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 과연 무엇이 문제인가?’ 이 질문은 상상도 할 수 없는 공존과 같은 말이다. 행복 앞에 잘못이 있을 수 있을까? 마이클 러스틴에 따르면 인간의 행복 추구는 제 살 갉아먹기와 같다. 현대의 행복은 경제적으로 성공하면 이루어진다고 전제되기 때문이다. 통계상 국민 총생산을 기준으로 삶에 대한 만족감이 올라가는 것은 생존에 필요한 정도까지 만이라고 한다. 오히려 부의 수준에 따라 가장 극적으로 성장하는 것으로 보이는 사회지표는 범죄율이라고 한다. 불확실성에 대한 불안은 덤이다.
인스타그램의 동기부여 영상만 보더라도 우리는 세상에 대한 거짓말로 이 괴리감을 메우려고 한다. 우리가 개인적으로는 힘이 없어서 그렇지 결국 압도적인 부만 있으면 불가능이란 없을 것이다 등등의 진부한 격언과 망상들이 릴스를 정복했다.
그래서 압도적인 부는 우리에게 무엇을 해줄 수 있을까? 압도적인 부는 우리에게 ‘소비’라는 노동의 결실을 안겨준다. 요컨대 물질이다. 그러나 재화는 그 이상을 해줄 수는 없다. 외로울 때 함께 해주고 당신의 나약함마저도 사랑해 주는 진실한 인연 같은 건 돈으로 사는 게 아니다. 오늘날 인간관계는 모두가 재화다. 나도 너도 그 어떤 사람도 거래의 형태로 이익을 잰다. 그러나 자존감은 그냥 주어지지 않는다. 누군가에게 있는 그대로 존재할 수 있을 때 비로소 채워진다. 우리들은 시들어가는 장미는 수천번 심으면서 천년 갈 나무의 씨앗은 썩게 내버려 둔다.
마르크스는 이런 걸 소외라고 불렀지만 결국 그가 외쳤던 것도 분배의 문제였지 물질의 문제가 아니었다. 오늘날 혁명이 조롱받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경쟁이 아닌 평등은 하나의 방법일 수는 있겠지만 이는 자본주의가 추구한 행복보다 양적으로도 질적으로도 부족하다.
그러나 이 모두는 결국 하나의 목적론이다. 우리는 도달하여야만 하는 유토피아가 있고 그걸 위해 좌와 우가 싸운다고 믿는다. 그러나 그 프레임이 오히려 감옥이 된다는 생각은 해본 적이 없는 것이다. 한국의 저출산은 하나의 극단적인 사례로서의 인구 실험이다. <청년이 없는 나라>라는 책에서는 청년이 배제된 이유는 인재 배치의 비효율성이고 저출산은 부양비의 문제라고 진단을 내린다. 결국 그 처방은 고령층의 일자리를 늘려서 고령사회를 준비하는 것이다. 청년은? 청년은 이미 늦었다. 청년은 4차 산업 혁명 시대의 새로운 인적 자원으로 다시 개발될 뿐이다. 다시 ‘진취적인’ 도약을 위해서.
그러나 이 처방과 진단은 본질을 놓쳤다. 청년들이 왜 시험을 통한 계급이동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나? 그리하여 기하급수적으로 올라간 교육비는 사회구조에 있지 않았던가? 안정적 자립과 세속적 성공이라는 사회적 가치관은 기성세대의 건축물이었다. 그런데 갑자기 그들에게 시대의 실험쥐가 되라는 얘기는 전혀 인센티브가 없다.
기성세대는 왜 청년들이 쉬었음 세대가 되고 자살과 고독사 속에 말라가는지 모르는 듯하다. 인생의 불안이 이제껏 누구에게도 들어보지 못한 종류일 것이기 때문이다. 밀실 속에 갇힌 채 창문 밖만 바라볼 수밖에 없는 그런 답답함. 문을 잠근 후 안에서 부수고 나가라는 무식한 조언인 셈이다. 청년들은 행복을 누구에게서 배웠는지 밀실을 나가야 할지 말지도 선택하지도 못한다.
재생산은 결국 행복한 사회여야 한다. 애초에 아무리 정년을 늘려봤자 기성세대는 오래 지나지 않아 사망할 것이고 현 청년 세대만을 남겨두게 될 것이다. 수명이 영구적인 것도 아니고 물리적인 한계가 있으니 세상이 행복할 수 없고 살 가치가 없다고 느끼는 세대가 무엇을 잇고 무엇을 새로이 만들고자 하겠는가?
우리는 혁명을 전복시키고 파괴하기 위해서 하여서는 안된다. 우리는 잠긴 문을 부수고 담을 쌓아 비슷한 구조의 성벽을 쌓아서는 안된다. “썩어 없어질 양식이 아닌 영원한 생명을 얻어야 한다.” 우리는 이 문을 스스로 열고 나갈 수 있다. 사실 열쇠조차 필요없다. 우리는 행복을 추구하지 않으면 된다.
인생의 고통도,슬픔도, 모두 끌어안고 우리가 다른 사람이 나의 나약함을 사랑하기를 바라듯이 그를 사랑하면 된다. 결핍이 필연 불행은 아니다. 물질이 아닌 사람이 그 자리를 채워준다면. 누군가를 재화나 도구가 아닌 사람으로 바라보자. 세상을 바꾸는 데에는 진실로 거창한 것이 필요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