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날실과 씨실이 되는 우리의 기억, 벌써 이십 년이 되었다.
나에게는 막역한 친구가 있다. 그녀는 나와 20년 지기 베프이자 서로의 허물을 가감 없이 까댈 수 있는 -물론 뒷감당은 할 수 있을 정도의- 가족 같은 사이다. 우리는 고등학교 3학년 때 만났으며 서로의 집이 어깨를 맞대고 있었다. 그 집엔 중학교 3학년 때쯤 세 들었던 것을 감안하면 그녀와의 조우는 삼여 년이 걸린 셈이다. 그리 넓지도 않은 손바닥만 한 동네에서 마주치지 않기가 더 어려웠을 텐데 말이다.
아이 엄마가 된 지금까지도 여전히 그녀가 우려먹는 나의 첫인상은 이와 같다. 바람이 찬 추운 겨울 아침 등굣길, 버스를 기다리고 있을 때 단발머리 한쪽이 요란하게 뒤집어진 깡마른 아이가 헐레벌떡 뛰어 오더란다. 같은 학교 교복이었으므로 저절로 시선이 머물렀단다. 머리카락이 채 마르지 않아 끝은 딱딱한 질감으로 얼어 있고, 등에 매달린 가방마저 열려 있었다. 그런데 아침부터 돌부리를 발가락으로 걷어찼는지 무엇엔가 잔뜩 화가 난 얼굴이 무척 사나웠다고 한다. -맞다. 바로 ‘나’ 말이다- 내 친구는 어딘지 이목을 끄는 데가 있는 조용하게 어수선한 나를 보며 다만 이렇게 생각했다.
"저 아이는 걸러야겠다."
(그녀가 이 태고의 기억을 끄집어낼 때마다 항의하고 싶지만 나는 가만히 있을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그 기억은 내 기억이 아니었고 그러므로 그것에 관한 한 전혀 지분이 없었다. 무엇보다 그녀가 이 이야기를 심히 즐겼다.)
그랬던 그녀가 고3 같은 반 교실에서 나와 딱 마주쳤던 것이다. 그것도 바로 옆집 이웃으로. 그랬거나 말거나 나와 그녀는 이렇게 유구한 역사를 함께 기억하고 추억하는 사이가 됐다.
그녀와는 무수히 많은 에피소드가 있다. 싱그러운 학원 청춘물의 씬들처럼 세월의 필터를 거친 말랑말랑한 기억부터 조금은 무거운 기억들까지......
경과 중의 기억들이 씨실과 날실처럼 교직 한다. 우리의 웃음과 눈물이 잘잘한 무늬를 만든다. 때론 잔잔한 후회나 깨달음의 순간이 수 놓인다. 그래서 우리는 시간의 옷감 어딘가를 매만지며, 현재를 가늠한다. 어깨에 두르면 조금 따뜻하기도 하다. 이런 일들은 그녀와 나의 범주를 넘어 다른 이들과의 모든 관계에서 일어나고 있다. 그렇게 또 하루가 짜이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녀와 나는 다른 대학을 다녔고, 평일에 나는 대학 기숙사에 있었으므로 주로 주말에나 볼 수 있었던 것 같다. 나는 집에 오면 그녀를 만나는 것이 자연스러운 일상의 하나였고, 보지 못하는 주말이면 조금 섭섭했던 것 같다. 우리는 느지막한 오후에 같이 저녁을 먹거나 군것질을 하고 벚나무 가로수가 늘어서 있는 길을 따라 천천히 걸었다. 동네를 세 바퀴 돌아도 우리의 이야기는 끊이질 않았고, 다시 벚나무 길에 도달할 때쯤은 이미 한참 어두워진 후였다. 그동안 있었던 일과 고민과 결핍, 소소한 웃음들이 섞이면서 주위는 조금 더 아름다워졌다. 무엇보다 서로의 어설픈 연애사 이야기를 나눌 때면 시간이 잠시 멈춰줬으면 했다. (우리는 서로의 짝사랑들의 이름을 여전히 기억하고 있다.)
육아에 찌들거나 마음속 조그마한 부끄러움이 올라오거나 마냥 심심할 때, 전화기 속 즐겨찾기의 이름 석자.
변함없이 익숙한 음성, 익숙한 것은 어째서 이렇게 반가운 것일까. 그럴 때면 나는 다시 열아홉 소녀가 된다. 우리는 시시콜콜한 이야기에 웃고 울었던 그때로 어느새 돌아가 있다.
내일 불현듯, 전화를 걸어 “여보세요"란 다소 가라앉은 음성을 들으면 나는, "목소리가 왜 그래? 몸이 안 좋아?"라고 물을 것이다.
그녀는 종종 그러듯이 "음..." 뜸을 좀 들이다가 "있잖아.." 평소 습관대로, 무슨 흥미로운 일인가를 꺼내려고 목소리를 더욱 낮출 것이다.
"야~~ 이러지 마라~~"
나는 어느새 근심이 가신 웃음기 가득한 목소리로 그 말을 잘라먹을 것이다. 그리고 같이 웃을 것이다. 여느 날과 같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