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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EllENA Sep 10. 2020

시작이 '반' 이라 던데...

인생의 터닝포인트가 되다


무슨 일을 할 때 항상 고민을 하게 된다.

'내가 잘할 수 있을까?' ' 저걸 끝까지 할 수 있을까?' '돈이 많이 들지는 않을까?' '하다가 내 일에 지장을 주면...?'지금은 전부 일어나지  않을 일들 임을 알고 있고, 하여간 무언가를 시작하기 이전에 할 수 있는 쓸데없는 생각들 중에 불과하다는 것을 안다. 하지만 저런 고민들 속에서 "시작이 반 이랬어. 일단 해 볼까" 하고 시작하게 된다. 그런데 항상 어느 시점에서 뒤를 돌아보면 보기 좋게 실패한 것 같은 느낌이 든다.

내가 미리 한 걱정에 살짝 눌리는 느낌이다. 딱 시작만 한 것 같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렇게 뭔가 딱!!! 반씩만 한 것 같다는 생각이 엄습해 올 때마다 움찔해서 시작하기를 그만뒀다면...?? 아마 지금의 나는 없을 것이다. 


#_First Turning Point In My Life

나는 직장생활 시작을 오래 했다.

운 좋게 대학을 입학하자마자 같은 과의 선배 언니 덕분에 컴퓨터 학원에서 고액(?) 사무보조를 시작했다. -지금은 사라졌지만 그 당시 우리나라에서는 흔치 않았던 주식회사였던 웹마스터, 캐드, 웹디자인을 가르치던 학원이었다.-

그 당시에 편의점 야간 아르바이트를 하면 1,700원~1,800원을 받던 시절이었으니, 단순히 복사해주고, 학생관리해주고 숙제 체크해주는 정도에 시간당 5,000원을 주는 일은 세상 처음 알바를 하는 나에게는 생각도 할 필요가 없는 제안이었다. 그렇게 복사하고, 컵도 닦고, 학생들 출결 체크도 하며  아르바이트를 시작한 지 3개월 즈음 내 인생에 터닝포인트가 왔다. 

그 당시 선배가 가르치던 학생들은 그 당시 상고, 공고라고 부르는 직업 특성화 고등학교를 다니던 학생들의 자격증 및 실기 준비반이었는데, 준비하던 자격증은 취업을 해야 하는 아이들이어서 컴퓨터 활용능력 시험(컴활), 인터넷 자격검정시험, 웹디자인 관련 과목들이었다. 시험 준비를 하는 애들을 돕고 싶은 마음에 아이들이 주말에 보강을 나오면 그것들을 조금씩 봐주고, 잘 안 되는 학생들은 남아서 수당 같은 거 없이 자진해서 아이들의 공부를 봐주었었는데 그때 그 모습을 컴퓨터학원 대표님이 기특하게 보셨던 모양이다. 


초, 중, 고를 다니면서 임원을 주로 했었고, 그 당시 매일 아침에 7시까지 등교해서 자신 있는 과목을 아이들과 공유하고 스터디하고 했던 경험이 많았고, 야간 자율학습 시간에도 줄곳 마음 맞는 친구들과 스터디 진행 시 주로 리더를 맡아왔던 나에게는 사실 학생들이 공부를 봐주는 것이 어렵지는 않았다.

이렇게 그때는 몰랐지만 내 인생을 변화시킨.. 내 인생의 터닝포인트는 그렇게 내게 왔다.  



시작이 '반'이라는데... 돌이켜 보면 딱 '반 씩만' 한 것 같다. 글을 쓰는 지금도 인생의 딱 절반을 살아온 나이인데 뭔가 제대로 끝을 맺은 게 없는 것 같은 불확실한 나이이다.

- 내 인생에 대한 내 생각 중 -


#_Second Turning Point In My Life

그렇게 우연히 주어진 기회를 시작으로 나는 학원 강사 = 가르치는 직업을 가진 사람이 되었고, 초등학교 희망사항에 누구나 한번쯤은 다 적는다는 "선생님"의 꿈을 이루기 시작했다.

