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88년도 가을 아침조회 (1/4)
0.
:: 한줄기 기다란 댕기머리 여학우를 볼 때면, 남자 어린이들은 '와 진짜 저거 한 번 잡아당겨 보고 싶다' 라는 강한 충동에 휩싸였다.
:: "절대 해서는 안 되는 행동이에요(이에요)! 왜냐(왜냐)! 이제 외국에서(에서) 손님들이(손님들이) 많이 오시기 때문이에요(이에요)!"
1.
1988년도는 올림픽의 해였다.
모든 것이 진용을 이루고 있었다.
사회의 많은 부분들이 단정히 정돈되어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사회 곳곳이 빠르게 휘몰아치고 있었다.
무엇인가 빠르게
사람의 마음과 마음 사이를 흘러 다니고 있었던 것인데,
이는 올림픽 분위기가 한국 전체에 팽배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것은 마치 열병과도 같았다.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올림픽 선전물과 관련기사들과
주파수 라디오와 마이크 훈화와 관련 여러 메시지가,
온통 우리 세계 속에 흩뿌려지며 마구 쏟아져 날아다녔다.
특히 멍청이 배불뚝 브라운관 칼라 TV가 그러했다.
콧물 꼬마가 입을 헤 벌리며 작고 멍청한 스위치를 돌려 켤 때면,
TV 광고 상품과 제품들이
360도 회전하고, 튀어나오고, 오도깝스레 반짝거렸다.
제품 옆에서 웃고 노래하는 TV 속 미남미녀와
상큼상큼 고개를 까닥거리며 합창하던 어린아이들.
거의 모든 제품과 상품들에는
그러데이션 삼태극 휘장이 모던하게 자리하고 있었고,
그 옆에는 마스코트 상모 호돌이가
깨방정한 환한 웃음으로 멍청한 브이를 그리며 흡사 가위를 내고 있었다.
TV 프로그램은 하나같이 올림픽 기념 특집 방송이었다.
거대하고 알록한 애드벌룬이,
달록하게 창공에 떠 있었고,
요트가 하얗게 한강을 갈랐다.
TV 속 이쁜 누나들은,
뚜비뚜비 흥겨웁게 춤을 추었다.
이 끝에서 저 끝까지 새하얀 팔을 흔들고
이쁘고 동근 어깨에 어깨춤을 들썩이면서였다.
1988년 서울 올림픽.
문득 “88”이라는 글자를 바라볼 때면,
벌써 상하좌우 묘한 대칭이 어떤 특별함을 발산하고 있었고,
이제 입을 통해 “1988”을 언급할 때면,
쌍을 이룬 파열음이 아름답게 부딪쳐 울리고 있었다.
그 때문인지,
"1988년 서울 올림픽"이 주는
그 복합적 차원의 의미와, 총체적인 차원의 이미지와,
통째로 울려대는 모종의 정신적 구조물들이,
사람들이 느끼기에는 어쩐지 친근하고 신비로운,
그래서 어딘지 미래이자 과거이고 또 지금으로서
날개를 펴 활공하며 다가오고 있는 그 무엇처럼 느껴졌다.
그리고 이제 그것들이 가슴속에 한껏 들어와
우리들의 가슴을 가득 팽창시켜 놓고는,
우리들을 움켜잡은 채로
사람들을 한 쪽으로 세차게 내달리게 하고 있었다.
사람들은 기꺼이 움켜 잡혔다. 올림픽에 기꺼이 움켜잡혀 주었던 것이다.
초점이었다. 그것은 바로 "의미의 초점"이었다.
한국 사람들은 마치 1988년을 위해 뛰어온 것처럼 굴었다.
명료하게 의식되지는 않았지만,
어떤 느낌,
거대하고 강렬한 어떤 느낌이,
사람들을 지배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것은 그들이 역사의 정 한가운데를
정통으로 관통한다는 느낌이었다.
그랬다.
그랬던 것이다.
우리 선대의 한국인들은
올림픽 관련 이미지의 무차별적인 폭격을 맞으며,
크라이막스를 향해 내달려갔던 것이다.
기쁨에 가까운 비명을 지르면서였다.
그들은 그것을 기꺼이 기꺼워했다.
이 역사적인 흥분 속에서,
한국 사람들은 자신의 나라에 대해서 생각해 보기도 했다.
아랫 입술에 힘을 주고 주름을 만들면서였다.
자기 자신을 생각하다가 또 손님을 생각해 보고,
또 손님 나라를 생각하다가 전 세계를 생각해 보았다.
지구촌의 한국인들은,
또 지구본을 소리 내 굴려보기도 하고,
또 천천히 목을 내빼 살펴보기도 했다.
지구본에서 한반도 쪽을 찾아 멈출 때면,
동해와 서해 주변을 손가락으로 찬찬히 더듬어보고는,
작게 나뉘어버린 나의 나라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그럴 때면 한국인들은,
조용한 한숨을 작게 내쉬며,
약간씩 울컥해 하곤 했다.
식민지 시대를 겪고,
전쟁을 겪고,
가난을 겪고,
경제적 호황 속에서 조금 일어선 한국 사람들.
