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winter flush Dec 17. 2023

공간, 인연

마음을 나누다


마음 공작소가 문을 연지 5년의 시간이 다 되어간다.

이곳에 오는 분들의 평안함과 안온함을 바라며 공간을 지키고 있다.

늘 같은 마음으로 그 자리에 선다는 것에 큰 노력이 필요하다는 걸 알았고,

무엇보다 공간 지기가 좀 더 나은 '내'가 되기 위해 면면히'가다듬기'해야 함을 유념하게 된다.

결국 나는 이 공간을 지키며 조금씩 성장하고 있다. 이것이 공간이 주는 힘이라는 걸 새삼 깨닫는다.

그간 이곳에서 제법 많은 인연을 만나게 되었고, 그들도 나도 성장하는 시간을 얻게 되었으니 내겐 참 소중하고 귀한 곳이다. 부정적인 마음은 밀어내고 좋은 마음을 담으려 노력했고, 그 마음은 자연스러움으로 흐른다.

스치듯 지나간 인연들도 있지만 처음부터 지금까지 줄곧 함께 이 자리를 지키는 가족 같은 이들도 늘었다.

깊은 마음을 꺼내고 공감하고, 때론 아파서, 서러워서, 너무 행복해서 우는 시간 속에 아이같이 맑은 마음을 만난다.

체면도 버리고, 가식을 걷어내고, 순수함이 닿을 수 있도록 마음을 열게 되는 시간들.

공간에 담긴 마음들을 오래 간직하기 위한 마음 그릇을 넓히는 일.

이 모든 게 공간 지기의 몫이다.


며칠 전, 1기 에니어그램 팀 식구들이 한 해 마무리 인사로 찾아와 주셨다.

이들은 마음 공작소가 있기 전부터 수업을 받으신 분들인데, (사실 이들의 요청으로 에니어그램 수업을 시작하게 되었다.) 혼자 공부만 하고 있던 내게 수업을 할 수 있는 힘을 실어주신 분들이다. 십여 년 공부했으니 가르칠 수 있다고 북돋아 주셨고, 기꺼이 마루타가 되어 수업을 받겠다고 해주신 고마운 분들이다. 외부 스터디룸을 빌려 1년 넘게 수업을 하고, 그 계기로 수업 팀이 늘어나게 되었고, 예상치 못한 기회에 작은 공간을 마련하게 되었으니 돌아보면 내 의지만으로는 할 수 없는 기적 같은 일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그 후로 이어진 마음들이 하나 둘 늘어나 이 공간이 아니었으면 이런 인연을 이어갈 수 있었을까 싶은 좋은 분들이 별처럼 차곡차곡 쌓였다.

내게 또  특별한 의미로서의 인연은 친구들인데, 어릴 적 친구들이 이런저런 계기로 수업을 받게 되는 경우가 생기면서 평소 같으면 나누지 않았을 깊은 마음을 수업을 통해 꺼내게 되며 더 깊이 이해하고 돈독한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는 것이다.  친구들과의 수업은 내게 진정한 의미의 친구로 거듭나는 계기를 만들어준 시간이어서 더 소중하게 다가온다. 이 또한 공간이 주는 힘이었음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최근에는 수업을 받으신 분들의 자녀들을 개인적으로 상담하고 있는데, 부모와 자녀와의 관계 회복에 좋은 역할을 하는 것 같아 뿌듯한 마음이다. 수년간 대화가 단절된 상태에서 이젠 아들이 먼저 부모를 찾아 대화를 요청한다는 말씀을 전해 듣고 올 한 해 내게 가장 기쁜 일이 되었다. 공간은 내게 계속 거듭나라 부추긴다. 이곳이 아니었으면 이 나이에 대학원을 가고, 심리치료 공부를 할 생각조차 하지 못했을 것이다.  내향적인 내가 이런 일들을 하나 둘 벌이게 되다니 걸어온 길을 돌아보면 순간 내가 한 일이 맞나 싶을 정도로 놀랄 때가 있다.


인생은 내 생각과 의지대로만 흐르는 건 아니지만 더 깊이 생각해 보면 그 의지 자체가 없으면 일이 시작되지도 않음을 안다. 나의 중년이 이런 그림으로 펼쳐질 것이라고 예상했을까? 그러나 '茶를 마시며 좋은 마음'을 나눌 수 있는 삶을 꿈꾸던 일은 현실로 이루어졌다.


어떤 마음으로 길을 걷고 있는지, 마음이 한 방향으로 흐르면 길은 끊임없이 내게 다가온다.







매거진의 이전글 느린 독서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