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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겨울산 Jul 28. 2021

내 삶의 1/5가 사라졌다

지금 당신의 삶이 불만족스러운 이유

 속초에 가기로 했다. 뭐 하나 마음대로 되지 않는 나날의 연속이었다. 코로나 때문에 모든 계획이 무산되니 무기력하고 자존감이 바닥을 쳤다. 내가 싫어지는 날들이 많아졌고 사소한 것에도 좌절했다. ‘산다’라기 보다는 ‘버틴다’는 표현이 더 잘 어울리는 겨울이었다. 그러던 중, 속초에 갔다.  


    

 속초에 가게 된 건 사소한 이유 때문이었다. 신용카드 어플에 광고가 떴기 때문이다. 오픈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속초의 새 리조트 1박 값이 굉장히 싸게 나와서 놓치기 아깝다는 생각에 결제를 했었다. 그걸 까맣게 잊고 있다가 전날 체크인 안내 문자가 와서야 깨달은 것이다. 가야 하나? 망설여졌다. 캐리어를 창고에서 꺼내는 것조차 귀찮았다. 고민하다 잠에 들었고 아침이 되어서야 겨우 마음을 먹었다. 그래, 일단 가보자. 옷가지 몇 개만 겨우 챙겨 집을 나섰다. 그렇게 이곳에서 도망치듯 황급히 속초로 갔다.



  3시간 남짓 걸려 도착한 속초는 상상 속 속초와는 많이 달랐다. 속초는 관광도시 아니었나? 버스터미널에 조차 사람이 없어 썰렁했다. 그도 그럴 것이 도착한 날은 한파주의보가 내릴 정도로 추운 날이었다. ‘핫딜’에 낚인 나 같은 사람이 아니라면 굳이 속초에 올 일이 없는 겨울날이었던 것. 귀가 떨어질 듯한 찬바람에 황급히 택시를 잡았고 곧장 숙소로 향했다. 괜히 왔나? 란 생각이 들었다.      



 리조트는 버스터미널보다도 사람이 더 없었다. 리조트 스태프들은 할 일이 없어 다소 무료해 보였다. 체크인을 하고 방 안으로 들어가니 다행히 방에서 바다가 보인다. 손님이 없으니 오션뷰로 무료 업그레이드를 해준 것 같다. 욕조에 따뜻한 물을 담고 좋아하는 노래를 들으며 몸을 담갔다. 그제야 여기에 오기로 한 결정이 잘한 것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조금 들었다. 머리를 말리고 나니 긴장이 풀리면서 잠이 엄청나게 쏟아졌다. 그대로 침대에서 잠들었다가 눈을 떴다. 이미 해가 지고 있었다. 1층에서 받은 쿠폰을 가지고 위층으로 가니 햄버거를 준다. 맥주를 시켜서 함께 먹고 다시 내려와 의미 없이 TV 채널을 이리저리 돌려보다 다시 잤다.     



 아침이 되었다. 곧 체크아웃할 시간이다. 아무것도 하기 싫은 기분은 여전했지만 그래도 속초까지 왔으니 바다는 보고 가야 할 것 같았다. 기온이 만만치 않아서 중무장을 했다. 옷을 껴입고 목도리를 하고 패딩에 장갑까지 끼고선 밖으로 나갔다. 이 리조트에서 가장 가까운 바다는 외옹치 해변이라는 곳인데 리조트에서부터 해변까지 나무 데크로 산책로가 조성되어 있었다. 산책로를 걸어가며 바다를 구경했다. 동해바다는 역시 다르다. 푸른 파도가 철썩이며 엄청나게 큰 소리를 내며 바위를 때렸다. 그 바위에 파도가 부서지며 흰 물보라가 흩어져 나가는 걸 한참을 구경했다.      



 그렇게 한참을 풍경을 보다 물을 마시려고 마스크를 내렸다. 그 순간, 바다의 짠 내가 훅하고 콧속으로 들어왔다. 와! 순간 눈이 번쩍 뜨일 정도로 짜릿했다. 퍼즐의 마지막 조각이 딱 맞춰지듯 눈앞의 바다가 바다 냄새라는 조각으로 완성된 느낌이랄까. 2D 였던 바다가 3D로 입체적으로 보이는 듯한 느낌이랄까. 이게 진짜 바다다! 속초에 와서 처음으로 속초에 와 있음이 실감 났다. 이 기분을 놓칠세라 허겁지겁 바다 냄새를 킁킁거리며 들이마셨다. 좀 더 숨을 들이쉬고 싶었지만 저 멀리서 한 가족이 가까이 다가오는 걸 보고 서둘러 마스크를 꼈다. 다시 아무런 냄새가 나지 않는다. 내 입 냄새 말고는.      



 한동안 삶의 1/5를 잃어버린 채 살았던 것 같다. 봄바람에 실린 라일락 향기, 비 오고 나서 맡을 수 있는 흙냄새, 싱그러운 풀냄새, 겨울의 붕어빵 냄새 등등 많은 후각으로만 느낄 수 있는 것들이 마스크에 걸려 흩어진다. 삶을 오감으로 마음껏 느끼고 경험하고 싶은데, 1/5는 쏙 빼고 나머지로만 아등바등 살고 있었기에 마음이 헛헛하고 괜히 심통이 났던 것 같다. 속초 바다에서 맡은 짜디짠 바다 내음은 내게 말해주는 듯했다. '지금 힘든 건 네 잘못이 아니야. 그러니 괜찮아.’      



 집으로 향하는 버스에 몸을 실었다. 상황은 아무것도 변한 것이 없었지만 마음이 한결 편안해졌다. 지금 4/5밖에 없는 우리의 삶이 다시 1이 되는 그날이 빨리 왔으면 좋겠다고, 또 지금 나처럼 힘든 누군가가 있다면 그건 네 잘못이 아니라고 말해줘야지,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좌석 등받이를 뒤로 젖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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