많이?? 아니 열심히 공부했고, 열심히 노력했다. 잘 가르치는 선생님 이면서 -그 당시에는 1타 강사라는 말이 없었다. 물론 그렇다고 내가 1타 강사 정도의 급은 절대 아니었다.- 좋은 선생님이고도 싶었다. 그렇게 주말 보조강사 시급을 받고 몇 달을 일하고 나서 정신을 차리고 보니 나는 어느새 09:00~23:00까지 풀타임을 채우는 전임 강사가 되어 있었다. 그렇게 정신없이 평생 컴퓨터를 가르치다 죽어도 좋을 거 같다는 자부심으로 일한 지 38개월이 되던 즈음 나는 졸업반이 되었고 나에게 또 다른 기회가 찾아왔다.


졸업을 앞두고 다른 전공을 하나 더 공부하고 싶던 차에 내가 원하던 전공을 더 공부할 수 있는 기회가 생겼고, 그렇게 나는 4학년 졸업을 앞두고 복수 전공을 시작했다.

수포자인데 이과생이었던 게 신기하다고 했던 나는 복수전공은 너~~ 너무 하고 싶었던 역사였고, 남들이 지루하고 생각도 하기 싫다고 하는 한국 고대사를 전공했다. 내친김에 대학원까지 준비를 했었는데 생뚱맞게도 고고학이었다. 물론 역사 전공자들 에게는 고고학이 뭐가 생뚱맞지?라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아주 어린 시절부터 책 읽고, 글 쓰는 것 좋아하고 수다가 많던 꼬마가 갑자기 컴퓨터를 전공한다고 남자들 속으로 풍덩 뛰어들더니 -그 당시는 공대를 가는 여자들이 몇 없어서 입학하면 4년 내내 숙제랑 밥값은 걱정 없다 라는 농담이 돌던 시절이었다.- 갑자기 역사에 원래 관심이 많았노라며 역사를 전공하고 싶다고 복수전공을 시작하더니, 제주도를 비롯해 전국 8 도애 각지를 돌아다니며 답사를 주도하더니 갑자기 땅을 파고 유적을 발굴하겠 다며 고고학 석사를 하겠다고 하는 나를 부모님은 의아하게 생각하셨다. - 사실 이때 부모님은  글로 표현하는 '의아해하다'라는 5글자로 표현할 수 없을 만큼 혼란스러워하셨었다 - 

아무튼 열심히 준비했지만, 그게 길은 아니었는지 전공 지도교수님과 학과장님의 추천서 2장과, 졸업자들 중 유일하게 논문이 A+인 3인 중 한 명이었지만 보기 좋게 떨어졌다.


아무튼 이렇게 진짜 해보고 싶었던 것이라 시작했던 그 모든 일들은 내 인생에 항상 전환점이 되어 왔다. 


사실 무모해 보일 수 있겠지만 결코 무모한 도전은 아니었다. 지금도 후회하지 않는 선택이었다고 단언할 수 있다. 내 인생에서  잘한 선택이라고 손꼽는다. 그만큼 최선을 다해 고민했고, 최선을 다해 열정을 바쳤으며, 죽을힘을 다해 즐겼다. 그래서 그만둘 때도 포기가 아니라 잘된 마무리였었고, 새로운 시작 앞에서 후회하지 않았다. 그만큼 열정을 다했기 때문에 후회하지 않을 수 있는 것이다.

- 내 인생에 대한 내 생각 중-


#_Third Turning Point In My Life


그렇게 역사를 전공해서 그 당시 나름 유명하다는 프로모션 기획회사에 250:1을 뚫고 당당히 이름을 올렸고, 전시컨벤션 기획/산업 디자인 전시를 기획하며 365일 중 300일은 야근이고 밤을 새운다는 기획자의 길을 걷고 있었다.

