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의 힘

영혼은 존재해야만 한다

by 겨울밤

나는 종교가 없다. 종교인이 되는 것에 대해서도 부정적인 편이었다. 내 기준에는 납득하기 어려운 교리들을 철썩같이 믿는 사람들을 보면 고개를 절레절레 젓곤 했다. 게다가 종교가 얼마나 많은 전쟁의 명분이 되었는지 떠올려 보면 과연 종교의 존재 의미가 뭘까, 그저 모두를 신 앞에 엎드리게 해 고분고분하게 만들려는 게 아니었을까 생각했다.


그런데 그런 말이 있지 않은가. “사람은 힘들 때 종교에 의지한다.” 내가 힘든 일을 겪고 보니 그 말이 이해가 되더라. 아직도 신보다는 책이나 주변 사람의 도움을 받되, 자력으로 헤쳐나가고자 하는 오만한 인간이지만. 그래도 이제 종교가 왜 탄생했고 신앙이 어떤 힘을 주는지 알 것 같다.


모든 종교에서는 죽음 이후에 대한 일종의 해답을 준다. 죽으면 천국에 가게 된다거나, 윤회하며 또 다른 생으로 이어진다고 말이다. 어쩌면 죽음, 그리고 소멸은 모든 인간이 가진 가장 근본적인 두려움이니 우린 해답을 구할 수 밖에 없고, 그걸 해소해 주는 게 종교의 덕목이겠지. 아니, 반대로 해답을 구하기 위해 인간이 종교를 창조한지도 모르겠다. 자신의 죽음을 당장 상상하기는 어렵더라도 우린 사랑하는 사람을 인생의 어느 시점엔 떠나보내게 되니까. 천국이든 윤회든, 죽음이 끝이 아니라는 이야기는 사별 후 가장 큰 위안이 된다. 육체가 사라졌어도 그 영혼은 어딘가에 머물고 있을거라고, 덕을 많이 쌓았으니 이 땅 어딘가에서 더 나은 삶을 살게 될 거라고, 혹은 천국에서 평안하고 행복할 거라고, 더 이상 불편도 고통도 없을 거라고 말해주니 말이다. 그걸 믿을 수만 있다면 상실이 한결 견딜만한 것이 된다.


그리고 모든 종교적 리추얼은 그 믿음을 강화해준다. 그리고 삶을 단단하게 만들어 주기도 한다. 발리를 여행하며 느꼈다. 꽃잎 하나하나에 의미를 담아 매일 수십 개의 차낭 사리를 정성스레 만들고, 매일 아침저녁으로 향을 피워 수많은 신들에게 공양하는 행위를 빼 놓고는 발리 사람들의 삶을 말할 수 없다. 매일 반복하는 그들만의 리추얼은 신앙의 힘을 더 키울 뿐 아니라 삶에 흔들리지 않는 중심이 되어주는 듯하다.


우붓에 있을 때, 현지 요가 선생님이 내게 이런 말씀을 해 주셨다. 동생은 이 삶에서의 여정을 다 했을 뿐이라고. 그 영혼은 어딘가에서 또 다른 여정을 이어가고 있을 거라고. 나는 아직 이 생에서 할 일이 있어 남은 것이라고. 내가 너무 오래 슬퍼하면 건강을 해칠 뿐만 아니라 동생이 훌훌 떠나기가 도리어 힘들어진다고. 슬픔을 뚝 그치기는 당연히 어렵지만 매일 물 한 잔을 떠놓고, 이 생에서 함께 했음에 감사하며 동생의 평안을 빌고, 짧은 명상을 이어가다 보면 조금씩 나아질거라고.


그래서 그렇게 믿기로 했다. 육체는 사라졌어도 동생의 영혼은 여전히 이 지구, 아니면 우주 어딘가에서 또 다른 삶을 시작하고 있을 거라고. 그러니 나도 내 삶의 주인으로써 여정을 이어나가면 된다고. 여전히 내가 원래 타고 있던 배는 폭풍우에 잃고 작은 뗏목에 겨우 몸을 의지하고 있는 기분이지만. 그렇게 믿으니 조금은 슬픔의 무게가 덜어지며 숨통이 트이는 것 같았다.


발리를 떠나 다시 회색 도시의 일상으로 돌아오니 그 믿음도, 믿음을 지탱해주던 리추얼도 자꾸만 흐려진다. 슬픔을 잘 흘려보내는 것도 중요하지만, 아프지 않게 동생의 기억을 떠올리기 위해서는 이 믿음이 더욱 강해져야만 할 것 같다. 선생님이 해 주셨던 이야기를 곱씹으며 다시금 굳게 믿어봐야지. 육체는 존재하지 않더라도 동생의 영혼은 사라지지 않았다고. 우린 영영 헤어진 게 아니라고. 믿음의 힘은 강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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