠질 위험성은 없는지 좀 더 상세하게 보도록 하겠습니다.
대형은행 중에 88%는 상업용 부동산 대출이 자산의 10% 이하이지만, 10~25%가 노출된 12%, 3개의 은행이 있습니다. 자산의 규모가 워낙 크기 때문에 그리 큰 비중이 아닐지라도 위험의 소지는 있는 것이죠. 그리고 ‘Regional Bank’의 1.5%, 2개 은행과 ‘Community Bank’의 3.3%, 27개의 은행이 자산의 50% 이상 상업용 부동산 대출 리스크에 노출되어 있습니다. ‘Community Bank’는 자산의 규모가 그리 크지 않으니 숫자가 많아도 그리 큰 문제가 되지 않겠지만, 대형은행 3개와 지역은행 2개가 문제가 될 소지가 있습니다. 특히 지역은행 2개가 50% 이상 노출되어 있기에 연체율이 높아진다면 SVB 사태처럼 번질 가능성은 있는 것이죠.
이들을 면밀히 지켜봐야 하겠지만, 무디스는 상업용 부동산 대출 문제로 인해 2008년 금융위기 같은 큰 산불로 번질 가능성은 적다고 평가합니다. 하지만 상업용 부동산 가격이 하락하고, 임대료가 떨어지면서 앞으로 연체율과 채무 불이행이 증가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이럴 경우에 은행은 담보물을 매각해서 자금을 회수하겠죠? 그렇기에 담보물에 대한 평가 기준과 어떤 안전장치를 마련해 놨는지가 매우 중요합니다. 이 부분에 대해서 더 자세하게 보도록 하겠습니다.
이 그래프는 금융위기 이전과 이후 2013년~2018년까지 은행의 LTV(담보인정비율)의 차이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앞으로 만기가 도래하는 대출의 대부분은 2013년~2018년에 실행되었습니다. 금융위기 이전에 은행은 LTV를 73% 수준에서 책정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2013~2018년에는 62~68% 수준으로 이보다 5% 이상 낮게 LTV를 설정했습니다. 이전보다 훨씬 보수적임을 알 수 있는 대목입니다.
또한 금융위기 이전에는 임대수익률 예상치를 기반으로 담보물의 가치를 평가했다면, 2013~2018년에는 실제 임대료 증가 데이터를 토대로 평가했습니다. 이 그래프는 실제 자산별 임대료가 얼마나 증가했는지를 보여줍니다. ‘MF’는 일반 주택, ‘IN’은 산업 용지, ‘OF’는 오피스, ‘RT’는 소매용 부동산입니다. 2013~2022년까지 주택과 산업 용지의 임대료 상승률은 아주 가파릅니다. 반면 오피스와 소매용 부동산은 상대적으로 훨씬 덜 상승했습니다. 2018~2022년으로 범위를 줄이면 얘들은 변화가 미미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실제 임대료 상승 데이터를 토대로 자산의 가치와 대출 여부를 평가했기에 앞서 살펴봤지만 상업용 부동산 대출이 많지 않은 것이죠. 만약 상업용 부동산 수익률이 더 높았다면 훨씬 더 많은 대출이 실행되었을 것입니다. 게다가 이 그래프는 상업용 부동산 수익률과 미국 국채 10년물의 수익률 차이를 보여줍니다. 2019년을 기점으로 미국 국채 10년물과 스프레드 격차가 계속 줄어들고 있습니다. 그렇기에 은행 입장에서 상업용 부동산 대출이 그렇게 매력적으로 느껴지지 않을 겁니다. 수익률 격차가 크지 않다면 안전한 국채를 사는 것이 낫기 때문이죠.
보통 금융기관이 스트레스 테스트할 때 최악의 시나리오는 보유 자산의 가치가 40% 하락한다고 가정해서 진행합니다. 무디스에서 같은 방법으로 최악의 상황까지 가정해서 시나리오별 평가를 했는데요. 이를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먼저 3가지 경우의 수를 놓고 시나리오를 가정했습니다. 첫 번째는 임대료가 20% 오를 시, 두 번째는 그대로일 경우, 마지막으로 20% 하락할 경우입니다. 2013~2018년 사이에 상업용 부동산의 LTV 60%로 대출이 실행되었다고 합시다. 임대료가 20% 상승할 시에 건물 가격이 1.5% 올라서 59%로 하락합니다. 그래서 디폴트가 발생할 시에 회수할 수 있는 비율은 169%가 됩니다. 100%가 원금이니 초과해서 회수하는 것입니다. 그러니 전혀 문제 될 것이 없지요. 그런데 이런 일은 실제로 일어날 리가 없습니다.
두 번째 시나리오를 보면, 임대료가 그대로일 때 건물의 가치는 15.4%가 하락합니다. 그래서 LTV가 71%로 상승하게 되고, 디폴트가 발생해도 141%를 회수하니 여전히 문제가 없습니다. 최악의 상황을 가정해서 임대료가 20% 하락할 때 부동산 가치가 41.3% 떨어진다면 LTV는 102% 됩니다. 이러면 부채가 자산 가치를 넘어가게 되는 것이죠. 이럴 경우에 은행은 98%를 회수할 수 있습니다. 2%의 손실이 발생하는 것이죠. 그런데 이를 매각해 회수하기 위해서는 추가적인 부대 비용이 발생하겠죠? 무디스가 계산한 최대 손실은 약 8%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최악의 상황을 가정하더라도 은행의 손실은 최대 8% 내외로 제한됩니다. LTV를 워낙 보수적으로 설정하고, 실제 임대료 증가 추이를 토대로 아주 깐깐하게 상업용 부동산에 대한 대출이 이뤄졌기 때문입니다. 즉, 상업용 부동산의 부실로 인해 다시 금융위기가 올지 모른다는 소식은 상당히 과장된 정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다만 앞서 언급했지만, 소수의 은행은 리스크에 일부 노출된 것은 맞기 때문에 주의 깊게 관련 소식을 주기적으로 체크할 필요는 있다고 판단됩니다. 소수의 은행일지라도 SVB 사태로 인해 예금자들의 금융시스템에 대한 신뢰에 살짝 금이 간 상황이기 때문입니다. 스마트폰으로 인해 과거와는 달리 얼마나 빠른 속도로 뱅크런이 발생할 수 있는지 똑똑히 지켜봤기 때문에 약간의 가능성이 존재한다면 돌다리를 2번, 3번 두드리는 것이 맞다고 생각합니다. 그렇지만 그 위험성에 대해 과도하게 부풀리는 것 또한 옳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무디스 리포트를 통해 불안감을 일부라도 가시는 데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