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직 일기; 너 두 달 동안 뭔가 대단한 일을 할 것 같았지.
휴직 후, 복귀할 당시 내 머리카락 색은 노란색이었다. 원래는 회색 빛깔로 염색을 했는데 3일도 안되어 색깔이 빠져버려서 완전히 샛노란색이 되었다. 태어나서 처음이었다. 검은색, 갈색이 아닌 머리 색상은. 복귀하고서 일주일 정도는 그 머리색을 유지했다. 문득 내 나이에 이런 색의 머리라니, 혼자 거울을 보다 내가 한심하게 느껴졌다. 그날로 바로 염색약을 사서 다시 갈색 머리로 돌아왔다. 다시 회사에 복귀한 게 그제야 실감이 났다. 갈색 머리의 나를 한참 동안 보다가 혼자 웃었다.
‘너 두 달 동안 뭔가 대단한 일을 할 것 같았지.’
그런 생각이 들었다. 약간은 주변의 시선도 의식했던 것 같다. ‘저 사람은 나이도 있으면서 회사 다니기 싫다고 쉬다 와서는 머리가 저게 뭐냐.’라는 시선을 느꼈던 것 같다. 아무도 내게 머리 색상에 대한 얘기를 한 적도 없는데 말이다. 생각해보면 늘 남들 시선에 어느 정도 신경 쓰고 살았다. 무관심한 성격은 아니고 그렇다고 그렇게 예민한 성격도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어쩌면 많이 신경 쓰였던 건지도 모르겠다. 나는 정말로 타인의 시선을 아예 신경 쓰지 않고 마이웨이로 사는 사람들이 이 세상에 존재할까 의심스럽다. 신경 쓰이는 존재가 꼭 남이 아니라 가족일 수도 있고 어쩌면 자기 자신일 수도 있을 것 같다. 내가 기억하는 어렸을 때, 나는 내가 좋아하는 것보다 친구들이 좋아하는 것, 가족이 좋아하는 것을 무조건 따라 했다. 내 의사라곤 표현하지 않았다. “네가 좋다면 난 다 좋아.”였다.
휴직을 하게 되었을 때의 난 좀 뻔뻔해져 있었던 것 같다. 내가 생각하는 그 ‘뻔뻔함’이라는 단어가 곧 ‘의사표현을 하는 나’였다. 상대가 좋으면 다 좋다고 생각했던 나에게 그러한 변화를 준 건 직장이었다. 여기서 살아남으려면 뻔뻔해질 필요가 있어라고 결의를 다진 것 마냥 심리적으로 많은 변화가 있었다. 나의 노란 머리는 그런 심리가 더욱 표출되어 나온 결과물일지도 모르겠다. 고작 한 달 밖에 가지 못했고 다시 직장인이 되었을 때는 원상 복구되었지만. 그래도 며칠은 노란 머리 직장인이었으니까. 누군가 내게 “잘 어울려.”라고 말해주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왜 그랬어.”라고도 말하지 않아서 참 다행이다.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