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이야기는 얼마나 아프고 눈이 부신가. 이토록 환할 줄이야, 우리는
다소 긴 메시지였습니다. 어제 어난이씨가 술이라도 한잔했나, 아침에 일어나 SNS로 전달된 이 메시지는 술술 읽기에는 좀 얼얼한 감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어딘가 좀 묘했습니다. 마치 마지막 부분의 문장들이 샘을 쉽게 놓아주지 않는 것처럼 샘은 그 부분을 반복해서 읽어보았습니다. 잠시 생각을 정리한 뒤 샘은 간단하지만, 파이팅 의미의 답을 보내기로 했습니다.
「네! 슬프지만 아름다운 이야기이다! 난이가 바다에서 거품으로 사라졌지만, 오늘 또다시 태어났음을 매우 축하합니다! 행복한 하루를 오늘도 즐기십시오.」
맞춤법도 틀리지 않았네, 외국인이 참 깔끔하게 한국말을 잘해, 대단해.
난이는 샘이 건넨 메시지를 읽으며 아직 샘의 음성을 실제로 듣지 못했지만, 이 메시지 글자 하나하나가 귀로 전해져 오는 것 같았습니다.
공주라는 뜻을 가진 순우리말 이름인 ‘난이’라고 손수 이름을 지어주었던 것은 그녀의 아버지였습니다.
‘어난이’. 결혼한 지 칠 년 만에 얻은 딸이 워낙 귀했고, 아이의 커다란 검은 눈동자를 보고 있으면 소우주 하나를 만든 것 같다는 생각에 참 환한 기쁨을 느꼈습니다. 특히 정갈한 여백같이 맑은 눈빛을 가진 아내를 쏙 닮은 딸이 태어나 더욱더 기뻤습니다. 난이의 아버지는 동네에서 한의원을 조그맣게 시작을 했는데, 침을 잘 놓고 약도 잘 짓는다며 다른 인근 동네, 또 그 멀리 동네에서도 사람들이 빈번히 찾아오며 그의 성씨를 딴 ‘어의원’은 점점 더 유명해졌습니다. 덕분에 난이 역시 풍족한 환경에서 부모님의 사랑을 온전히 받으며 구김살 없이 자랐습니다. 그러던 난이가 열다섯 살이 된 어느 완연한 여름날, 부모님은 차 사고로 갑자기 세상을 떠나게 되었습니다. 부모님의 죽음을 차마 실감하지 못한 채 그 슬픔의 크기도 제대로 가늠하기조차 벅찼던 난이는 한동안 말을 잃은 채 거의 입을 꾹 다물고 지냈습니다. 난이의 할머니 역시 하루아침에 아들과 며느리를 잃어버리고 거의 실신 지경이었지만, 남은 핏줄은 아들이 남긴 이 아이 하나, 아직 어린 손녀인 난이를 보며 마음을 굳게 다잡곤 했습니다. 오랜 세월을 학교에서 교사로 일했던 할머니는 특유의 카리스마로 주변에서도 존경할만한 여인의 면모를 지니고 있었는데 특히, 그녀만의 지혜를 담아 난이에게 많은 가르침을 주곤 했습니다.
난이는 커갈수록 특유의 해맑고 다정한 표정이 도드라졌는데, 그녀를 알게 된 사람들은 그녀의 밝고 생기 어린 표정도 칭찬했지만, 특히 맑고 고운 목소리에 무척 매료되었습니다. 듣고 있노라면 단순히 예쁜 목소리가 아닌 마치 몸에 남아있는 미끄덩하고 끈끈한 느낌을 씻겨 내려주는 것만 같았습니다. 또 마음 밑바닥에 도사리고 있는 묵은 감정의 먼지들을 털어내는 듯 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잔잔한 바람처럼 귓가를 살랑살랑 간지럽히는 듯한 여운마저 남겨주곤 했습니다. 그랬습니다. 이런 목소리만큼 부모님의 사고 이후 다시 원래의 밝은 모습으로 잘 지내는 듯 보였습니다. 하지만, 웃고 있는 얼굴 뒤로 채워지지 않는 갈증과 가까운 외로움은 언젠가부터 난이의 마음에 서려 있었습니다. 아마도 부모님의 빈자리 때문이었을까, 그보다는 꼭 누군가를 만나게 될 것만 같은 불쑥 불쑥 찾아오는 예감같은 것이 머릿속을 맴맴 맴돌았습니다. 앞으로의 운명을 움켜쥔 손금처럼 필시 걷고 또 걷다 보면 내 앞에 펼쳐지듯 누군가가 나타나리라.
