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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저널리즘

문명으로서의 개인주의와 집단주의

by 최시헌

인류학자 조지프 헨릭은 현대 서구 문명의 번영을 가져온 5가지 키워드로 WEIRD라는 약자를 만들었다. 이들은 각각 Western, Educated,Industrialized,Rich,Democratized로 현대 서구 문명의 프레임이라고 근간이라고 할 수 있는 특징들이다. 그런데 약자에서 눈치챈 사람도 있겠지만 저자는 이들의 기본적인 특성들이 이상하다고 말한다.


WEIRD들은 개인주의적이고 자기중심적이며 분석적이고 일반적인 관행을 따르지 않는다. 이들은 관계와 사회적 역할보다는 자기 자신에 초점을 맞춘다. 추론을 할 때에도 보편적 범주와 규칙을 찾으며 패턴을 파악하고 추세를 예측한다. 각각의 나무에 관해서는 많이 알고 있지만 종종 숲을 보지 못한다. 아이러니하게도 공평한 규칙이나 원칙을 고수하기도 한다.


사회적 기준에서 벗어났을 때 WEIRD는 죄책감을, 비WEIRD는 수치심을 느낀다고 한다. WEIRD는 개인의 기준과 자기 평가로 자신의 과오를 반성하는 반면 비 WEIRD는 사회적 기준과 일반적 판단에 의해 자신의 잘못을 반성한다.


WEIRD는 왜 이렇게 독특한 심리를 가지게 되었는가? WEIRD들은 사람의 역할과 관계보다 특성과 성격에 초점을 맞추는 개인주의가 강하다. 이를 이해하기 위해 스펙트럼의 반대편으로 가보자. 여기서는 규제-관계적 체제가 형성되어 있다. 친족에 기인한 제도를 형성하며 낯선 이를 만나는 것을 목표로 삼는 접근지향적 태도가 아닌 회피지향적 특징을 지닌다.


또한 WEIRD는 각기 다른 관계 유형(선생님,부모,형제등등)에 일관된 태도를 보이지만 한국인이나 일본인은 관계의 맥락 안에서만 일관성 있게 행동한다. 각기 다른 관계 속에서 다른 행동을 보이는 것을 성숙함이라고 보는 것이다.


그러나 최근에 나는 집단주의 vs 개인주의의 대립구도가 변화하였다고 생각한다. 세계화가 되면서 이미 서구 문명은 세계 전체에 영향을 미치고 있고 한국의 개인주의는 높은 자살률과 각자도생의 사회로 악명이 높다. 오히려 취미나 이해 관계에 따라 만들어진 서구의 다양한 단체들이 더 공동체적이라는 생각조차 들 정도이다.


그런데 만일 한국에 만연한 것이 개인주의가 아니라면 어떨까? 사실 나는 한국에서 집단주의는 단 한순간도 사라지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예를 들어 헨릭이 지적한대로 우라는 아직도 사회적 기준에 스스로를 비교하며 스스로의 자존감을 낮추는 나쁜 습관을 가지고 있다. 우리는 단지 집단주의를 개인주의에 최대한 비슷하게 만들기 위해 그 범위를 극도로 축소시킨 것일 뿐이다.


일반적으로 집단주의는 집단의 안녕을 추구하고, 개인주의는 개인의 성취를 추구한다고 한다. 그런데 집단주의의 범위가 줄어들다 못해 원자화 되어 개인의 범위로까지 줄어든다면 그러한 집단주의는 무엇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인가? 그것은 개인만의 ‘안녕’을 추구하는 이기주의가 되어버린다. 즉, 성취로서 자기 자신에게 뿐만 아니라 사회에서도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개인주의와는 달리 자신의 안녕만을 추구하기 때문에 사회에 기여가 되든 말든, 심지어는 피해를 주든 말든 오로지 자신의 보존과 번영에만 집중하게 된다.


그렇다면 서구의 개인주의가 극단적으로 확대되면 무엇이 되는가? 나는 그것이 서구의 이상적인 모습이 아닐까 생각한다. 개인주의의 핵심인 주체의 범위가 전세계로 확대되면 세계가 곧 자신이요, 자신이 곧 세계이다. 자신이 하는 일이 세상에 반영되는 것이고 그것이 다시 되돌아와 자신에게 영향을 미친다. 영국 시인 존 던의 시에서도 나오듯이 그는 자기 혼자만의 섬이 아니라 흙덩이 하나일지라도 각 개인이 대륙의 일부분인 것이다. 또한 그러한 개인주의의 삶의 목적이 ‘성취’, 즉 무엇인가를 발전시키고 이룩시키는 것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개인주의를 극단적으로 확대시킨 사회는 ‘진보’하는 사회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집단주의가 완전히 나쁘기만 한 것은 아니다. 집단주의는 개인주의와 달리 전체론적인 사고를 할 수 있기 때문에 숲을 보고 장기적인 판단을 통해 지혜로운 선택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동안 인류는 서구적 사고방식을 통해 단기간에 급속도로 발전했지만 지금은 기후위기와 전쟁, 전염병, 그밖에 여러 변수들이 겹쳐 더 이상 탄탄대로로 무엇이든 풀리는 시기가 아님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이제는 장기적이고 지속적인 사회의 대안을 만들어내기 위해서라도 동아시아적인 사고 방식의 장점을 살릴 만한 방법을 찾아보아야 한다. 실제로 오랫동안 이어진 동아시아 왕조들의 지속성처럼 일그러진 산업화에 의한 집단화의 축소가 아닌 건강한 의미의 집단주의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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