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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재선 Dec 13. 2015

창조성은 필요의 산물이다.

틀리기 위해 씁니다 #2_'창조성, 신화를 다시 쓰다'

※주의사항 : 제가 가진 지식은 굉장히 얕고 좁습니다. 하지만 제가 쓰는 글들은 강한 주장으로 끝날 겁니다. 그러니까 제 주장을 믿지는 마세요. 큰일 날 수도 있습니다. 사실, 틀리기 위해서 쓰는 거거든요. 틀리는 것이 두려워 입 닫고 살기에는 인생이 너무 짧아 보였습니다. 그 '틀림', 댓글에서 마구 마구 지적해 주세요. 악플 수집합니다 :-) 매주 특정 주제에 대한 제 생각들을 배설해 볼게요. 파리가 되어 주세요. 여러분.

 단,  아무것도 모르는 놈이 아는 척한다고 욕하지는 말아주세요. 틀려 보려고 쓰는 거니까요. 정답이라고 생각은 안 합니다. '요즘' 제가 가지고 있는 생각일 뿐.


ㄱ. 영화 '잡스'를 보면, 이런 장면이 나오죠?

 "빌게이츠 당신 고소할 거야!"

 불같이 화를 내며 전화기를 내던지는 잡스 말이에요. 빌게이츠가 잡스의  맥킨토시로부터 GUI를 베꼈다는 논란에 대해서는 이제 많은 사람들이 알 것입니다. 저도 여기까지는 알고 있었으니까요. 그런데 '창조성, 신화를 다시 쓰다'라는 책에서는 조금 더 자세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맥킨토시를 훔쳤다며 소리치는 잡스에게 빌게이츠는 이렇게 대답했죠.

 "글쎄요, 사태를 바라보는 시각은 여러 가지가 있다고 봅니다. 당신과 내가 사는 동네에 부자가 산다고 칩시다. 내가 텔레비전을 훔치려고 그 집에 몰래 들어갔는데 이미 당신이 그것을 훔쳤더군요."

 이는 잡스가 만들었던 맥킨토시의 GUI 역시 다른 누군가의  아이디어로부터 훔친 것이라는 사실을 의미하는 말이었습니다. 실제로 마우스로 조절하는 커서, 그리고 열고 닫을 수 있는 창 등은 제록스의 팔로알토 연구소에서 '알토'라는 이름으로 개발했던 것입니다. 잡스는 이 연구소를 수 차례 방문한 뒤, 맥킨토시의 GUI에 알토의 아이디어를 접목시킨 것이죠.


ㄴ. 책에서는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창조성, 신화를 다시 쓰다'에서는 이 사례를 빌려, 창조성이란 결코 개인이나 특정 팀만의 산물이 아니라고 주장하는데요. 실제로 시대가 필요로 하고, 기반 기술들이 개발되면 동시대에 여러 발명자들이 비슷한 아이디어들을 앞다투어 내놓습니다. 시기적으로 약간의 빠르고 느림은 있겠지만, 유사한 아이디어들이 동시대에 복수로 나타난다는 것이죠. 맥킨토시와 윈도우, 알토가 그랬던 것처럼요. 에디슨의 전구와 벨의 전화기 개발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심지어 벨과 일라이셔 그레이라는 발명가는 1876년 2월 14일, 같은 날에 같은 장소에서 전화기의 특허를 신청했을 정도죠.

 책의 저자 데이비드 버커스는 창조성이란 결국 개인의 산물이 아닌, 사회적·시대적 필요의 산물이라고 주장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비슷한 아이디어가 동시 다발적으로 나오고, 서로가 서로에게 영향을 미치며 발전한다는 것이죠.


ㄷ. 그런데 사람들은 왜?

 저 역시 이 책을 읽고 '창조성이 개인이나 특정 팀만의 산물이 아니다'라는 사실에  설득당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이 특정 개인을 '굉장히 창조적인 인물이었다, 혁신적이었다.'라고 기억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잡스나 에디슨, 아인슈타인, 미켈란젤로 등 우리는 한 사람의 천재적인 창조성을 닮고 싶어 하잖아요.

짧은 고민 끝에 제가 내린 결론은 이겁니다.

'그게 훨씬 더 멋있으니까.'

 사람들은 '이야기'나 '신화'에 반응합니다. 현실 속에서는 잘 일어나지 않을 것 같지만, 스토리 속의 주인공이 초월적인 능력을 발휘하면 거기에 매료되고 동경하죠.

