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의 제인오스틴

벚꽃과 <오만과 편견>

by winter flush

호주에 루스 윌슨이라는 작가가 있다. 그녀는 자신의 예순 번째 생일을 축하해 주는 지인들에 둘러싸여 축하를 받는 자리에서 문득 자신이 행복하지 않음을, 세상에 이미 정이 떨어져 방황하고 있는 자신의 모습을 직시하게 된다. 어지러움과 메스꺼움 증상으로 일상생활이 어려워지면서 그녀는 고수하던 삶의 방식을 내려놓고 새로운 시도를 하게 된다. 숨 쉴 공간이 절실했던 그녀는 시골에 집을 마련해 자신만을 위한 공간을 만들고 그곳에서 책을 통한 치유의 시간을 갖는다. 버지니아 울프가 외치던 '자기만의 방'이 실현된 것이다. 그녀의 독서 치유 출발점은 제인 오스틴의 <오만과 편견>이었다. 읽고 또 읽어도 모자람이 없던 이야기. 왜 그녀의 위로는 단연코 제인 오스틴이었을까.

책의 내용을 다 알고 있으면서도 다시 읽는 그 이야기는 또다시 새로웠다. 봄바람이 살랑이듯 마음에 미풍이 불고 꽃잎이 날린다. 깊게 각인된 첫인상의 편견. 엘리자베스는 어떻게 그 편견에서 벗어나게 되는지, 다아시에게서 느껴지던 오만함의 이유는 무엇이었는지, 딸들을 좋은 곳에 시집보내지 못해 안달 난 베넷 부인의 어수선함과 수치심을 느끼게 만드는 언행들에도 달콤한 모성애가 숨어 있다고 말한다면 누군가는 반기를 드려나? 신사답게 느긋한 베넷씨의 여유 있는 마음이 오히려 답답함을 자아내기도 하고, 에고로 똘똘 뭉친 콜린스 씨의 품은 마음은 너무도 투명하여 들여다보는 이가 민망할 정도다. 250년 전 사람들의 모습이 지금과 별반 다르지 않다는 생각을 할 때쯤이면 이미 책의 반이 훌쩍 넘어가 있을 정도로 책 읽기에 속도가 붙는다. 고전은 읽기 어렵고 지루하다는 편견을 무너뜨리고 싶을 때 추천하고픈 책이 바로 <오만과 편견>이다. 당시 결혼은 남녀의 사랑이 결실로 맺어지는 단순한 공식이 아니라 그야말로 '생존'과 직접적인 관계에 놓여 있었다. 한정 상속이라는 법적 제도는 사랑만으로는 결혼에 이를 수 없음을 증명하는데 그 대표적인 예가 소설 속 샬럿과 실제 이 작품을 쓴 제인 오스틴의 경우다. 샬럿에게 결혼이란 재산이 부족한 처녀가 선택할 수 있는 유일하고도 명예로운 생존방식이며 가난을 막는 훌륭한 수단이라고(168P) 그녀는 낭만을 좇지 않고 그저 편안한 가정을 얻고 싶을 뿐이라며 콜린스 씨를 배우자로 택한다. 그녀의 선택을 비난하기 쉽지 않다. 속물적인 남편의 가식과 모자람을 평안하고 안락한 생활의 보장으로 맞바꾸며 샬럿은 자신의 삶에 최선을 다한다. 그러나 그러한 선택이 가능하지 않았던 소설 속 엘리자베스처럼 작가 제인 오스틴에게도 실제 유사한 경험이 있었으니 후에 아일랜드의 대법원장을 지냈던 톰 리프로이와의 연애사건이다. 이 스토리는 앤 해서웨이 주연의 영화 <비커밍 제인>으로도 유명한데 법조인이 되기 위해 런던에서 공부하던 톰이 자신의 숙부(제인의 이웃) 집에 방문했다가 제인에게 깊은 호감을 느끼게 되면서 벌어진 일이다. 그러나 가난한 톰은 부유한 가문의 딸과의 결혼이 절실했고, 마찬가지 이유로 제인도 그러했기에 둘의 사랑이 이어질까 봐 조바심 내던 집안의 어른들로 인해 그 둘의 사랑은 결국 이어지지 못했고, 소유한 땅이 없었던 오스틴 가는 후에 목사직에서 은퇴한 아버지가 살던 목사관에서 나와야 했기에(그야말로 가난의 처지에 놓인) 몰락한 젠트리의 전형을 보여주고 있다. 제인은 당시 오래전부터 알고 지내던 부유한 이웃 청년 해리스 빅위더로부터의 청혼을 받지만 결국 거절하고 가난한 독신의 길을 걷는다. 청혼을 받은 순간 승낙을 했던 제인은 그다음 날 번복하게 되는데 당시로서 이 일은 꽤나 용기 있는 행동이었다고 한다. 마음이 가지 않는 상대와의 결혼은 결코 받아들일 수 없었던 제인의 모습에서 소설 속 일리자베스의 모습이 겹쳐 보인다. <오만과 편견>은 그녀가 톰 리프로이와의 짧은 만남 이후 쓴 소설이라는 점을 감안할 때 현실에서 이루어지지 못한 자신의 마음과 염원을 담아 펼쳐낸 작품이 아닐까 하는 호기심이 일었다. 이 소설을 이야기할 때 돈 많은 남자를 만나 결혼하지 못해 안달 난 여자들의 로맨스라고 가볍게 말하는 이들도 종종 있다는 걸 안다. 그러나 그건 사람의 본질에 대한 깊은 통찰과 관찰을 겸비한 제인 오스틴을 잘 알지 못하는 이들의 오만한 편견일지도 모르겠다. 그녀는 일상 속에서 펼쳐지는 인간 군상의 면밀한 관찰로 사람을 꿰뚫어 보고 있으며, 그 안에서 일어나는 미묘한 심리적 역동과 행동을 통해 인간의 감정과 이성을 정교하게 그려내고 있다. 그렇기에 인물 하나하나가 그리도 생생하게 그려지고 있으며 가슴에 새겨지는 문장들로 가득한 것이다. 오만한 다아시와 편견으로 눈이 가려진 엘리자베스는 서로를 통해 각자의 부족함을 들여다보고 자신을 다듬는 거울로 삼는다. 그렇게 되기까지 그들에게 힘이 되어준 건 '사랑'이었다. 이성 간의 달콤한 감정을 넘어선 배려와 책임과 이해가 바탕이 된 진실한 사랑 말이다. 그러니까 이 소설은 남녀 간의 애틋한 로맨스 소설 기법으로 쓰인 인간 내면의 본질을 면밀히 관찰한 결혼에 대한 철학적인 탐구라 할 수 있겠다. 한 사람이 다른 한 사람을 만나 정교하게 다듬어지고 성숙한 일면을 향해 나아가는 모습이야말로 진정한 사랑의 방향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