그러다 난이는 어느덧 첫 직장 생활을 하면서 회사에서 한 남자를 알게 되었습니다. 그는 난이의 직속 상사였고 그가 쑥스러워하며 먼저 내민 데이트를 거듭하면서 난이는 이 사람이 참 따뜻하다고 느꼈습니다. 맛있는 밥을 함께 먹고 구미가 당기는 최신 영화를 극장에서 함께 챙겨 보고 좋은 경치의 장소에 다니며 난이의 삶 속에 이 남자는 자연스럽게 스며들고 배어든 듯했습니다. 그렇게 삼 년 동안 마음을 열며 만났고, 어쩌면 난이 자신보다 난이를 더욱 잘 알고 이해하며 영원한 사랑을 맹세할 것만 같았던 남자였습니다. 그러던 중 그는 어느 날 회사 상황으로 어쩔 수 없이 일 년간 다른 나라로 멀리 가게 되었는데, 떠나기 전에 일 년 후에 돌아오면 결혼을 하자는 약속을 남겼습니다. 그렇게 그가 먼 나라로 떠난 후, 서로의 낮과 밤이 달랐던 두 사람이었지만 매일 안부를 주고받으며 물리적 거리는 두 사람 사이에 그리 큰 문제가 되지 않는 듯 했습니다.
어느 날 그는 공원에서 매일 개를 산책시키는 붉은색 머리를 가진 어떤 여자를 알게 되었다며 본인의 새로운 관계 소식을 넌지시 난이에게 흘렸습니다. 그리고 점점 연락이 눈에 띄게 줄어든 그는 난이에게 잠시 시간을 갖자고 하더니 결국 헤어짐을 고했습니다. 그 여자와 새로운 연애를 하게 된 남자의 일방적인 통보에 누구보다 사랑받고 참 안정적이라고 느꼈던 관계는 그렇게 허무하게 끝나버렸습니다.
난이는 이후 사계절이 다 지나도록 상실감과 허무함으로 마음 둘 곳 없는 사람처럼 굴었는데 어쩌면 일찍 여읜 아버지의 빈자리를 그에게서 채우려고 했던 것인지도 모르겠다며 자신을 책망하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그저 남자와 이 상황이 야속하기만 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난이는 SNS에서 남자와 그 여자와의 웨딩 촬영 사진을 보게 되었습니다. 그 사진을 보자마자 난이는 눈을 질끈 감아버렸는데, 마치 오랜 세월 편안히 앉아 쉬고 있었던 나무 둥치가 누군가에 의해 댕강 잘려버려 제 나이테를 하염없이 드러내는 걸 속수무책으로 지켜보는 듯했습니다.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마치 목을 누르는 슬픔이 견딜 수 없었던 그녀는 본인의 일상 흔적이 고스란히 담긴 SNS를 아예 닫아버렸습니다. 그저 지나갔으면 했지만 매일 아침 찾아오는 그 슬픔이 버릇처럼 자리 잡을까 봐 어느 순간엔 커다란 두려움마저 생겨날 정도였습니다.
