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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대나무 Aug 25. 2023

나만의 심야식당

심야식당

나만의 심야식당  (2015년 어느 날의 이야기)               


유명한 일본 드라마 '심야식당'처럼
다들 자신만의 심야식당을 하나 만들어 보는 것도 좋을 듯하다.
나는 다행히도 우연히 들른 국밥집이 본의아니게 나만의 심야식당이 되었다.
원래 자주가던 해장국 집이 있었는데, 가는 길목에 우연히 할인 행사를 하는 집을 발견했고, 

모험삼아 한 번 맛을 보게 된것이 어느새 단골이 되어버렸다.


요즈음 평소 낮밤이 바뀌고 운동을 밤늦게 하고 오면,

귀가길에 조촐한 국밥 한 그릇이 자연히 땡긴다.

그렇게 새벽 2~3시쯤 발길을 향하는 곳이 나만의 심야식당이다. 

4평 남짓한 작은 가게안은 손님이 거의 없다.
간혹 한 테이블에 손님이 두어명 있을 때가 있기도 하지만, 

평일 그 시간대에는 거의 전무하다시피하다. 

사장님께 리모콘을 달라고 부탁한 뒤
나는 나만의 채널을 마음껏 돌리며 콩나물 국밥을 기다린다.
사장님도 다행히 말 수가 많지가 않아,

나만의 조용한 시간을 보내기에 좋다.

간혹 다른 식당 사장님은 과하다 싶을 정도로 말을 건네고 다소 귀찮을 때가 있는데,

이 분은 내 성격에 맞게 적절한 거리를 유지해준다. 

그 날도 역시 식당에 가는 길이었다.
식당 입구에 남자 두 사람이 담배를 피고 있는 것으로 보아, 

식사를 다 마치고 나가는 분위기 같았다. 

문을 열고 들어가니, 

식사를 한 테이블에 핸드폰이 놓아져 있고, 

잠바가 의자에 걸쳐져 있는 것으로 보아, 

식사는 아직 끝나지 않았구나 생각이 들었다. 

'아....오늘은 좀 시끄럽겠구나...' 하는 작은 우려가 든다.
테이블에 앉아 나의 단골 메뉴인 '콩나물 국밥'을 시키고, 

티비 채널은 항상 뉴스를 튼다. 

어릴적에는 뉴스가 그렇게 재미없더니만,
나이가 들어서 일까?
어줍잖은 예능보다 뉴스가 재미있을 때가 더 많다. 

사회와 고립된 수험생활을 몇 년이나 하다보니,
사회와 단절되었다는 생각이 불안감으로 이어지기 때문일까? 

뉴스와 인터넷을 통해 사회가 어떻게 돌아가는지를 주워들으며,
이 사회와의 연결되어 있음을 간접적으로 느끼는 것 같다. 

음식이 나오고, 밖에서 담배피던 두 손님들이 들어왔다.
한 분은 나이 50대로 보이는 

약간은 깡마른 체구의 검은 안경을 쓴 소설가와 같은 분위기를 풍긴다. 

다른 분은 그보다 더 어린 40대의 평범한 그러나 약간 동안의 모습이다. 

"그러니까 형님, 1주일에 한번이든 뭐든간에 그냥 10만원어치만 하고 오라고요" 

"그래 그래야지..."
"그 사람들 다 모아서 50만원 모으면 따로 20만원은 떼어놓고 해야죠. 순전히 즐기는 거라면..."


가게도 작은 편이고, 테이블간의 간격이 좁아 

부득이하게 대화를 엿듣게 되었다. 

주제가 '도박'에 관한 이야기 같다. 

젊은 사내는 나이 많은 형님에게 도박에 대해 말리는 분위기였다.
1주일에 한번 모이는 모임에서 

개인당 10만원씩 모아 화투나 카드 놀이를 하며 노는것 같은데, 

말리는 분위기로 보아, 

그 이상을 노는 것 같아 우려되는 목소리로 말하는 것 같아 보였다. 

그 소설가처럼 보이는 아저씨는 자기 통제를 넘어서 사고를 많이 치는 모양새였다. 

대화를 더 듣자하니,

그 나이 많은 사내가 도박으로 돈을 꾸고

금전적인 문제가 많이 발생하여

그 둘의 관계도 수년간 단절되었다가

최근에서야 다시 만난듯 보였다.


사실 말리는 쪽은 뭔가 정신을 차린 사람처럼 말하고 있었으나, 

좀 더 대화를 듣다보니, 그 말리는 쪽도 허세가 있어 보였다.
즐길려면 즐기거나, 

아니면 돈을 따는 목적으로 만나면 확실히 그쪽으로 나아가거나... 