에디슨이 전구를 발명하기 위해 만 번의 실패를 경험했다.
에디슨보다 먼저 백열등을 만든 사람은 24명이나 있었으며, 에디슨의 업적은 전등 발명이 아니라 전등 개량에 가깝다.

 전자는 거짓이고, 후자는 진실이지만 사람들이 더 '듣고 싶은 이야기'는 전자일 것입니다. 그게 훨씬 더 멋있으니까요.


ㄹ. 맙소사, 저 역시도 그랬습니다.

 제 직업은 '콘텐츠 제작자'입니다. 조금 더 자세히 말하면, '열정에 기름붓기'라는 이름으로 모바일에 특화된 동기부여 콘텐츠를 제작하는 스타트업을 운영하고 있죠. 제 기억에 제가 이 일을 처음 시작할 때만 해도, 페이스북에는 스토리텔링 방식의 카드 콘텐츠가 거의 없었습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저희가 시작하고 조금 뒤부터, 비슷한 방식의 '스토리 텔링 카드 콘텐츠'들이 눈에 띄게 늘어났습니다. 처음에는 그들이 우리를 따라 했다고 생각했습니다. 왜냐면, 이는 정말 우리 팀만의 연구(페이스북에서 구독자들이 긴 글을 좋아하는지, 싫어하는지 / 어떻게 해야 비교적 긴 글을 읽게 만들 수 있는지 등)와 회의를 거쳐 나온 아이디어였으니까요. 그래서 페이스북에 저희와 유사한 방식의 콘텐츠들이  늘어나는 것을 보며, '최초'라는 자부심을 갖기도 했고 때로는 베꼈다고 화를 내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지금 생각해보니, 이것 역시 제 착각이었을 수 있겠네요. 페이스북 콘텐츠가 늘어나고, 모바일에 익숙해진 사람들이 긴 글을 못 읽으며, 청년들에게 자극제가 필요해졌다는 환경의 변화가 이런 류의 콘텐츠를 필요로 한 것이죠. 그 필요를 비슷한 시기에 '감지'한 사람들이 비슷한 시도를 하기 시작했고, 서로가 서로에게 영향을 미친 것일 수도 있다는 겁니다. 실제로 저희도 비숫한 콘텐츠를 만들어 내는 경쟁자들을 보면서 자극을 받고는 했으니까요. 어쩌면 제가 '최초'라고 생각했던 이 일도 사회적 필요의 산물이었을지 모릅니다.


ㅁ. 그런데 저는 여기서 하나를 더 추가하고 싶습니다.

 '창조성은 필요의 산물이 맞지만, 그것을 완성시키는 것은 실행력이다.'

 어쨌거나 '열정에 기름붓기'는 2년 전, 비슷한 방식으로 비슷한 시기에 시작했던 페이지들보다는 앞서 있습니다.(아주 다행히도요.) 만약 그렇지 못했다면, 저는 아마 이렇게 생각했을 겁니다.

'젠장, 우리가 만들어 낸 방식을 뺏겼어.'

 어쩌면 지금도 다른 누군가가 저희를 보며 그렇게 생각하고 있을지도 모르겠네요.

 하지만 우리들의 기억 속에 알토보다 맥킨토시와 윈도우가 남아 있는 것처럼, 전구의 개발자라고 하면 에디슨이 떠오르는 것처럼 '창조적이다'라는 것은 어쩌면 '잘 실행했다, 혹은 이겼다'라는 것을 의미할지도 모릅니다.

 물론 아직도 저는 저희 팀이 '최초'였다고 믿습니다. 그게 더 멋있으니까요. 하지만 저희가 지금까지도  살아남은 이유는 최초이기 때문이 아니라, 실행력에서 조금 더 사람들의 '필요'와 부합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최초였던 것은 중요하지 않다는 거죠.

 그래서 더  긴장되네요. 여전히 우리는 더 실행력이 강한 누군가에게 질 수 있으며, 앞으로도 시대의 필요에 부합해야 하니까요.

긴 글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일주일에 딱 하루만 틀리기 위해 강해져 보겠습니다. 고까워도 좋게 생각해 주세요. :-) 이 글은 제 생각들의 배설입니다. 볼일 보는데 겸손한 사람은 없잖아요?

틀린 부분이 있다면, 다른 부분이 있다면 꼭 댓글로 달아주세요.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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