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체인소맨 레제편 극장판이 화제가 되고 있다. 화려한 작화와 아름다운 ost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무엇보다도 레제(폭탄의 악마)와 덴지(체인소맨)과의 애절한 서사가 가장 큰 몫을 차지했을 것이다. 그런데 사실 이 체인소맨 레제편조차도 덴지가 앞으로 겪을 비극들의 일부에 불과하다.
그리고 총체적으로 1부 줄거리의 이해와 결말 파트의 철학적 사유를 이해하지 하지 못한다면 덴지는 어째서 그렇게 불행해야만 하는지도 모른 채 극장판을 보게 될 것이다. 비록 스포일러가 있겠지만 체인소맨을 좀 더 제대로 이해하고 싶은 사람들은 이 정도는 과감히 이해해주리라 믿는다.
덴지가 극장판에서 말하듯이 덴지에게 다가오는 여자들은 하나같이 덴지가 아닌 체인소맨의 심장을 노리는 악마들이다. 덴지는 이를 알아도, 몰라도, 상처를 받아도 바보같이 다들 좋아해주기만 한다. 이는 덴지가 유년기에 아버지에게 살해당할 뻔 한 일도 있지만 늘 홀로 포치타와만 지낼 뿐이었던 고독한 과거도 덴지의 충동적이고 애정을 갈구하는 성격을 만든 것일 것이다.
그러나 그보다 더 잔혹한 사실이 있다면 덴지가 가장 사랑했던 악마 사냥 공안의 마키마가 실은 지배의 악마였으며 덴지가 결말 파트에 도달하기까지 쌓아온 모든 추억들조차도 그녀가 덴지의 영혼을 완벽히 통제하려는 시나리오였다는 것이다. 덴지가 마키마로부터 도망쳐 코베니라는 공안 동료에게 고백하는대로 그의 삶에 자유의지 따윈 존재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렇다면 지배의 악마는 왜 그리도 집요하게 덴지를 침식했는가? 지배의 악마는 악마를 사냥하며 그 악마를 죽이면 죽인 악마가 존재했다는 기억마저도 없애는 악마의 천적인 체인소맨을 지배하고 싶어했다. 사실 마키마도 다른 악마들과 다를바 없이 덴지가 아닌 그의 체인소맨에게 관심이 있었다는 것이다.
그렇기에 지배의 악마는 철저해야 했다. 어릴 적부터 함께해온 악마 포치타와 덴지의 유대를 조금씩 흐리게 만들며 숨돌릴 틈도 없이 등장하는 사람들과의 만남 그리고 배신이 덴지를 혼란스럽게 해서 결국 자신이 가장 사랑하는 지배의 악마를 아무런 생각없이 따르게 할 생각이었다.
그리고 그 작전은 거의 성공할 뻔 했다. 덴지의 동료의 아키를 죽이고 덴지를 사랑해주었고 유일하게 배신을 하지 않았던 또다른 바보 기질을 지닌 파워를 덴지 눈 앞에서 죽이고 그로 인해 각성한 체인소맨의 진정한 모습을 마침내 쓰러뜨려 그의 심장을 꺼내는 데에 성공한다.
그러나 죽인 줄 알았던 덴지가 마지막으로 자신의 피를 주고 완전히 지옥으로 돌아가버린 파워의 힘으로 되살아나 마키마를 죽임으로써 덴지는 포치타도 돌려받고 세상도 지배의 악마로부터 구하게 된다.
체인소맨 1부의 등장인물들은 여러모로 이즈쓰 도시히코가 말하는 러시아적 인간, 그중에서도 도스토예프스키적 인간에 해당한다. 그에 따르면 도스토예프스키의 작품에서는 사랑이 증오가 되어 나타난다. 실존적 고독을 가지고 살아가는 ‘오래된 인간'들, 도스토예프스키의 등장인물들은 ‘방구석’과 같이 고립된 영혼이다. 자연을 상실하고 자연의 향연에 참가할 수 없는 소외자와 사랑을 상실하고 더이상 순수하게 사랑을 할 수 없게 된 무능력자가 그러한 인간 유형에 해당한다고 한다.
이즈쓰에 의하면 자연의 상실과 사랑의 불능은 근원적 차원에서 신의 상실이라는 문제에 닿아있다. 잃어버린 신과의 화해하기 위해서는 존재로서의 연대성으로의 복귀가 필요했고 이를 위해서 도스토예프스키는 외려 죄의식과 영혼의 어둠을 심화시켜 그 극한에 도달했을 때, 비로소 환희에 도달한다고 믿었다. 원죄, 즉 자신이 저지르지도 않은 보편적 죄를 모든 인간이 서로가 서로를 용서하고 용서받음으로써 구원받는다는 것이다.
이는 덴지가 마키마를 소멸시킨 방식과 비슷하다. 지배의 악마를 물리적 공격으로는 이길 수 없음에도 마키마를 소멸시킬 수 있었던 건 지배의 악마의 영혼을 음식으로 만들어 덴지가 먹어버렸기 때문이다. 말그대로 사랑으로 합일되어 하나가 되었던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소멸이라기보다는 흡수에 가깝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포치타가 이후 지배의 악마의 환생인 어린 소녀 나유타를 보살피게 된 덴지에게 말하는 것을 보면 지배의 악마는 사실 동등한 관계를 형성할 수 없었기 때문에 언제나 가족과도 같은 애정에 목말라 있었다고 한다. 그러면서 이번에는 나유타에게 사랑을 많이 주어 그녀가 자신을 사랑할 수 있도록 많이 안아달라고 한다. 악마는 죄에서 탄생한다. 포치타가 덴지에게 요구했던 것은 지배의 악마의 원죄를 나유타를 보살핌으로써 용서하라는 것일 것이다.
에리히 프롬이 소유냐 존재냐 에서 소유적 실존 양식에 대해 말하듯이 나의 소유물이 나와 나의 실체의 존재가 되는 관계는 살아있는 관계가 아니다. 덴지 뿐만 아니라 지배의 악마에게 농락 당했던 수많은 다른 히로인들, 그리고 마키마 자신도 그러한 의미에서 결국 불행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체인소맨은 어떤 결말을 맞아야 할 것인가… 할 이야기가 많지만 그에 대해서는 2부가 끝난 후에 쓰도록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