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진 자유는 때로 걸작을 만든다
코로나 시대, 당신은?
마음껏 거리를 거닐 자유가 사라졌다. 침 튀기며 떠들고, 찌개 한 냄비 거리낌 없이 나눠 먹던 기억도 어느덧 흐리다. 완전 무장한 채 산책이라도 할라치면, 이번엔 답답한 폐호흡이 문제다. 도대체가 얼마나 갑갑한지 화가 날 정도다. 그놈의 코로나.
그런데 최근 전염병에 대한 글을 읽다 새로운 사실을 알았다. 과거 최악의 전염병이 창궐하던 시기에 오히려 세기의 발견이 나왔으며, 역사적인 문화유산이 만들어졌다는 것.
1952년부터 2년간 유럽에 흑사병(페스트)이 퍼지자, 런던의 극장들은 줄줄이 폐쇄됐다. 그로 인해 '무명 배우'였던 셰익스피어는 설 무대를 잃었다. 그는 할 수 없이 집에 틀어박혀 글을 쓰기 시작했고, '리어왕'과 '맥베스'라는 걸출한 작품을 집필했다. 흑사병이 아니었으면 셰익스피어는 그저 그런 배우로 인생을 마감했을지 모르는 일이다.
물리학자 아이작 뉴턴도 마찬가지였다. 재직하던 케임브리지 대학에 흑사병으로 휴교령이 내려, 뉴턴은 시골 고향 집에 머물러야 했다. 거기서 그는 모든 물체는 서로 끌어당긴다는 '만유인력의 법칙'을 정립했다. 그 시절은 뉴턴에게 "깊은 사색의 기간을 가진 발견의 전성기"였다. 이탈리아 피렌체 출신 작가이자 시인이었던 보카치오도 흑사병을 피해 작품활동에 몰두하다, 불후의 명작 '데카메론'을 썼다.
나 역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이 '비어버린 시간'을 조금이나마 채우기 위해 펜을 들었다. 집돌이가 된 마당에 글이라도 써보자는 가벼운 마음에서였다. 대문호 셰익스피어니, 뉴턴이니 하는 위인들의 이야기를 듣고서 괜히 키보드를 누르는 손가락만 민망해졌지만, 그래도 나는 쓰기로 했다. '걸작'은 못 만들더라도 '다작'은 할 수 있겠지, 시간은 남아도니까 말이다.
요즘 퇴근 후 나의 일과는 두 가지다. 공상하기와 글쓰기. 딱히 할 일이 없어 다문다독다상량(多聞多讀多商量: 많이 듣고, 많이 읽으며, 많이 생각함)이 습관처럼 됐다. 침대에 누워서 눈을 감고 있으니 자는 것처럼 보일지 모르겠지만, 머릿속에는 수많은 글감들이 저마다 간택을 받기 위한 전쟁을 치르고 있다. 결코 잠탱이가 된 게 아니다. 아무튼 그렇다니까.
코로나 팬데믹(pandemic)은 언젠가 끝이 난다. 영원한 전염병은 없다. 우리는 과거 역사를 바꿔놓았던 흑사병과 스페인독감 못지않은, 역사책 한 페이지에 영원히 기록될 만한 사건 속에, 시간 위에 서 있다. "역사적 순간을 관통하고 있으니 대작을 쓰라"는 말은 아니다. 그냥 하루하루 단상을 일기장처럼 적어보면 어떨까. 나중에 아들딸이, 혹은 손주가 물어볼 때 머리를 쓰다듬으며 이야기 하나 더 전해줄 수 있는 딱 그만큼만.
그날에는, 그 순간이 분명 당신 인생의 걸작이 될 터이다.
나는 그렇게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