그러다 몇 달이 흘렀을까. 언젠가 남자와 뜨거운 여름날 스노클링을 함께 즐겼던 아름다웠던 그때의 바다색이 불현듯 떠올라 닫아버린 SNS를 다시 들여다보았습니다. 그리고 검색어에 ‘에메랄드색바다’라고 입력을 하자 여러 사진이 핸드폰 화면에 한눈에 들어왔습니다. 그런데 어떤 외국인이 에메랄드 색감을 띄는 바다를 배경으로 자신의 얼굴을 가까이 클로즈업해 찍은 사진을 보게 됐습니다. 그 사진을 선택해 남자의 웃는 사진을 좀 더 자세히 보게 되자 난이는 잠시 멍해졌습니다......
홀린 듯 그의 SNS로 들어가자「영국에서 온 샘. 한국살이 7년 차」라고 적혀있는 자기소개란이 보였습니다. 그리고 사진은 열 장 남짓 있을까, 서울의 야경, 간판들이 빼곡한 거리, 한옥이 보이는 골목 풍경, 그리고 양양의 바다에서 환한 표정으로 남긴 사진을 차례차례 보면서 난이는 저도 모르게 “아..” 하는 감탄사를 내뱉고 말았습니다.
「한국 이름을 무엇이라고 하세요?
난이.. 난이라고 해요 :)
나니? 예쁘다. 이름이 예쁜녀이다.
하하, 고마워요. 우리나라 말로 공주라는 뜻이에요.
와! 공주님이구나 ;) 」
그의 계정으로 용기 있게 직접적인 메시지를 보낸 이후 난이는 그와 메시지를 주고받으며 점점 친밀감을 쌓게 되었습니다.
샘은 한국에 먼저와 영어 강사로 일하고 있던 친구의 추천으로 호기심 반 기대 반으로 한국에 오게 되었는데, 샘이 한국에 빨리 적응하며 한국어 실력을 향상할 수 있었던 건 사실 친구보다는 이곳에서 만난 한국 여자들의 도움도 컸기 때문이었습니다. 외향적이고 훤칠한 외모를 가진 그에게 호감을 표시하는 여자들이 많았는데, 특히 여러 여자 가운데 마음을 준 것은 두 번 남짓이었습니다.
첫 번째 여자는 시간이 지날수록 샘이 다른 여자에게 눈을 돌려 자신을 떠날까 봐 무척 불안해하였습니다. 그리고 언젠가는 샘이 자신을 훌쩍 떠나버릴 것만 같다며 그 예감이 적중할까 봐 불안에 더욱 떨었고, 그 불안은 그녀의 속을 점점 갉아먹으며 샘마저 점점 지치게 하고 말라 가게 했습니다. 결국 감당하기에 너무 벅찼던 샘이 관계를 정리하면서 마무리되었지만, 자신을 끊임없이 구속하는 여자의 모습에도 상처를 내심 받은 샘은 한동안 한강의 공원에서 달리기하며 마음을 추슬렀습니다. 그리고 또 한 번의 그녀는 샘과 함께 서울의 곳곳을 발이 닿는 대로 걷고 또 걸으며 자주 함께 산책하던 여자였는데, 그리 많은 대화를 하지 않아도 함께 걷다 보면 일상의 스트레스가 생각이 나지 않아 좋았습니다. 그러다 걷다 지치면 둘은 작은 식당을 찾아 밥을 함께 먹곤 했습니다. 여자는 어릴 때 청력을 손실해 비행기가 착륙할 때 내는 소음 정도의 큰 소리의 크기만 들을 수 있었는데, 그녀는 수화를 사용하는 대신에 보청기에 의지하며 샘의 입 모양을 읽으며 대화를 비교적 또박또박 이어갔습니다. 다소 어눌한 발음이었지만 샘과 무리 없이 대화를 나누었고, 샘 역시 그 당시엔 한국말이 지금보다 어느 정도 서툴렀기에 그녀와 대화하기 위해 더 귀를 기울이고, 정확한 한국어를 말하기 위해 순간순간 열심히 노력했습니다. 샘은 그녀에 대한 책임감을 조금씩 느껴가고 있었는데, 어느 날 여자는 느닷없이 종교인의 길을 걷겠다며 샘에게 그만하자고 했습니다. 그 선언은 샘에게 꽤나 충격을 안겨주었고, 일 년이 지나 그 충격은 헛헛한 실소로 바뀌게 되었습니다. 여자는 종교인으로 살아가겠다고 선언한 지 일 년여 만에 자신의 결혼 소식을 SNS로 알렸기 때문이었습니다. 이후 샘은 진지하게 만나는 연애보다는 책임감과 무게감이 덜한 짧고 가벼운 만남을 선호하였는데, 여자들이 먼저 호감을 표시하여도 쉽게 마음을 내어주지 않으며 일정한 거리를 유지했습니다. 책임감을 덜 느끼고 싶었고, 무엇보다도 관계 안에서 상처를 받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었습니다.