너무 고된 야근과 입으로만 깡다구를 외쳤지만 결국 저질 체력이었던 나는 "여자는 1년을 버티기 힘들다"는 불문율을 증명하듯 8개월 만에 그곳을 나왔고, 나를 제외하고 모두가 출근하는 집에서 자처하여 가사도우미(?)가 되었다. 그렇게 또 접하게 된 새로운 세상에서 -그동안 집안일이나 요리를 하는 거라곤 물장난이나, 배달 음식을 아주 보기 좋은 그릇에 담아먹는 거 정도였으니 지금 생각하면 참 너무도 곱게 키워주신 부모님께 감사할 따름이다- 이것저것 집안일을 도우며 경험한 것들을 글로 남기기 시작했는데 그것이 바로 블로그였다. 그렇게 나는 또 다른 세계로 빠져들고 있었고, 하나씩 하나씩 올리기 시작하면서 그동안 글짓기 대회에서나 빛을 발하던 나의 글쓰기 실력이 다수의 독자들에게 큰 호응을 얻었고, 그렇게 올리는 사진들에 왠지 앞으로는 절대 쓸 일이 없을 것만 같았던 나만의 기술(?)이며 묻힌 전공이었던 포토샵과, 일러스트 툴을 다시 활용하기 시작했다. 이렇게 조금씩 나름의 퀄리티를 갖춰가며 하루 1명이던 방문객이 1,000명이 넘어설 즈음 또 다른, 세 번째 터닝 포인트가 찾아왔다. 


녹색 네모창 살림 DIY에 뜨기 시작한 것이다.

그 당시에는 직접 파워블로거를 네이버에서 발굴하고, 배지를 주고, 행사를 하며 그들만의 리그를 만들어주기 시작하던 시절이었다. 그렇게 나는 "1인 기업, 개인 블로거, 믿고 보는 후기러"가 되었고, 일이 없을 땐 백수라며 깔깔거리고 웃지만 실제로는 손가락으로 자판을 두들기고, 카메라 렌즈를 신중히 조절하고 셔터를 눌러 포스팅을 하나 작성하면 수만의 사람들이 몰리고, 방문하며 3사 방송국에서 러브콜도 보내오는 "억대 연봉 블로거"대열에 합류하게 되었다.



사실 호기 좋게 들어간 회사를 어느 누구와도 상관없이 박차고 나왔을 때는  별다른 생각도 계획도 없었다. 그냥 야근에 지친 심신을 달래고 싶었을 뿐이었다. 3개월을 딩굴딩굴 밥만 축내는 덩어리?처럼 느껴졌을 때 집안일을 돕기 시작했고, 재미로 시작했던 포스팅이 인기를 끌기 시작했고 나는 그렇게 블로거가 되었다. 인기를 타기까지 시간이 필요했지만 10년을 기다려야 빛을 볼 수 있다는 블로거들의 세계에서 나는 운이 좋았다. 단 3개월 만에 누군가가 나를 알아봐 줬고, 많은 사람들이 나를 찾았으니까. 세상이 무너질 것 같았던 3개월이 그렇게 지나갔다.                                   - 내 인생에 대한 내 생각 중-


#_Forth Turning Point In My Life


부심 있는 프리랜서였지만, 인생에는 뭔가 다 이유가 있는 것 같다는 것을 이때 느꼈다.

그렇게 순탄하게 하늘 높은 줄 모르던 고공행진은 나의 건강 악화로 끝이 나버렸다. 하루아침에 추락한 것은 아니었지만 2년을 아팠으니 짧은 시간은 아니었다.  하나씩 천천히 활동을 접었고, 담당자들을 만나서 상황을 설명하고 협찬받는 것을 하나씩 정리했다.  꾸준히 글을 써오던 곳이 있었는데 그곳에도 더 이상 글을 게재할 수가 없는 상황이 되었다. 3사 방송국 출연도 해볼까? 말까?를 고민할 시점이 아니었다. 외출이 힘들 정도였으니까. 


이렇게 온라인 세상에서 먹고살던 사람이 온라인 세상에서 갑자기 퉁!! 하고 튕겨져 나와 완전히 단절하게 되었다. 그러는 사이 요즘에는 사이버 범죄라고도 불리는 "악플"이라는 것이 본격적으로 생겨나기 시작했고, 일베가 유행하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동시에 잘 나가던 주변 블로거들이 하나씩 무너 저 내려갔다. 악플에 무너지고, 신상 털기에 무너지면서 말이다. 하지만 온라인 세상은 완벽히 등지고 있던 나는 오히려 활동을 하지 않아 타격을 입지 않았고, 악플에 시달일 일도 없었지만 얼마나 세상이 변하고 있는 줄도 모르는 지경에 이르렀다. 


