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의 자율성 너머를 응시하기

- 지젤 샤피로의 『작가와 작품을 분리할 수 있는가?』를 읽고

by 고전파


예술의 자율성 너머를 응시하기





%EC%A7%80%EC%A0%A4_%EC%83%A4%ED%94%BC%EB%A1%9C,_%EC%9E%91%EA%B0%80%EC%99%80_%EC%9E%91%ED%92%88%EC%9D%84_%EB%B6%84%EB%A6%AC%ED%95%A0_%EC%88%98_%EC%9E%88%EB%8A%94%EA%B0%80,_%EC%9D%B4%EC%9D%8C.jpg?type=w773 지젤 샤피로, 『작가와 작품을 분리할 수 있는가?』 ,이음






예술가의 범죄와 비윤리적 행위가 드러날 때마다 대중은 딜레마에 빠진다. 로만 폴란스키의 영화를 보며 박수를 쳐도 되는가? 페터 한트케의 노벨상 수상은 정당한가? 가까운 예로, 2025년 한국에서 정의로운 경찰 역할로 많은 사랑을 받았던 배우의 소년 전과가 밝혀졌고, 그는 은퇴를 선언했다.



'소년범 논란' 조진웅, 은퇴 선언…"모든 질책 겸허히 수용"(종합)



우리는 흔히 "죄는 미워하되 사람은 미워하지 말라"는 명제를 방패처럼 꺼내 들곤 했다. 하지만 이 책의 저자 지젤 사피로는 이 오래된 방패가 사실은 치밀하게 만들어진 '사회적 합의'이자 '전략'이었음을 폭로하며, 우리에게 훨씬 더 복잡하고 윤리적인 질문을 던진다.




1. '분리'는 본질이 아니라 '방어 전략'이었다




이 책에서 가장 흥미로우면서도 핵심적인 주장은 "작가와 작품의 분리는 자연스러운 법칙이 아니라, 역사적으로 구성된 법적·사회적 방어 기제"라는 것이다.



사피로는 19세기 프랑스 문학장의 형성을 추적한다. 보들레르나 플로베르 같은 작가들이 미풍양속을 해쳤다는 이유로 법정에 섰을 때, 그들을 변호하기 위해 동원된 논리가 바로 "작품 속 화자의 목소리와 작가의 인격을 동일시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었다. 즉, 예술의 자율성을 확보하고 작가를 처벌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분리의 논리'가 발명되었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작품의 자율성을 주장하는 것은 처음에는 검열과 법적 처벌로부터 작가를 보호하기 위한 방패였다. 그러나 오늘날 이 방패는 윤리적 비판으로부터 권력형 범죄를 옹호하는 수단으로 변질되기도 한다."




우리가 금과옥조처럼 여기던 '예술지상주의'가 사실은 당대의 검열에 맞서기 위한 투쟁의 산물이었다는 지적은 날카롭다. 문제는 시대가 변했다는 점이다. 과거에는 국가 권력이 예술을 탄압했다면, 현대에는 거장이라는 지위를 가진 예술가가 그들의 '상징적 자본(명성)'을 이용해 약자에게 폭력을 가하는 경우가 많다. 저자는 이렇게 묻고 있는 듯하다. 약자를 보호하기 위해 만들어진 논리가 강자를 비호하는 데 쓰인다면, 우리는 이제 그 논리를 수정해야 하지 않을까?





2. 작품을 불태우지 않되, 맥락을 복원하기





그렇다면 우리는 범죄를 저지른 작가의 책을 모두 불태워야 하는가? 사피로는 '캔슬 컬처(지우기 문화)'에 대해 신중한 태도를 보이며 두 번째 중요한 논점을 제시한다. 비판적 맥락화이다.


사피로는 작품을 도서관에서 치워버리는 식의 삭제는 반대한다. 역사를 지우는 행위이기 때문이다. 명명백백한 소수의 범죄들과 다르게, 윤리적이거나 도덕적인 판단은 비가역적이지 않다. 어떤 경우에는 시간이 흐름에 따라 재조명되고 사건의 진실이 다시 밝혀지는 경우가 있다. 그게 아주 드물더라도 말이다. 더군다나 무조건적인 삭제는 마오쩌둥이 자행했던 '문화대혁명'과 같은 결과로 귀결될 수밖에 없다.


대신 저자 지젤 샤피로는 작품을 작가의 삶, 그리고 그가 저지른 행위와 '다시 연결'하여 읽을 것을 제안한다. 작품은 작가의 무의식과 세계관이 투영된 결과물이므로, 작가의 여성혐오나 인종차별적 시각은 작품 속에 교묘하게, 혹은 노골적으로 녹아있기 마련이다.


따라서 독자와 비평가는 작품을 숭배의 대상이 아닌 분석의 대상으로 삼아야 한다. 예를 들어, 루이 페르디낭 셀린의 반유대주의 팜플렛을 출판할 때, 그것을 문학적 걸작으로 포장하는 것이 아니라 주석과 해설을 통해 그 위험성과 혐오의 맥락을 낱낱이 밝히는 방식이다.




3. 분리할 수 없음을 인정하는 용기





지젤 사피로의 결론은 명쾌하면서도 무겁다. 작가와 작품은 온전히 분리될 수 없다. 작가는 자신의 이름(브랜드)으로 명성을 얻고 책을 팔며, 그 명성은 때로 범죄를 덮는 권력이 된다. 이익은 연결되어 누리면서 책임만 분리하겠다는 태도는 기만이다.




이 책은 우리에게 작품을 감상하는 새로운 윤리를 요구한다. 맹목적인 비난도 아니며, 맹목적인 옹호도 아니다. 불편함을 직시하며 읽는 태도다. 아름다운 문장 뒤에 숨겨진 추악한 진실을 알고도 그 문장을 아름답다고 말할 수 있는지, 혹은 그 아름다움이 폭력 위에서 피어난 것임을 인지하며 읽을 것인지.






그 판단의 몫은 이제 성숙한 독자에게 넘겨졌다. 그리고 이것이야말로 동시대의 독자가 해내야 할 엄중한 책무일지도 모른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그러니 '너무'를 너무 조심하지 말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