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윈터 Sep 04. 2024

해치지 않아요

"무슨 목적으로 오셨죠?"

"여행이요"

"얼마나 머무시죠?"

"1주일이요"

2019년 여름. 나는 미국입국심사장에 있었다. 여행이라고 말했지만 사실 출장이었다.

함께한 동행인은 비행기 안에서 나에게 "그냥 여행 왔다고 해요"라고 말했다. "왜요?" 나는 의아했다.

"비즈니스라고 하면 질문이 피곤하더라고요." 미국 입국심사는 입국자를 잠재적인 불법체류자로 보는 것 같다는 게 지인의 설명이었다. 난 곧 그의 말이 무슨 말인지 알 수 있었다. 미국은 몇 번째 방문인지, 목적이 무엇인지, 어디에 얼마나 체류하는지, 떠나는 날짜까지 꼼꼼하게 인터뷰를 했다. 내가 불법체류자가 될 사람이 아님을 증명하는 자리 같았다. 함께한 다른 동행인은 업무 목적으로 방문했다고 이야기했는데 10분은 더 붙잡혀 있었다.


DH의 일반 초등학교 입학을 앞두고 나는 남편과 아이와 함께 학교를 방문했다. 특수교사 선생님은 아이와 우리를 궁금해했다. 아이의 능력치가 얼마인지, 문제행동이 무엇인지, 일반반에서 수업을 진행하는 게 어느 정도 가능할지 등 수많은 질문들이 오갔다.

"걱정되시는 문제가 뭔가요?" "아이가 순서와 자리 등 집착이 있어서 다툼이 일어날까 걱정돼요"

"그런 경우 어떻게 행동하나요?" "울거나 떼를 쓰는데, 전환을 빨리해 주면 진정이 잘 되는 편입니다."     


학교는 모든 아이들의 교육을 관장하는 곳이다. 그 누구의 학습권도 침해되어서는 안 된다. 그런데 우리 아이들은 본인의 학습받을 권리를 챙기기 이전에 타인에게 피해를 끼치지 않음을 증명해야 하는 입장인 것 같았다. 해가 되는 사람이 아님을 증명해야 그 무리 속에 속할 수 있는 것 같은 기분. 동시에 일반 아이들에게 끊임없이 이해와 설득을 구해야 하는 입장. 흡사 미국 입국할 때 그 기분이었다.

나는 아이가 지난 유아기에 어떠한 치료를 진행해 왔는지를 이야기하며 일반화해서 잘할 수 있음을 끊임없이 변호했다. 상담을 다녀온 남편은 기분이 묘하다고 말했다.   

  

물론, 이러한 기분이 자격지심일 수도 있다는 것에는 인정한다. 그러나 나는 주관적일 수밖에 없는 내 아이의 부모 아닌가. 하지만 분명 이러한 잣대는 신체장애에 비해 정신장애 쪽에 더욱 날카로운 것은 분명하다. 그 칼에 마음이 베인 하루였다.     


누구나 말할 수 없는 어려움들이 있다. 장애뿐이 아니다. 누구는 다리가 다쳐 깁스를 할 수도 있고, 누구는 비염이 있을 수 있다. 누구는 안경을 써서 겨울이 되면 매번 실내 들어올 때 어려움이 있을 수도 있다. 나는 모든 아이들의 모든 어려움이 이 정도로 설명될 수 있는 사회가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서로를 조금은 배려하고 조금은 그러려니 하며 이해하고 넘어가는 것. 학교를 넘어 사회에는 분명 필요한 부분 아닌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