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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바 아바나, 그 두 번째 날

Day2_epispde1. 레옹의 까사를 떠나 딸 록시의 까사로 가다

by 새벽 물고기

** 벌써 9월이다.

쿠바에서의 여행을 마치고 돌아온 시점을 기준으로 말하자면, 그간 일에 파묻히고도 또 치이며 아등바등거리다 이내 새로운 계절을 맞이해버렸다. 여행에서 돌아온 후에 그 얼떨떨함 느낌 안에서 맞닥뜨렸던 그 모든 상황을 써 내려갔어야 하는데 이렇게나 시간이 꽤나 흘러가 버렸다.

이곳에 딱히 막 야심 차게 쓰려고 한 것도 아니었고, 그저 내 기억이 낡아져 흐릿흐릿해지기 전에 온전한 나의 느낌을 가둬놔야지 싶었는데..

사실 좀 더 온화하게 표현하자면, 기억이 너무 멀리 가버리기 전에 확 펼쳐놓고 가끔씩 들여다봐야지.. 거기까지였다. 그런데, 나의 일상이 바쁘다는 이유로 부끄럽게도 '그 시간'을 저만치 흘려보내고 있었다, 내가.


*** 그리고 또 시간이 흘렀다. 여행에서 돌아온 지 이제 4년이나 훌쩍 지났지만, 시간 순서대로 당시 찍었던 사진들을 기록 삼아 읊조리듯 그때의 기억을 담담히 펼쳐 보이고자 한다.

갓 구워낸 빵처럼 김이 모락모락 나는 자세한 상황에 대한 묘사는 어려울지 몰라도 찍어두었던 사진들을 기록 삼아 기억의 최대치로 끌어내기로 한다. 하지만 사진과 기억에 의존하다 보니 인물의 이름이나 소요된 비용, 가격 등의 경우 아주 정확하지 않을 수 있음을 참고 바란다.


******

침대에 쓰러지다시피 파묻혀 자고 일어나자마자 찍은 사진. 창 밖의 아침 풍경을 남기고 싶었는데, 청명한 하늘과 창문살 사이로 '아침 특유의 온도'가 느껴졌다.
일어나서 얼결에 하룻밤을 보낸 방을 사진으로 남겨보았다. 부부가 실제로 사용하는 방답게 그 물건들이 어우러지는 특유의 분위기가 느껴진다. 침대 위에 놓인 내 짐들도 참 여행자답다.

일어나서 쿠바에서의 첫 아침을 온전히 느낄 수 있을 것 같은 집 안의 마당으로 나가 보았다.

사실 아침부터 살짝 들뜨기 시작했는데, 아마도 '이제부터 진짜 시작'이라는 설렘인 듯했다.

전날 밤엔 미처 살피지 못했던 집안의 풍경이 서서히 눈에 들어왔다.

빨랫줄 뒤로 보이는 벽에는 까사에 머문 여행자들의 손바닥들이 알록달록 색으로 남겨져 있었다.

세계 각지에서 온 여행자들의 흔적이 뭔가 정겨워 보였달까.

그 중 눈에 띄는 한국 여행자들의 이름도 반가워 찰칵

잠을 아주 푸욱 잤다고는 할 수 없지만, 그래도 피곤함에 쓰러지듯 잠을 자고 났더니 어느 정도 안정된 컨디션으로 돌아온 것 같았다.

아마도 전날 아바나에 도착한 순간부터 시작된 긴장감과 노곤함도 어느 정도 누그러졌기 때문이었으리라.


레옹이 아침을 곧 차려준다고 했다.

어떤 아침일까 싶기도 하고, 부엌 풍경도 궁금해 이내 졸랑 따라 들어갔다.

손때 묻은 도구들이 뭔가 레트로적인 느낌적인 느낌
레옹이 준비한 아침 메인 메뉴
자고 일어난 첫 날 아침의 그 하늘, 유독 푸르러 보인다.
아침 식사를 함께 할 마당의 야외 테이블

전 날 레옹의 친구들이 생일을 축하하며 앉아 있던 그 테이블 의자에 자리를 잡았다.

이내 레옹이 커피부터 내게 내밀었다.

에스프레소처럼 작은 잔에 담겨 나오는데, 색을 보아하니 이미 마셔보기 전에도 달달한 맛을 물씬 짐작할 수 있었다.

내게 맛있다며 어서 마셔보라는 듯한 레옹의 표정을 뒤로하고 커피 사진부터 찍었다. 여행의 순간순간을 하나하나 기록 겸 사진으로 남기고 싶었는데, 그런 나를 보며 레옹이 사람 좋은 웃음을 보였다.

한 입 대보니 역시 달짝지근했다. 그리고 빈 속을 싸악 채워주는 느낌.

레옹이 만들어 준 아침 메뉴
빵에 햄과 치즈가 전부인 단출한 구성이었지만, 달달한 커피와 함께 은근히 든든한 느낌이.

식사를 마치자 레옹이 자신의 열쇠고리를 주머니에서 꺼냈다.

까사에 머문 여행자들이 자신에게 선물로 준 것들이라며 내게 자랑하듯 자세히 보여준다.

에펠탑, 축구 선수 호날두, 소설 속 셜록 홈즈가 살았던 하숙집 주소 키링 등.

이걸 굳이 보여주는 걸 보니 레옹이 꽤 아끼는 애장품으로 보였다.

