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번 글에서 논란의 주인공은 명문대생들이었다. 한국의 흔히 말하는 인적자원 중에서도 최우수 아웃풋들이다. 이들이 공부하고 익힌 기계식 교육도 문제지만 정말 현실적인 문제는 ‘명문대생’들은 대한민국의 미래를 짊어진 인재라는 것이다. 만일 현 문명대생들이 사회에 나온다면 4차 산업혁명 시기에 무엇을 할 수 있을 것인가?
그러나 이 질문에 앞서 알아봐야 할 것은 실제사회에서 명문대생들이 어디에서 무엇을 하냐는 것이다. 시험능력주의(김동춘)에 의하면 명문대에 입학하고 고시에 합격하여 대통령, 법관, 관료, 전문가가 되는 것은 정치노동, 즉 생산활동을 하는 사람을 지배하게 되는 것이라고 말한다. 19~21대 국회위원 직업분포를 보면 공직자, 법조인, 교육계, 언론계 사람들이 큰 비중을 차지한다. 그리고 이들은 대체로 명문대 졸업장을 지니고 있다. 한국의 컨트롤타워인 셈이다. 그리고 이것은 준신분이라는 학벌이 되어 곳곳에 퍼져있다.
즉, 명문대생들은 사회의 전 영역에서 리더 역할을 하고 있다. 그러나 그 리더의 의미는 출세이지 사명이 아니다. 일반화할 수는 없지만 리더로서 명문대생은 구조상 기회주의자일 가능성이 매우 높은 것이다. 그러나 다가오는 4차 산업혁명과 신냉전 혹은 그 이상의 격동에서는 사지선다가 통하지 않는다. 선택지 문항이 아닌 논술형 백지가 있는 오픈북이라고나 할까? 암기로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그들의 기회주의조차도 여기서는 길을 찾기가 어려울 것이다.
그런데 기껏 이재명 정부가 제시한 대안은 ‘서울대 10개 만들기’이다. 사실상 이건 사업에 불과하다. 학교를 매력적인 브랜드로 키워서 지방을 활성화시키려는 얄팍한 정책이다. 당연히 이 정책은 시행되어 봤자 지방 활성화는 물론 불평등 해소에도 실패할 것이다. 기계식 학습의 폐해가 없어지지 않는 한 4차 산업혁명의 기업들은 더 이상 ‘서울대생’을 뽑지 않는다. 지방에 일자리가 생길 리가 없다. 그리고 명문대의 개수를 늘리는 것은 기회의 창출이 아니라 시험능력주의와 경쟁률을 지방으로 확산시키는 것에 불과하다.
김누리 교수의 <경쟁교육은 야만이다>라는 책에서는 교육 혁명이라는 급진적인 표현을 사용하며 3가지 요구사항을 제시한다. 첫째, 대입폐지, 둘째, 대학 서열 폐지, 셋쨰, 등록금 폐지. 이는 이상적인 대안이고 나도 이를 목표로 삼아야 한다고 본다. 그러나 “폐지”만으로는 부족하다.
대학의 서열화를 바꾸고 싶다면 뼛속까지 박힌 능력주의를 보완한 사상은 못 만들더라도 차라리 능력주의를 극한으로 밀어붙이면 된다. 학부 단위에서부터 전 학년에 걸친 연구 실적을 통해 학사 학위를 취득하게 하면 되는 것이다. 처음에는 자본을 가진 명문대가 성공하는 듯 보이겠지만 교육적 한계가 있을 것이다. 그렇기에 기계적 학습은 자연스레 사장되고 연구라는 학습의 특성상 비판적 사고를 발전시키게 될 것이다. 그러면 초중고의 교육 과정도 연구형 인재를 만들기 위해 비판적 사고를 위한 수업으로 바뀔 것이다.
지금까지 기계적 학습에 익숙해진 명문대 학부일수록 대학으로서의 서열은 떨어질 것이다. 그리고 일부 그 아래의 대학 중 독자적이고 다양한 과목을 지닌 대학들의 서열이 올라갈 것이다. ‘연구형’ 인재가 4차 산업혁명 시대에 필요한 이유는 ‘실무형’ 인재가 하던 일을 인공지능이 대체할 것이기 때문이다. 이런 변화는 한 번에 생기지는 않는다지만 그조차도 몇 년 차이에 불과하다. 계급이 어떻다느니, 공정이 어떻하드니는 그렇다 치더라도 지금 한시가 급한 대안이다. 아이러니한 일이지만 일단 생존하고 볼 일이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