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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상이 May 19. 2024

5월이지만 싸하다.

- 말이 주는 상처

오월. 

봄이 되면 피는 꽃들이 지기 시작하자 화사한 색을 자랑하는 장미가 자태를 드러낸다. 빨강, 노랑, 흰색의 장미가 눈을 행복하게 만든다. 아파트 담장이나 주택가 주변에 앙증맞게 핀 작은 장미가 눈을 사로잡는다. 그렇게 5월이 되었다. 


 그러나 이번 5월은 장미를 봐도 기쁘지 않다. 엄마가 아프면서 병원에 왔다 갔다 하느라 진이 다 빠졌다. 엄마의 병은 깊어지고 있어서 더 이상 집에서 아버지가 돌보기엔 무리였다. 결국 요양병원으로 갔다. 낯선 환경에서 엄마는 힘들어하셨다. 엄마는 자신이 왜 병원에 있는지 알지 못하니 더 힘든 상황이었다. 다행히 이틀이 지나자 안정을 찾고 병원 생활에 적응하기 시작했다. 엄마가 요양병원에 들어가는 날 우리 형제들 모두 바빴다. 나 역시 교육에 참석해야 했기에 정신이 없었다. 그렇게 교육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니 아버지가 전화를 했다. 


 ”니 교육장에서 뭔 일 있었나?“

 ”예? ……아무 일 없었는데요? 왜요?“

 나는 아버지가 왜 이런 말을 하는지 의아했다. 

 ”5월 8일이 무슨 날이었노?“

 ”예? 8일이요? ……아, …….“

 나는 아버지가 전화한 이유를 알았다. 어버이날 본인에게 전화도 그 무엇도 하지 않았다고 탓하는 것이었다. 하~ 기운이 빠졌다. 

 ”아니, 지금 엄마가 병원에 있는데… 아버지에게 전화할 여유가 없었습니다. 병원에 이송되고 나서 이틀 동안 계속 엄마의 상태에 대한 전화를 받느라 정신이 없었는데…….“

 ”그래도 그건 아니지 않나.“

 나는 나오는 한숨을 나도 모르게 뱉었다. 그리고 한참 있다가 말했다.

 ”제 생각이 짧았네요. 죄송합니다.“

 그리고 아버지를 챙기지 못했던 상황을 더 말하려고 하는데 전화는 끊어졌다.


 하~ 이런 일도 생기는구나. 아버지가 내게 이런 말을 하다니……. 일 마치고 엄마 병원에 들리고, 간병하고, 다시 이송할 병원을 알아보느라 전화 돌리고…, 이송된 병원에서 전화 받느라 정신이 하나도 없었는데…, 그걸 알고 이러시는 것일까, 모르고 이러시는 것일까. 


 아버지의 전화를 받고 화가 나면서 솟아오르는 짜증을 주체하기 힘들었다. 남편에게 말하고, 동생들에게 말해도 풀리지 않았다. 어버이날 그날 넘어간 게 그리 잘못된 일이었나. 멘붕이 왔다.


 연세가 많아 지시니 자신만 생각해서 그런가. 

 엄마 없이 혼자 계시니 외로워서 그런가.

 온갖 생각들이 들면서 이해가 되기도 했다가 안 되었다가를 반복했다. 


 그러다가 엄마 면회를 할 날이 왔다. 나는 남편과 병원으로 가고, 막내 동생네가 아버지를 모시고 병원에서 만나기로 했다. 엄마의 상태는 괜찮았다. 다행히 안정을 찾고 있었고, 정신도 많이 좋아 보였다. 그곳에서 아버지는 내게 말했다.


 ”며칠 전에 네게 전화해서 힘들게 한 거 미안하다. 전화하고 내도 마음이 편치 않았다.“


 아버지가 사과할 줄은 몰랐다. 

 아버지의 ‘미안하다’는 말은 구석탱이에 뭉쳐져 있었던 내 마음을 조금 풀어 주었다. 


 사실 엄마가 병원에 있는 동안 혼가 계신 아버지를 제대로 못 챙겨드려서 죄송한 마음이 있었다. 두 가지를 동시에 할 수가 없었기에 내 여력이 아버지의 식사나 집안일까지 챙겨 드릴 수는 없었다. 마음은 이미 그곳에 있지만 몸은 가질 못했다. 


 그러나 이번 일로 마음에 남아 있었던 죄송함이 어느 정도 사라져 버렸다. 열심히 하다가 하나 안 했을 때 그걸 탓하니 열심히 하던 것 마저 안 하고 싶은 마음이 든다. 


 사랑은 내리사랑이다. 치사랑에는 한계가 있다. 부모님이 내게 주신 애정을 생각하면 어떠한 말을 듣던, 상처를 주던지 잘 해드려야 하는 게 맞는데 정작 자신에게 닥치면 그게 잘되지 않는다. 나는 부모님이 원하는 자식이 될 수는 없는 것 같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할 것이고 할 생각이다. 그러나 내 마음이 가지 않거나 내가 할 수 있는 여력이 안 되는데 무리를 해 가면서 할 생각은 없다. 다른 사람들이 탓해도 할 수 없다. 이게 나이고 이게 내 한계인 모양이다. 


 5월이 가고 있다. 남은 날들은 좋은 일이 생겨서 웃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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