둘 중 하나라는 식의 말투에서 

도박을 아예 끊고 제대로 살아가는 듯한 흉내를 내는 것 같아 보였다.


전화벨이 울렸다.


그 검은 안경 사내는 약간 취기어린 목소리로 통화를 시작했다.  

"어? 출발했어? ㅇㅇ동으로 와. 응. 전화해."


그때가 새벽 3시였는데, 

지금 젊은 동생과 술자리를 마치고, 

또 다른 술약속을 하는듯 보였다. 


동생은 또 다른 술자리를 우려하며 제지하는 분위기였다.
그러나 그 형은 걱정말라며 

"새벽 3시에 버스탔다고 말하는 놈이 어디있냐? 크하하" 라고 말했다. 

서로 전화로 술약속은 했지만, 

그 약속의 실현가능성은 매우 적어보인다는 의미였다.


어느새 나의 콩나물 국밥은 그릇의 반도 안남았다. 

새콤한 깍두기를 집을 무렵
옆 테이블에서 나의 귀를 번쩍이는 한마디가 들려온다.


"넌 서울법대 나온놈이..............."


검은 안경을 쓴 형이 

그 동생으로 보이는 사내에게 한마디를 던진 것이다. 

서울대 법대를 나온 사람과 도박이라....흠...
내가 소설가였다면 당장이라도 내리쓸만한 소설 소재거리였다.


사장님과 그 나이 많은 사람은 친분이 있는 것 같았다. 

그 남자가 맥주를 직접 냉장고에서 꺼내어 마시려고 하자,
사장님은 "ㅇㅇ 야, 그거 말고 이거 마셔 " 라며 

주방쪽 냉장고에서 맥주 하나를 꺼내다준다.

거기에 있던 맥주가 더 시원하다는 말을 덧붙였다.


나의 뚝배기 속 국밥이 거의 없어질 무렵
그들의 대화도 마무리가 되었고, 

그들은 잠바를 주섬주섬 입어, 인사를 하고는 식당을 떠났다. 

나의 식사도 거의 끝나가고,

마무리로 물 한잔으로 입을 헹구며

나는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사장님, 다들 아시는 분들인가봐요? "


" 아..예 ㅋ 예전부터 알던 동생들이에요. 대리운전 하는 친구들인데...." 

" 아 글쿠나....근데, 제가 원치않게 듣다보니까,
이 쪽 분은 서울대 법대 나오셨다고 하시던데.. 

서울대 법대 나와서 대리운전을 하나봐요? "


나의 호기심을 못이기고는 주제넘게 한마디 물어봤다.


" 아...ㅋㅋ 서울대 법대가 아니라, 

서울에 있는 대학 나왔나봐요. 

근데 그냥 자기들끼리 그렇게 부르는거죠. " 

" 아 예....ㅎㅎ "


사장님은 뭔가 어색하신듯 테이블을 치우고는 

핸드폰을 만지작 거리신다. 

어색한 분위기를 넘기려고 시덥잖은 말을 또 건넨다.


" 이 콩나물 국밥안에 김치가 진짜 맛있네요. "


" 아...그 김치요 ㅋㅋ 

그리고 그 안에 여러가지 약초로 달인 물이라 국물도 상당히 좋은거에요. "


사장님은 자랑이라도 하는듯 매번 말씀하신다. 

그 국밥의 국물이 그냥 국물이 아니란다. 

여러가지 약초를 섞어서 우려낸 물이라나.. 

하여간 맛있긴 정말 맛있다.


새벽만 되면 나도 모르게 발걸음을 향하게 만드니... 

근데 사장님께는 죄송하지만,
할인행사가 끝나면 과연 내가 또 찾아갈 수 있을런지 모르겠다. 

백수에게는 몇천원 가격 상승이 큰 부담이 되기 때문이다.


세상과의 적당한 거리를 지키며

세상을 염탐할 수 있고,
적당히 나의 고독을 즐길 수 있는 

나만의 작은 심야식당이 있어 

소소한 행복감을 맛볼 수 있다.  

식당에서는 밥만 먹는게 아닌가보다.
식사를 매개로 잠시동안의 행복을 느끼게 해주는 

무언의 문화가 존재하는듯 하다. 

바쁜 일상속에서 잠시 삶의 템포를 늦추고
잠시나마 삶의 안단테를 느끼게끔 해주는 

나만의 안식처를 하나씩은 가져볼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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