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故 김현 선생의 『사라짐, 맺힘』 을 읽고
그런 경험이 있다. 어떤 사람과 동시대를 보내지 못했다는 아쉬움을 느끼게 되는 경험. 학창 시절, 故 김광석이 천 회 넘는 공연을 했다는 한 소극장 앞에 있는 그의 흉상 앞에서 그런 아쉬움 때문에 서성이던 날이 있었다. 10년 만 일찍 태어났다면, 그 숱한 공연들 중 한 번은 그 자리에 함께 있을 수 있지 않았을까.
그런 경험을 몇 년 후에도 또 하게 되었는데, 그것은 故 김현 선생을 알게 되었을 때였다. 이 나라에서 국문학을 공부한다면, 두 거인의 이름을 들어보지 않고 지나갈 수 없다. 한 분은 앞서 언급한 故 김현 선생이고, 다른 한 분은 故 김윤식 선생이다. 학부 시절만 해도 故 김윤식 선생께선 연로한 나이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활발히 당대에 발표되는 소설에 대한 단평을 써내셨던 기억이 남아 있다. 두 선생은 필생의 라이벌이었다고 한다. 두 선생의 연구를 덜어낸다면, 한국 문학에서 이야기할 수 있는 것은 그다지 많이 남아 있지 않을 것이다. (이와 비슷한 생각을 학부 때 같은 과 형에게 털어놓은 적이 있었다. 레포트를 작성하거나 소논문이라도 작성하려고 치면, 앞선 이들의 연구에서 그 근거를 찾아 내 주장을 뒷받침해야 하는데, 그렇다면 도대체가 독창적인 내 생각을 어떻게 글로 써낼 수 있느냐는 푸념이었다. 그리고 내가 주로 근거를 찾아내었던 텍스트들은 대체로 두 선생의 글들이었다. 아마 많은 국문학과 학생들도 나처럼 두 선생들이 쌓아놓은 성 안에서 헤메었을 것이다.)
이 책을 처음 접한 것은 발간되었을 때였다. 그 때의 나는 영국에서 잠시 한국으로 귀국한 시기였고, 이국으로 가져갈 만한 한글로 된 책을 찾고 있었다. 그러다 뒤늦게 이 책이 발간되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사실 처음에는 동명이인의 시인의 에세이집인 줄 알았다. 인터넷 서점의 작가 설명란까지 읽고 나서야 나는 이것이 故 김현 선생의 글인줄 알았고 바로 구입했다. 그러나 나는 그 당시에 이 책을 끝내 다 읽지 못했다. 외국어인 영어를 나의 언어처럼 익히겠다는 각오로 떠난 타지에서 한글로 된 책을 읽는 것이 죄스럽게 느껴지기도 했지만, 대체로 내가 게으른 탓이었다.
얼마 전 우연히 책꽂이에서 이 책을 집어든 이후로, 나는 끝내 다 읽지 못했던 반절의 독서를 마칠 수 있었다. 앞부분이 잘 기억나지 않을 정도로 세월이 많이 흐른 뒤에야 이 책을 다 읽을 수 있었다. 선생의 문체는 선생께서 활동하시던 시절에는 독특하고 세련된 것이라고 평가되었다고 한다. 때론 오래된 책들을 읽을 때면, 부득불 낡아질 수 밖에 없는 시대적 내용에서뿐만 아니라 문체에서도 오래된 냄새를 맡게 된다. 그러나 이 책에는 그런 흔적을 찾아보기 어려웠다. 이 책의 모든 내용을 내가 깊이 이해한 것은 아니나, 군데 군데 깊게 남은 부분들이 존재한다.
고흐를 보고 나서 느낀 최초의 감정은, 현대미술이라는 이름 밑에서 가짜 미친 짓을 하는 수많은 화가들에 대한 증오였다. 고흐가 그의 생명을 소진해가며 보여준 이 사회의 한 징후를, 머리로 이해하여 그것을 재구성하려는 가짜 미친놈들의 그림을 우리는 얼마나 많이 대하는 것일까. 미쳐서 결국은 자살까지 한 한 미치광이 예술가에게서, 그의 고통과 아픔을 보는 대신에, 미치는 시늉을 함으로써 그를 이해·모방하려고 하는 예술가들의 제스처. 고흐의 그림은 그러나 예술이 제스처가 아니라 바로 고통 그 자체임을 보여준다.
- 김현, 『사라짐, 맺힘』, 258쪽.
근래에 흔히 '홍대병'이라 일컫는 것의 뿌리를 선생은 고흐와 가짜 미치광이 예술가들에게서 찾아내고 있는 것이다.
그(로댕)의 조각은 두 개의 유형으로 대개 가를 수 있다. 하나는 미완성 조각들이다. 창작을 해본 경험이 있는 사람들은 알겠지만, 제작의 어느 순간에 이 이상 손을 댈 수 없다는 절망감에 에술가가 사로잡히는 경우가 수다하다. 대부분의 경우는 그 경우에까지도 제작을 밀고 나가 작품을 망쳐버린다. 로댕은 그러나 그 순간에 제작을 끝내버린다. 거기서 제작을 끝냄으로써 그는 그의 작품을 보는 사람들에게 제작의 어려움까지를 확인시키는 것이다.
- 김현, 같은 책, 279쪽.
로댕에 관한 사유는 개인적으로도 뼈아프게 와닿는데, 때로는 그만 써야 하는 글에 관해 나는 알 수 없는 의무감에 짓눌려 '밀고 나가 망쳐버린다.' 여타 다른 많은 책들이 그러하겠지만, 이 책에선 시간이 흘러도 동시대의 일처럼 공감할 수 있는 것들이 남아 있다. 고흐와 로댕의 작품들이 여전히 향유되고 있는 것처럼, 선생의 글들도 그러하다.
선생이 교류하고 평론했던 작가들의 목록은 그 자체로 한국 문학사의 거장 목록이라 할 만 하다. 김수영, 이청준, 최인훈, 김승옥, 김지하, 최승자, 기형도, 윤후명, 임철우, 황지우 등등. 그의 제자들도 문단에서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다. 또한 신형철의 경우처럼, 문단에 혜성같이 등장하는 신인 평론가에게 붙는 극찬의 표현은 "제2의 김현"이다. 그의 새로운 글들을 더 이상 읽을 수 없다는 아쉬움이 사무치게 다가오는 저녁이다.
하지만 이를 뛰어넘는 아쉬움이 하나 더 있는데, 그것은 그의 전집을 대하는 출판사의 태도다. 문학과지성사는 선생과 그의 동료 문인들이 시작한 동인 잡지인 <문학과 사회>에 뿌리를 두고 있다. 그런 중요한 인물의 전집이 30 여년이 되도록 새로운 형태로 나오지 않고 있다. 전집이 담고 있는 내용과 다르게 그 인쇄 형식은 많이 낡은 형태이다. 학교 도서관에서 그 전집을 찾아 읽었을 때, 깨알같던 글씨와 오래된 책 상태로 인해 어려움을 겪었던 것이 기억에 남는다. 그의 전집은 이제는 구하기도 어려우며, 읽기는 더더욱 어려운 판본이다.
물론, 점점 축소되는 출판업계의 시장과 더불어, 이제는 많은 사람들이 찾지 않는 -더군다나 타계한지 30년이 되어가는 작가의 책이기에 더더욱!- 문학평론이라는 특수성을 충분히 이해한다. 그러나, 선생의 글을 뒤늦게나마 읽고 싶은 지금 세대의 독자의 바람을 출판사도 생각해주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