짝사랑

by 정상이

둘째가 초등학교 1학년 때의 일이다. 학교 수업을 마치고 집으로 왔다. 그날따라 기분이 안 좋아 보였다. 무슨 일이 있었냐고 물었다. 몇 번 한숨을 쉬더니,

“내가 좋아하던 여자애에게 고백을 했는데 … 차였어. …이제는 고백하지 않을래.”

침울하게 말하는 아이를 위로해 주어야 하는데 자꾸 웃음이 나오는 걸 간신히 참았다. 다행히 아들의 기분은 금방 괜찮아졌다.


과거의 나였다면 고백할 용기가 없었을 것이다.

누군가를 좋아하는 감정은 따뜻하다. 짝사랑을 함으로써 좋은 점은 상처를 받지 않는 것이고, 항상 기분이 좋을 수 있다는 것이다. 누군가를 좋아하면 그 사람을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좋아지고 행복해진다. 내 짝사랑의 시작은 고등학교 때부터였다. 학교에서 보내는 시간이 거의 전부였기에 어쩌면 자연스러운 일이었는지 모르겠다. 내가 다닌 고등학교는 남녀공학에 사립이었기에 선생님들과 학생과의 관계가 좋았다. 학생 간의 사귐을 못 하도록 하기도 하는데, 당시 학교에서는 인정해 주었다. 고등학교에 입학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2학년인 선도부 선배들이 멋있어 보였다. 그중에서 큰 키에 부드러운 이미지를 가진 선배가 눈에 들어왔다. 그 선배에게선 왠지 향기로운 향기가 나는 것만 같았다. 그 선배에게 ‘바나나’라는 별명을 붙였다. 나만 아는 별칭이었다. 바나나는 내가 좋아하는 과일 중 하나였다.


매일 아침 학교에 가면 교문을 지키고 있는 그 선배를 볼 수 있었다. 학교 정문이 보이면 행복해지는 시간들이었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고 어느 날, 친구가 그 선배랑 만나게 해 주겠다고 나섰다. 나는 거절했다. 내가 선배를 좋아하는 것은 사귀고 싶어서가 아니라 누군가를 좋아하는 감정 그 자체를 즐기기 위해서였기 때문이다. 짝사랑하는 선배가 나를 알고 모르고, 나를 좋아하고 안 좋아하고는 전혀 중요하지 않았다. 내가 행복 하려고 좋아한 것이었다. 공부에서 오는 스트레스를 그런 식으로 해소하였다. 물론 짝사랑은 대학에 가서도 했다. 대학에의 짝사랑은 조금 달랐다. 그때는 진정 그 선배와 사귀고 싶은데 어찌 안되어서 짝사랑이 된 것이었다. 고백을 하려고 선배 주변을 맴돌면서 기회를 노리고 있었다. 그러나 고백하지 못했다. 선배에게 이미 사귀는 사람이 있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속이 쓰렸다. 가슴 아픈 짝사랑이었다. 짝사랑은 그게 마지막이었다.


뭔가를 바라지 않으면서 순수하게 좋아하는 마음은 나이를 먹으면서 불가능해진다. 짝사랑만으로도 행복했던 그 시절. 생각만으로도 웃음이 새어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