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자리에 관한 사색 2
이제 바야흐로 사춘기로 접어든 딸이 어린이집에 다닐 무렵이다.
어린이집이 멀어 도보로 20여분이 걸렸다. 어린이집이 가까워질 무렵이면 늘 지나는 골목길이 있었다. 그 한적한 주택가는 고즈넉한 정취가 있어서 바쁠 때조차 어떤 류의 여유로움을 주었다.
그 날은 딸을 데려다주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었다. 그 골목길이었다. 커버를 도는데 시멘트 축조물 위에 아주 낯익은 친구가 날개를 접고 있었다. 잠자리였다. 서울 한복판이라 그랬는지 실로 오랜만이었다. 반가워 잠시 걸음을 멈추었다. 프레임을 통해 눈을 맞추어 본다. 잠시 쉬는 것 같지 않다. 아픈 모양, 아니면 잠자고 있는지 인간이 휴대전화를 가까이 들이대는 데도 미동이 없다. 드물긴 하지만 아주 대범한 녀석이거나 “설마 내가 보이는 거냐?”며 능청을 떨고 있는 건 아닐까 잠시 생각해 본다. 아니면 내게서 어떤 적의도 감지하지 못한 건 아닐까.
지쳐 보여 조금 안쓰럽다.
“왜 그래?” 말을 붙여 본다. 혹시 인간의 말을 알아듣는다면 내 걱정 어린 마음이 전해질 수도 있을 것이다. 혹시나 짓궂은 꼬마 녀석들에게 억류(?)되었다가 갓 풀려나 자유의 공기를 마시고 있었다면 내 진정성을 받아들이기 힘들겠지만.
시간의 공백 때문인지 이제는 우리 사이도 많이 달라졌다. 당연하게도 이제 잡고 싶지는 않다.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좋다.
딸에게 보여줄 요량으로 사진에 담을 뿐이다. '어린아이'들이 대개 그러하듯, 너를 환대할 것이므로.
초등학교 여름방학이 끝날 무렵이었을 것이다.
더위가 한물가고 오후의 따뜻한 바람이 불어오던 날, 나는 외할머니네 밭으로 가고 있었다. 정갈하게 빗은 머리칼 같은 새 포장도로 위에 햇빛이 비쳐 반들반들 윤이 났다. 누가 만들어 준 것인지 산 것인지 얼기설기 어설픈 대나무 잠자리채를 든 채였다.
오르막을 오르며 본 찰나의 인상은 낮은 언덕과 넓은 하늘이 맞닿아 있는 장면이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내가 아래서 언덕을 올려다봤으므로 상대적으로 하늘이 낮아 보이는 착시현상이었을 것이다. 그 광활한 푸른 하늘에 노랑 빨강 꼬리를 흔들며 잠자리들이 날고 있었다. 손만 뻗으면 닿을 듯 낮은 하늘, 그다지도 친근한 하늘에 가득한 잠자리들...
물고기 떼가 바글대는 황금어장에 그물을 내리듯 잠자리들을 낚을 생각에 나의 발은 빨라졌다. 공중을 가로지르는 잠자리채의 경쾌한 ‘휙, 휙’ 소리가 이미 들리는 듯했다. 오를수록 숨은 가빠오고 드디어 정상에 도착하는가 싶었는데, 이럴 수가...
하늘은 갑자기 뒤로 물러나 본연의 경이로움으로 한껏 높아져 있었으며 아스라이 먼 그곳에, 형형색색으로 빛나는 내 보물들이 유유히 떠다니고 있었다. 긴 내 잠자리채도 범접할 수 없는 다른 차원의 세계가 거기 있었다. 나는 너무나도 아쉬워, 입이 벌어진 채 한참을 바라보고만 있었다.
그렇지만 세월이 가고 그 장면을 떠올릴 때면 가슴 한 켠에 아련한 그리움과 행복이 번진다.
잠자리는 존재만으로도 소중한 나의 신기루였다. 이에 관해서라면 누구에게도 반론의 기회를 주지 않을 생각이다. 왜냐하면 잠자리에 대한 무한 애정은 잠자리에 매료된 모든 어린아이들에게 닿아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것은 ‘어딘가에 감춰져 있는 우물로 인해 아름다운 사막’ 같은 우리 인생에 관해서이기도 하다.
(2012. 9. 21. 쓴 글을 손보아 올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