이제 그들이 세계 사람들에게 자신들의 얼굴을 내밀려 하고 있었다.
약간의 자신감이, 그래그래 있기는 하였다.
서울 지하철도 군데군데 여럿 개통한 뒤였고,
아시안 게임도 비교적 잘 마친 뒤였으며,
한국의 경제성장률도 10% 안팎씩을 매년 찍어내고 있었다.
성장률은 그저 수치일 뿐이라고,
내 사랑하고 존경하는 독자님들께서 어디서 얼핏 뭘 들었는진 모르겠다.
하지만, 실제로 성장이 있었고 풍요가 있었다.
불만이나 아쉬움 같은 것이 전혀 없었다, 뭐 이런 것은 아니었지만,
실제로 살림살이는 나아지고 있었고,
사람들도 피부로 이른바 ‘발전’을 느끼고 있었다.
우리 부모 세대 자신을 더듬어 뒤돌아 살펴볼 때도,
자기네 삶 부터도 이미 많이 바뀌고 있던 터였다.
특히 자기 자식을 바라본 다음 옆에 덧대 비교하여,
자신의 어릴 시절을 생각해 볼 때면,
역시나 경악에 귀가 찢어질 정도로 엄청난 차이가 있다고 느끼고 있었다.
‘이야! 옛 진창 흙길에는 블록이 깔린 것 아닌가.
옛 좁고 굽은 길이 반듯하게 펴진 것 아닌가!
진짜 봐봐, 자 진짜 봐봐!
아스팔트가 깔리고,
건물의 층수는 높아져 가고!
굵고 둥근 교각이 세워지고 있다고!
길고 곧은 다리가 놓여지고 있다고!’
이 반듯한 이미지와 쭉 뻗은 이미지,
그리고 또 높고 시원하게 솟은 이미지와
그 주변의 파랗고 하얀 이미지들은,
감탄을 동반한 자기의식과 함께,
그들로 하여금 무엇인가를 드러내어도 된다고 독려하고 있었다.
하지만 생경한 측면이 있었다.
생소한 측면이 있었던 것이다.
대관절이라도 좋고, 뭐라고 해도 좋다.
대체, 우리들의 위치가 세계의 어디쯤일까나.
그 생소하고 생경한 느낌은
어딘지 낯섦과도 닮아 있었고,
수줍음과도 닮아 있었고,
망설임과도 닮아 있었고 또 쌈파이어 조심스러움과도 닮아 있었는데,
이것은 결국 이어지고 이어져,
강력하고 결정화된 민족적 설렘에 당도하고 도달하게 되었다.
외국인들이 한국에 찾아온다는 사실.
이 명징한 사실.
사람들은 보이는 곳부터 단장을 하기 시작했다.
그래서 '외국은 우리를 어떻게 볼까’ 하는 걱정과 염려도,
‘우리가 누구인가’ 하는 자기 성찰과 고민도,
결국에는 모두 청소를 하고
만국기 행렬을 만들어 거리를 단장하자는 데로 이어졌다.
그 단장과 정돈의 일환으로
종로건 명동이건 서울역이건,
조금이라도 길처럼 보이거나 공간이 나는 것 같다 싶어 보이면,
여지없이 만국기가 걸렸다.
커다랗게 올림 파마한 아줌마들도,
단발풍 귀밑머리 아저씨들도,
포대기에 아가야를 업고, 손목 시계를 쳐다보며
만국기 아래를 지나다녔다.
비녀에 쪽 찐 머리에 흰머리의 할머니들도
또 탈모에 기름 머리에 뿔테안경 어르신들도,
이제 보따리를 꽁이이고 담배를 옴팍 물며
만국기 아래를 지나다녔다.
그랬다. 그랬던 것이다.
많은 곳에 만국기가 걸렸던 것이다.
그리고 이것은 나의 초강력 재동국민학교도 마찬가지였다.
* * *
“앞으로~ 앞으로~ 앞으로 앞으로!”
부챗살 모양의 여러 줄들이,
학교 담장에서부터 건물 옥상까지,
얇은 곡선을 그리며 늘어서 있었다.
이 줄을 따라 촘촘하게 박혀 있던 여러 나라들의 국기들은,
마치 우표 사이의 절취선처럼 보였다.
이 라인을 따라,
본관 위에는 비닐하우스 모양의 진회색 강당이 새로 올려져 있었다.
그리고 그 건물 어깨너머로는,
멍청한 북악산이,
고개를 내밀고 있었다.
이제 곧 가을 조회가 있을 예정이었다.
학교 현관에서는 어수선한 소리가 들렸다.
"지구는 둥그니까~! 자꾸 걸어 나가면~!"
운동장 스피커에서는 동요 소리가 들렸다.
하지만 학교 운동장에는 아직 한 명의 학생도 보이지 않았다.
운동장은 남향의 본관 건물과 서향의 동관 건물이 둘러싸고 있었다.
건물 옆으로 동전 같은 것을 떨구던 아침햇살은,
황톳빛 운동장에 가을 볕을 펼쳐 놓고 있었다.
(1부 끝. 2부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