레옹이 보여준 열쇠고리
씨익 웃고 있는 호날두의 모습도 보인다.
그런 레옹의 모습을 기념삼아 한 컷


레옹의 아내가 아들을 돌보고 있는 방도 구경삼아 들어가 보았다.

아기가 있는 방답게 아기자기한 인형들과 포스터, 그리고 오래 사용한 듯한 티비가 눈에 들어온다. LG 텔레비전이었다.
레옹의 늦둥이 아들과 그의 아내. 다소 허스키한 보이스도 기억에 남는다.

나와 비슷한 또래로 기억하는 레옹의 아내였다. 레옹의 나이보다 훨씬 어려 보였고, 레옹이 큰 딸 이야기를 하는 것을 보니 아마도 이들은 재혼했나 보다, 그리고 아내가 미인상이다 싶었다.

그녀가 태어난 지 얼마 안 된 아들에게 애정을 담아 노래를 불러주는 모습이 왠지 평화로워 보이기도 하고, 친밀함도 느껴졌다.

당시엔 쿠바의 한 일반 가정집 풍경의 단면일 수도 있겠다 싶어 찍어도 되냐고 물어본 뒤 짧은 동영상으로까지 남겼다.

오동통하게 볼살이 오른 귀여운 아기의 얼굴이 아빠와 꼭 닮은 모습 같았는데, 사진으로 다시 봐도 영락없는 레옹의 아들이다. 낯선 사람인 날 응시하며 방글방글 웃는 모습도 그땐 더 귀엽게 느껴졌다.

이제 전날 레옹이 말했던 대로 큰 딸인 록시가 관리하는 까사로 옮겨야 했다. 배낭 외에도 다소 무거운 나의 캐리어와 함께 레옹의 집을 나섰다.

록시의 까사가 최종 목적지였지만, 현재 수중에 얼마 없는 현금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전날 미처 해결하지 못했던 은행의 ATM 기기도 빨리 찾아야 했다. 캐리어도 있어 이동 수단에 대한 고민이 잠시 들었는데, 길거리에 보이는 자전거 인력거가 눈에 들어왔다.

저걸 타보고 싶다고 하자 레옹이 흔쾌히 이끌었다. 이용 비용은 정확히 기억이 나질 않는데, 아무래도 옆에 현지인인 레옹이 있어서 그런지 그가 쉽게 흥정하기도 했고, 뭔가 되게 편리하게 인력거를 탄 느낌이었다.

공항 택시 이후로 현지에서 처음으로 탄 이동수단이었기 때문에 그런지 뭔가 설레이는 기분도 들었다.

그렇게 짧게 몇 분을 탔을까. 사실, 걸어갈만한 거리였지만 짐들도 많은 편이라 짐을 이고 걸아가기에는 무리수이지 않을까 싶었는데 역시 후딱 편하게 은행에 도착할 수 있었다.


은행에서 업무를 본 뒤에 재빠르게 찍은 은행과 그 주변 풍경

은행에서 볼 일을 본 뒤에 레옹이 록시의 까사까지는 걸어가면 금방이라고 해 레온의 뒤를 성큼성큼 쫓아 걸어갔다.

걸어가며 찬찬히 둘러볼 수 있었던 거리의 풍경
고맙게도 캐리어를 대신 끌어주는 레옹의 모습
그때 그 거리
록시네 까사의 골목

한 십여 분을 그렇게 걸어갔을까.

사실, 가는 동안 과연 이 길을 빨리 잘 외워서 주변의 은행이나 지리를 잘 익히고 다닐 수 있을까 하고 슬그머니 불안감도 느꼈는데......

까사 테라스에 나와있던 레옹의 딸 록시

드디어 록시의 까사에 도착했다.

바깥 출입문으로 통하는 철문 뒤의 계단을 올라가 2층에 도착하니 외관에서 느낀 것보다 훨씬 아늑한 느낌의 실내 모습이 이어졌다.

까사 방명록의 다소 신박했던(?) 후기. 후에 록시가 이게 정확히 무슨 내용이냐고 물었지만, 나는 대충 둘러댔던 기억이 있다.


록시는 20대 초반의 레옹의 큰 딸이다.

마치 가수 '아리아나 그란데'를 연상케 하는 작고 아담한 체구였는데, 또렷한 이목구비와 꾸미길 좋아하고 오종종하게 센(?) 분위기가 풍기는 아바나의 미녀상이었다.

사실, 아빠를 그리 닮지 않은 외모가 엄마 쪽을 쏙 빼닮았나 싶었는데 순간 스쳐간 생각은 레옹이 지금 현재 부인에서도 느껴지듯 여자 외모를 많이 보나보다 싶었다.


록시는 영어를 못하고 스페인어만 구사할 줄 안다고 했다.

나 역시 영어가 취약한 편이었으나 스페인어 역시 전혀 몰랐기에 우리의 의사소통은 처음에는 가히 쉽지 않았다.


하지만, 점점 시간이 흐르면서 신기하게도 바디 랭귀지와 힘찬 눈빛과 짧은 영어 단어를 큰 소리로 말하는 것으로도 가능했다.


록시와는 빠른 시일 내에 가까워졌는데, 서로 의사소통이 매끄럽게 원활하진 않았어도 내가 여행 당시 근무했던 학원의 재수생 여학생들과 비슷한 또래라 그런지 아마도 더 가까워졌나 싶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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