정신을 차리고 2년이 조금 넘은 시간이 지나 내가 괜찮아졌다고 생각하고 온라인 세계를 다시 두드렸을 때는 이미 너무 많은 사람들이 블로거였고, 이미 파워블로거에 대한 불신이 산재했고, 내가 더 이상은 어느 분야에서도 전문적임을 느낄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이미 어디든 신입으로는 취업할 수 없는 나이가 되어 있었고, 그렇다고 꾸준한 경력이 있어서 연봉협상을 논하며 경력직으로 들어갈 나이도 아니었다.  하지만 좌절할 나는 아니었다. 집에서 뒹굴뒹굴하는 것이 체질에 안 맞는 나라는 것을 나는 나 스스로 너무 잘 알았다. 열심히 이력서를 내고 모니터가 뜨거워 질정도로 리쿠르팅 업체를 뒤지고 또 뒤졌다. 


그렇게 해서 나는 내가 세상에서 제일 잘하는 것!! 말하는 직업, 서비를 하는 직업을 가지게 되었다. 


사실 사람들은 이때가 아쉽고 속상하지 않냐고 묻는데 나는 아니라고 단호하게 말한다. 물론 후회하기도 했고, 좌절도 했다. 2년여 시간을 아프고 나만의 세계에 갇혀 있다 나왔을 때 세상이 변한 걸 알았고 내가 설 곳이 어디도 없다고 느껴졌다. 하지만 그때 깨달았다. 내가 얼마나 운이 좋았던 사람이었고, 많은 과분한 사랑을 받았으며,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올라가던 인기가 지속되었다면 나는 아마 지금쯤 세상 무서울 것 없는 사람이 되어 있었을 것이라는 걸 말이다. 물론 한때 찬란했던 명성과, 부를 잃었지만, 겸손함과, 감사함 그리고 나에 대한 내 믿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래서 후회하거나 좌절하지 않는다. 그때가 있었기에 내가 조금 더 나은 사람이 되어있으니 말이다.                  - 내 인생에 대한 내 생각 중-

 

사람의 인생에는 크게 3번의 기회가 온다고도 하고, 기회는 준비된 자의 눈에만 보인다고도 하고, 기회는 대머리라 집을 수 없다고 도 한다. 인생에 있어서 기회가 단 3번만 오는 것은 아닐 것이라고 생각한다. 

인생에 딱 1번의 터닝포인트가 있을 수도 있지만, 12번의 터닝 포인트를 지나 다이내믹한 삶을 사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자신의 몫인 것 같다. 


나는 내 인생에 아직 더 많은 터닝포인트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오래도록 준비하고 간절히 원하던 일이 어렵게 터닝포인트가 될 수도 있지만, 정말 우연히 시작했던 일들이 터닝포인트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바꿔 말하면  어떻게 생각하는지에 따라서 터닝포인트 일수도 있고, 단순한 우연 기회 그리고 행운에 그칠 수도 있을 것이다. 


일단 시작이 반이라고 하는데, 이제 인간 수명이 늘어나서 80살이 수명 만렙이라고 한다면 나는 인생에 딱 절반 하고 아주 조금을 더 산 셈이다. 지금도 계속 자잘 자잘한 시도를 계속하고 있다. 팟캐스트도 진행하고 있고, 이렇게 글도 쓰고 있고, 직장도 다니고 있고, 블로그도 하고 있고, 인스타도 하고 있다. 유튭도 진행해볼 생각이다. 우려했던 걱정들을 일어나지 않을 일이라고 치부해 버리기엔 가볍지 않지만, 걱정했던 일들 때문에 시작하지 못했다면 지금 내가 여기에 있지는 않을 것이라 생각한다. 


시작이 '반'이라는데... 딱 '반 만' 하다가 말아도 좋으니 뭔가 시작해 보길 바란다. 

인생의 터닝포인트는 누가 만들어주는 게 아니라 스스로 만들어낸 결과 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어쩌면 각자 인생의 터닝 포인트는 누가 만들어주는 것이 아니라 내가 정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어느 순간 "어어... 그게 내 인생의 터닝포인트였어!"라고 말이다."                   - 내 인생에 대한 내 생각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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