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친구 중에는 별명이 '애기'인 친구가 있다.
언제부터인지 기억나지 않지만, 작고 여린 그 친구를 우리는 애기라고 불렀다.
생각해보면 연인사이에나 할 법한 낯간지러운 애칭인데,
오히려 연인보다 그 친구에게 더 자연스럽게 애기라는 호칭이 나왔다.
그 친구가 얼마전 힘든 이별을 당했다.
- 우리 애기, 잘 하고 있어.
우리는 틈마다 애기를 위로했고, 같이 분노했다.
그러던 어느 날, 애기가 말했다.
"너네들이 매일 애기라고 하니까 진짜 애기된 거 같구, 항상 사랑받는 것 같아"
그런 애기의 말에 괜히 코끝이 찡해졌다.
호칭으로, 사랑하는 마음이 전해지다니.
우리는 종종 고양이를 나비라고 부른다.
아주 작고 연약한 생명체인 고양이에게 더 연약한 생명체인 나비의 이름을 붙인다.
그렇게 연약한 이름들을 붙이는 이유가 무엇일까.
사람들의 이름은 대게 부모가 바라는 대로 붙여진다.
씩씩하라고 이름에 나무 목자를 넣을 수도 있고,
내 이름에는 참을성을 뜻하는 참을 인자가 들어있다.
자신의 사주를 바꾸겠다고 이름을 바꾸는 사람들도 더러 있다.
이름은 그래서 원하는 소망이 드러나 있기 마련이다.
그러나 소중한 존재들에게 붙여주는 애칭은 왜 연약할까.
그건 아무래도 보살펴주고 싶기 때문 아닐까.
70 먹은 자식도 애처럼 보는 90의 노부모처럼
하나하나 걱정해주고 보살펴주고 싶은 애정이 듬뿍 담겨서
연약한 이름을 붙여주는 것이 아닐까.
가끔 애기에게 어른이 다 되었네, 하고 놀리곤 한다.
어른이 된 애기, 이미 어른인 애기는 그저 웃는다.
내가 좋아하는 애기.
애기를 애기라고 부르는 내 모습을 생각하면 오글거리지만
부르는 순간만큼은 한 뼘 다정해진 기분이다.
애정하는 대상에 연약한 이름을 붙여보자.
그리고 그 연약함을 마음 껏 사랑해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