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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사회에서 오랫동안 지켜 내려와 그 사회 구성원들이 널리 인정하는 질서’를 우리는 ‘관습’이라고 한다. 비슷한 의미를 가진 다른 용어로는 ‘규칙’이 있으며, 물론 예술 분야에도 내려오는 관습 혹은 규칙이 있다.
프로 룰 브레이커, 뒤샹
하지만, 마르셀 뒤샹은 그러한 규칙에 무조건적으로 따른 예술가가 아니었다. 그가 기존의 회화 형식에서 벗어나고자 한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그중에서도 상업주의로 인한 ‘예술의 상품화’, 그리고 ’ 예술에 대한 과한 진지함’이 그 배경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마르셀 뒤샹은 어떤 것들을 깨부순 브레이커였을까?
먼저, 뒤샹은 예술이 될 수 있는 오브제의 범주를 깼다. 그에게 예술은 체스와 같은 하나의 게임이었다. 그러나 기존의 룰을 따르는 게임이 아닌, 새롭게 판을 짜는, 창조자와 관람자 간의 게임이라고 할 수 있다. 여기서 새롭게 판을 짠다는 것은 ‘예술적’이지 않은 것도 예술이 될 수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그렇기 때문에 뒤샹이 선택한 오브제는 그림이나 조각이 아닌, 기성품이자 일상적인 사물이었다. 게다가 그는 시각적인 측면에서의 예술이 아닌 정신적인 측면에서의 예술을 추구했기 때문에, 이러한 성향도 오브제 선택과정에 작동했다.
이와 같은 뒤샹의 예술 방향성을 이해하고 나면, <샘>에서 그가 모든 화장실에서 볼 수 있는 변기를 예술 오브제로서 제시한 이유에 몇몇은 고개를 끄덕일 수도 있을 것이다. 물론 변기를 보고 직관적인 심미성을 느끼는 것이 쉽지는 않다. 그러나 관람객들이 변기를 보며 떠올리는 다양한 해석들과 관람객 스스로 그것을 인지하는 과정은 ‘아이디어’를 중시한 뒤샹에게 더 의미 있는 감상의 방식이었을지도 모른다.
또한, 오브제에서의 일탈은 예술작품이 가지는 희소성과도 연관된다. 그러한 일탈을 통해 뒤샹은 작품과 관람객 사이의 존재하던 진입장벽을 무너뜨린 셈이다. 즉, 뒤샹이 만드는 작품의 소재는 일상생활 어디에서나 쉽게 볼 수 있는 레디메이드였기 때문에, 관람객들은 미술관에서 본 예술품을 자신들의 집안에도 들일 수 있게 된 것이다. 실제로 <병 걸이>라는 작품이 나오고, 많은 사람들이 와인 건조대를 따라 사서 그들만의 <병 걸이>를 만들었다고 한다. 마르셀 뒤샹은 이러한 사람들의 반응을 좋아했는데, 자신의 작품이 복제되면 복제될수록 그 가치가 떨어지기 때문이었다. 뿐만 아니라 뒤샹 스스로도 작품의 오리지널리티를 중시하지 않았고, 자신의 작품을 작게 만들어 여러 박스에 담아 팔거나 소장하기도 했었다. 이는 희소성이 있는 작품일수록 더 가치가 생기는 메커니즘을 가진 미술계의 관습을 깨는 행위이자, 미술관에서만 예술을 향유하는 것에서 벗어난 새로운 형태의 감상을 제안하는 것이다.
마르셀 뒤샹의 ‘룰 브레이킹’은 단순히 기존의 예술이 가진 관습에 대한 반항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다. 그의 <샘> 덕분에 우리는 변기를 ‘있는 것’에서 ‘보이는 것’으로 인식을 전환해 볼 수 있었고, 예술과 무예술의 기준에 대해서도 생각해 볼 수 있었다. 상업화로 인해 격변하는 시대를 맞이했던 뒤샹이었기에, 그가 자신의 분야에서도 새로운 변화를 추구하려 했던 것은 예술가로서 당연한 것이 아니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