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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승우 Dec 20. 2020

그 고양이는 고막파괴자였다

거짓말이 아니다

까미(7세)는 한때 둘째가라면 서러울 정도의 '고막 테러범'이었다. (내 딴엔) 적정한 급식과 규칙적인 놀이를 제공했음에도, 잠을 청하려고만 하면 '깨어나라'며 끊임없이 채근을 해댔다.


"이이웅~ 이에에엥~~~"
(일어나~ 이 새끼야~~~)


아마도 최근 이사하며 서식지(?)가 바뀌어 불안했던 모양이다. 어쨌든 흡사 앰뷸런스를 방불케 하는 까미의 울음소리에 나는 자주 잠을 설쳤다. 침대에 뛰어 올라와 귓바퀴에 대고 포효하는 바람에 이러다 귀머거리 되는 게 아닐까 싶은 적도 여러 번. 최소한 난청은 온 것 같다(...)


침대 위에서 기괴한 자세로 자리 잡은 까미. 우측은 베개가 아니다. (그럼?)


결국 밤이건 새벽이건 일어나서 상대해줄 수밖에 없었다. 놀아주거나, 빗질을 해주거나, 간식을 주거나. 확실한 사실은, 까미는 내가 침대에 몸을 누이는 것을 용납하지 않는단 거였다. 마루에 함께 있다 소파에서 잠드는 경우엔 울지 않았다. 이건 감히 편하게 잠들지 말라는 심술인가? 아니면 벌?


그런데 이런 까미의 기행은 요미를 입양하며 신기하게도 '뚝' 그쳤다. 요미(0.5세)는 입양했을 때부터 미친 듯이 활발했다. 아니, 거의 미친냥이었다. 까미에게 쉴 새 없이 달려들었고, 예민한 까미는 그런 요미의 만행을 다발성 냥펀치로 응수했다. 밤에도 마찬가지였다. 아마도 까미의 울음은 타의적(요미적)으로 멈춘 것이리라.


"가까이 오면 죽인다" 처음엔 이랬다.


"마주보고 싶진 않아, 흥" 그래도 정말 많이 가까워졌다.


수개월이 지나며 평생 앙숙일 것 같았던 둘의 사이는 많이 변했다. 지금도 싸우고, 도망치고, 추격하지만 알게 모르게 서로를 의지한다. 집사가 밥벌이를 마치고 돌아왔을 때, 둘이 모여 잠든 모습을 보면 그렇게 사랑스러울 수가 없다.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남이지만 어느새 서로에게 가장 중요한 존재가 된 것이다.


두 마리 고양이를 바라보며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벌써 인생의 반을 살아버린 까미가 언젠가 무지개 다리를 건넌다면, 요미는 어떤 표정을 지을까. 이 작은 고양이도 나만큼 슬퍼할까. 나는 어떻게 해야 그들을 위로할 수 있을까.


그날이 오지 않기를 바라지만, 그때까지 적어도 둘 사이에 후회는 없도록 그들의 마중물이 되고싶다. 어쩌면 그게 집사로서 나의 사명일지도 모르겠다. 뜬금없지만 아무튼, 그런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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