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잔 더..
영화 '케빈에 대하여'의 첫 장면, 붉은 토마토가 범벅한 거리에서 사람들은 술을 마시고 흥청망청 축제를 즐긴다. 영화를 보기 시작하며, 스페인 토마토 축제의 열기와 광기에 취한 두 남녀의 사랑이 비극으로 마무리되는 '케빈에 대하여'가 떠오른 건 술을 마시며 청년들이 길거리와 지하철에서 무질서하게 질주하는 혼돈의 첫 장면과 오버랩되었기 때문인지 모르겠다. 이 영화도 그처럼 비극으로 치달을 것인지 조바심이 났지만 몇 해 전 깊은 인상을 남긴 '미하엘 콜하스의 선택'에서 처음 만난 배우 매즈 미켈슨이 주연이라 우선은 반가웠다.
네 명의 교사들이 지치고 무력해진 삶에서의 작은 변화를 위해 술을 선택하면서 영화는 전개된다. 심리학 선생인 니콜라이는 노르웨이 철학자이며 정신과 의사인 핀 스코르데루의 논문을 예시로 들며 인간의 혈중 알코올 수치가 0.05% 부족하며, 그것을 채워(약 와인 한두 잔 정도) 항상 그 정도의 상태를 유지한다면 좀 더 느긋하고 침착하며 자신감과 용기를 얻을 수 있다는 가설을 예로 들면서 함께 시도해 볼 것을 종용한다.
마르틴은 넷 중에서도 자신감이 부족하고 내향적인 인물이라 이 제안에 처음엔 흥미를 느끼지 못했지만 결국 함께 심리학 에세이 만들기에 합의를 하고 스코르데루의 가설을 실행에 옮겨 보기로 한다. 니콜라이의 생일을 축하하기 위해 모인 레스토랑 장면에서 알코올 소믈리에로 보이는 전문가의 설명을 듣고 있자니 술에 문외한인 나조차도 술을 마시고 싶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술의 전개는 흥미로웠다. 독일산 캐비어와 보드카, "러시아 보드카인 임페리아는 발효한 밀을 식힌 후 수정으로 여과해 질감이 벨벳 같고 풍부하죠." 소믈리에의 이 한마디에 탄산수로만 목을 축이던 마르틴이 참지 못하고 보드카를 한 잔 들이켜게 된다. 메인 코스와 함께 나오는 와인. 로버트 파커가 95점을 주며 부르고뉴 정신을 담고 있다고 했던 2011년 산 부르고뉴 와인 한 모금에 눈가가 촉촉해진 마르틴은 동료들 앞에서 참지 못하고 눈물을 보이고 만다. 중년 남자의 눈물을 뭐라 표현해야 좋을까. 분출되지 못하게 꾹꾹 누르고 덴마크의 겨울 날씨처럼 차게 얼려둔 마음속 슬픔과 외로움이 알코올의 기운을 빌려 해빙되듯 흐르던 눈물. 남자의 눈물이 이렇게 아름다울 수 있을까 싶은 명장면이었다.
헤밍웨이는 지독한 술꾼이었지만 저녁 8시까지만 마셨고, 수많은 걸작을 남겼다는 것을 기준 삼아 그들은 알코올 측정기로 0.05%를 유지하면서 저녁 8시 이후와 주말엔 마시지 않고, 근무시간(교사들이니 수업시간) 중에만 마시기로 합의한 후, 가설을 실행에 옮긴다.
이후 이들의 삶은 좀 더 활력 있어지고 불행해 보이던 마르틴의 가족에게도 생기가 돌지만 이러한 긍정적 반응에 더 높은 차원의 욕구가 일고 알코올 수위를 좀 더 높여 심화된 단계를 원하게 되는데, 이에 니콜라이는 취한 것도, 안 취한 것도 아닌 중간상태에서만 연주가 가능했던 한 피아니스트의 예를 들며 술친구와 함께 연주했다던 슈베르트의 네 손을 위한 환상곡(Fantasy for 4 hands in F minor D.940 op.103)을 들려주면서 동료 교사들의 마음을 얻어낸다.(이 곡은 영화 후반 동료 교사 톰뮈의 장례식 장면에서 다시 나온다.) 알코올의 힘을 빌어 수업도 안정적이 되고 자신감도 붙지만 마르틴은 알코올의 도수를 더 높이면서 혈중 알코올 수치는 점점 더 올라가고, 최적의 수행능력을 발휘하고 싶은 그들은 급기야 점화 단계까지 마셔보자는 동료의 제안으로 이 중년 남자들의 삶은 위기로 치닫는다.(남자는 나이가 들어도 아들이라는 말이 실감 나던..)
"온 국민이 미친 듯 마시는 나라잖아."라고 외치던 아니카의 대사처럼 덴마크는 청소년들에게도 알코올 허용 정도가 엄하지 않은 것 같았다. 첫 장면과 마지막 장면은 덴마크의 졸업시즌인 5,6월의 풍경인데 시험을 끝낸 졸업생들에게 2주간의 무제한 술파티가 허용되는 독특한 문화를 엿볼 수 있었다.
혈중 알코올 농도 0.05%를 유지하려던 네 사람, 그중 누구도 선을 지키지 못했고, 급기야 알코올 중독과 폐인이 될 것을 우려해 연구실험을 종료하기로 결정했지만 동료 톰뮈는 호수에서 삶의 마감을 선택하게 된다. 아름다운 우정도 각자 삶의 기반이 안정된 뿌리를 내릴 때 가능하듯 톰뮈의 마지막을 지킨, 스스로 소변보기도 힘든 톰뮈의 늙은 반려견 라반의 모습은 주인의 삶을 대변하는 것 같았다. 그가 빠진 마지막 장면. 졸업 잔치로 들뜬 학생들 사이에서 마치 조르바가 된 듯 언어화되지 못한 내면의 서사가 몸짓으로, 향이 발산되듯 퍼져 나오는 마르틴의 춤은 압권이었다.(이 부분 돌려보기 3회)
그 누구도 쉬운 삶이 없다.
내가 아닌 다른 이의 삶은 좀 더 낫고 모든 불행과 고통은 나에게만 향하는 것 같지만 맞서고 부딪히는 온 과정이 지나고 보면 그 고통마저 반짝이는 아름다움일 수 있다. 바른 방향으로 제대로 노 젓고 있다면 말이다. 마치 희생제물처럼 톰뮈(체육교사)는 떨어지는 별처럼 스러져 갔지만 마르틴의 삶에 활력과 희망을 안겨주고 간 것처럼 남은 자의 선택에 따라 삶은 의미를 찾게 되고 헛된 것은 애초에 없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아홉 달의 긴 겨울을 보내야 하는 덴마크의 이국적인 정취와 그들 삶의 속살을 들여다보며, 슈베르트와 차이코프스키(템페스트), 처칠과 헤밍웨이를 떠올리면서 매즈 미켈슨의 재즈 발레의 자유로운 몸짓을 감상하는 즐거움까지 안겨 주었던, '바베트의 만찬' 이후 멋지게 다가온 덴마크 영화 '어나더 라운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