샘은 작은 우연처럼 연락을 주고받게 된 난이가 실제로도 만나자고 하자 잠시 고민했습니다. 그간 대화를 통해 그녀가 친절하고 다정다감하며 유머러스한 부분도 갖추고 있는 사람이라고 어렴풋이 느끼곤 했지만, 지난 이별을 이야기하거나 자신의 전생에 대한 이야기를 쏟아낼 때는 뭔가 진지하면서도 여린 듯했고, 무엇보다 사람을 받아들이는 깊이가 남다르게 깊을 것만 같아 망설였습니다.
그래도 그저 가볍게 만나 대화를 해보는 것도 괜찮을 것 같아 어느 주말 저녁에 한강과 가까운 어느 역 앞에서 두 사람은 만나기로 약속을 정했습니다.
그날은 약속 시각 전에 소나기인 듯 빗줄기가 사정없이 세차게 내렸습니다. 비 때문에 지하철 출구 밖으로 나가지 않고 계단 아래에서 기다리고 있던 샘은 자신에게 걸어오는 난이를 한눈에 알아보았습니다.
두 사람이 눈을 마주치며 시선을 거두지 않았던 그 순간, 난이는 샘의 눈을, 샘은 난이의 눈을 오래도록 바라보았습니다. 한 십 초 정도, 어쩌면 이십 초에 가까운 시간이었는지도.
특히, 샘은 그녀와 눈을 마주치자 이상하게 심장이 졸아드는 것 같았습니다. 분명 같은 공간 안에 있지만, 저 여자가 있는 공간이 너무나 선명해서 주위에 있는 모든 풍경이 빙글빙글 그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것만 같았습니다. 만나기 전 이미 그녀를 사진으로 보긴 했지만, 직접 눈앞에서 물기를 머금은 듯한 그녀의 눈빛과 작은 미소를 봤을 때 명치끝이 저렸습니다.
나는 혹시 저 여자를 또 잃기 위해 만난 것은 아닐까. 그런데 왜 ‘또’라는 생각이 저절로 드는 것일까. 그녀가 손을 먼저 내밀었습니다. 악수를 하자 우린 같은 시간 속에 있구나, 부드러운 손에서 전해져 오는 짜릿함. 그녀의 몸에 은하라도 흐르는 건 아닐까.
안녕하세요, 나예요. 반가워요.
그녀가 목소리를 낸 순간 샘의 눈동자가 크게 흔들렸습니다.
한국에서 살면서 처음 들어보는 목소리였습니다. 맑고 청아한 음색이 선명하면서도 투명하게 샘의 귓가를 타고 흘러들어왔습니다. 안녕하세요, 나는 샘이에요, 반가워요.
난이 역시 커다란 나무를 닮은 듯한 샘의 진한 눈동자를 들여다보자 마음 깊은 곳에서부터 두근거림에 가까운 진동이 울리는 것을 느꼈습니다. 희미한 슬픔과 간절함, 안도감이 뒤섞여 커다란 거품처럼 일렁이며 점점 환하게 차오르는 듯했습니다.
난이를 보며 샘은 이 순간, 꼭 그녀의 손을 잡고 놓치지 말아야겠다고 다짐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