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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겨울고양이 Aug 19. 2022

여기 그리고 지금(HIER UND JETZT)

나는 매 순간 내가 살아있음을 느끼고 싶다.



프렌즈 시즌3의 어느 에피소드다. 레이첼이 카페에서 일한 지 2년이 넘었지만, 여전히 카페 일을 못하는 장면이 나온다. 레이첼의 친구들인 챈들러와 조이가 레이첼에게 카페를 그만둬야 다른 일을 찾을 수 있을 거라며, 직업이 없다는 두려움을 느껴야 다음 단계로 나아갈 거라고 얘기한다. 


카페 주인인 건터는 이 날도 레이첼에게 반복해서 기본 매뉴얼을 얘기하고, 기분이 상한 레이첼이 드디어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서 이렇게 말한다. 


"나는 최악의 직원이야! 왜 내가 최악인 줄 알아? 왜냐면 난 관심이 없으니까! 어떤 게 일반 커피 주전자고 어떤 게 디카페인 커피 주전자인지 관심이 없어! 난 그냥 다 관심이 없어! 이건 내가 하고 싶은 일이 아니니까. 그리고 내가 이걸 계속하면 안 될 거 같아. 건터, 나 그만둘게. "



프렌즈를 보는 내내 나는 레이첼의 바로 이 장면이 가장 통쾌했다. 익숙한 것을 집어던지고 낯섦을 택한다는 것은 이따금 사지를 잘라내는 것만큼이나 어렵단 생각이 든다. 특히 출발에 있어 아무런 실마리도 보이지 않을 때는 더더욱.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때때로 너무나 오랫동안 망설인다. 마치 다이빙 선수가 다이빙 대에 올라서 점프를 하지 못하고 망설이듯이 그렇게 내내 서있기만 한다. 망설이는 순간은 꼭 필요한 단계이지만, 그 단계가 너무 길어져버리면 다른 선수들도, 심판도, 관객들도 불안해진다. 


어떤 선택을 함에 있어서 확신을 갖는다는 것은 물론 어려운 일이다. 게다가 우리가 사는 세상은 매 순간 선택을 해야만 하는 세상이 아닌가. 옳은 선택을 하지 못한다는 불안감과 부담감은 어쩌면 현대인에게 있어 매일 하는 다이어트 같은 걸지도 모른다.  



하지만 선택은 반드시 필요하다. 그게 어떤 결과를 가져오더라도 우리는 반드시 선택을 해야만 한다. 완벽한 선택을 매번 하려고 하는 것, 마치 매 순간마다 러시안룰렛이라도 하듯 머리에 총구를 들이대고 방아쇠를 당기기 전에 가늠을 한다고 생각해보자. 그런 식으로 세상을 살다 간 어쩌면 지나친 걱정과 스트레스로 인해 빨리 늙어버릴지도 모른다.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하는 선택이라면 마치 장거리 달리기를 하는 달리기 선수처럼 가끔은 주먹을 가볍게 쥐었다 피었다 하면서, 가볍게 몸을 통통 튕기면서 내 정신과 육체에 무리가 가지 않도록 트랙을 뛰어야 하지 않을까? 


내가 했던 좋은 선택들은 만족스럽기 때문에 좋다고 생각하는 것이겠지만, 일어나버린 좋지 못한 선택들도 어쩌면 그 나름대로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지 않을까? 우리가 하는 선택들이 당장의 결과로 보이지 않고, 아주 커다란 퍼즐 그림처럼 모든 게 지나고 나서야 보일지도 모른다. 


나는 여기 그리고 지금 존재함으로써 나의 하루하루를 소중히 채우고 싶다. 그런 나날들에 대한 기록들을 남겨, 나중에 돌아보니 그것들은 그것 나름대로 모두 꽤 괜찮은 선택들이었구나 하고 느낄 수 있다면 얼마나 기쁠까.


그러니까 현재의 선택을 너무 두려워하지도 너무 심각하게 걱정하지도 말자. 조금 더 가벼운 마음으로, 지금 이 순간 여기에서 최선을 다할 뿐, 결과가 어찌 되더라도 그건 그거 나름대로 의미가 있다고 믿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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