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인생 미션곡

by 위즈의 울림

내가 처음으로 사랑에 빠진 노래가 있다.

대학시절 성악을 전공하며 열심히 배웠던 많은 기술들과 내가 흘린 눈물과 땀을 담을 수 있는 졸업 공연 곡을 찾고 있었다. 그러던 중 유튜브에서 마리아 칼라스가 부른 베르디의 오페라 <라 트라비아타(La Traviata)>의 1막에서 비올레타가 부르는 연속 아리아 “이상하다. 아.. 그이 인가.. 언제나 자유롭게(E Strano… /Ah, Fors’e lui…/Sempre libera)”를 듣게 되었다. 이곡은 비올레타가 알프레도의 사랑 고백을 받은 후, 사랑에 설레서 감정이 요동치기도 하고 동시에 자유로운 쾌락의 삶에서 무엇을 선택해야 할지 갈등하는 노래이다. 그러한 감정표현을 현란한 고난이도 기교와 함께 음계로 층층이 쌓아서 초고음으로 올라간다. 마리아 칼라스의 고난이도 기교와 음 하나하나에 감정이 살아있는 노래를 듣는 내내 소름이 돋았다.


그때는 현란한 기교와 고음을 뚫는 것에 심취해 있어서 음이 화려하게 장식된 도전하기 어려운 노래에 많이 끌렸었다. 그래서 그 곡을 계속 해서 들었는데 어떤 날에는 지하철에서 울음이 터져 나왔다. 뭉클한 감정이 들면서 눈물이 터져 나왔는데 그 감정이 정확히 무엇인지 잘 모르겠지만 아마도 음악이 너무 좋아서 감정이 북받쳤던 것 같다.


졸업곡으로 그 노래를 선택하겠다는 말을 들은 지도 교수님은 ‘이곡은 너에게 너무나 어렵다. 기교뿐만이 아니라 고음은 턱도 없이 너에게 높다’고 하셨다. 내 목소리는 얇고 가벼운 소리가 아니라서 고음을 내기가 조금 더 어렵다. 내가 선택한 곡의 마지막 음은 high D#인데, 이 음정은 어지간한 노력과 연습으로는 정확하게 내기 힘든 음이다. 수년간 연습을 해야 날까 말까 한 음인데, 성악을 제대로 시작한지 4년차도 안되어서 그런 곡을 선택했으니 선생님께 당연히 거절당할 만하였다.

하지만 내가 노래에 반한 이상 포기란 없었다.


그 이후 집안 사정으로 한번 휴학한 한 기간 빼고는 계속 해서 그 곡을 2년 동안 불렀다. 대단한 집념이었다.

악보에 잘 소화가 안 되는 부분을 동그라미 치거나 별표를 쳐놓고 빈 공간에다가 매일 매일 깨닫고 느낀 점들을 적어 내려갔다. 프린트한 악보는 종이가 아니라 거의 너덜너덜한 휴지조각이 되어버렸다. 집요한 집념 때문인지 끈질기게 한곡을 2년 동안 연습하는 걸 보시고 결국은 지도 교수님도 그 곡으로 졸업연주를 할 수 있게끔 동의 해주셨다.


마지막 학기 때 오케스트라 협연의 기회가 있었다. 협연은 성악전공 중에서 1명만 연주 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지기 때문에 오디션을 봐야 했다. 나는 그 곡을 불렀고, 운이 따라서인지 치고 교수님들이 제일 높은 점수를 주셔서 학교 대표로 뽑히게 되었다.

하지만 그때까지만 해도 마지막 고음이 났다가 말았다가 해서 내 심장을 잡았다가 놨다가 했다. ‘마지막 고음이 나지 않는다면 정말 학교 망신인데 어떻게 하나’ 라는 생각을 하면서도 ‘공연 전까지만 고음이 나면 되니까 괜찮다. 할 수 있다!’ 라는 주문을 걸며 매일매일 연습을 했다. 이런 압박감 때문에 나는 아침에 눈뜨자마자 고음이 나는지 소리를 바로 질러서 어머니가 놀라기도 하셨다.


그렇게 공연 당일이 되었다. 제일 친한 친구 두명이 리허설 때부터 내 옆에서 자리를 지켜 힘이 돼주었다.

지도하시는 내내 마지막 고음이 날지 안날지 긴장하셨던 지도 교수님은 ‘기도하겠다고, 잘할 거라’고 격려해 주셨다. 나는 무슨 자신감인지 모르겠지만, 2년 동안 연습을 해서 그런지 그렇게 많이 떨리진 않았다. 고음이 열번 중에 겨우 두세번 정도 정확한 음정으로 났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그땐 무슨 자신감으로 그렇게 안 떨었는지 모르겠다.

어두운 무대 뒤에서 약간의 긴장감으로 이리저리 왔다갔다 서성거렸다. 지휘자 선생님이 ‘떨리는 게 정상이다. 떨려야 더 집중력이 올라가고 잘 부를 수 있다.’라고 응원해 주셨다. 제일 친한 친구랑 함께 선택한 전체가 반짝이는 비즈로 박혀있는 빨간 드레스를 입고 무대로 걸어 들어갔다. 수십 명의 오케스트라를 지나 지휘자 옆에 자리를 잡고 머리를 숙여 인사를 했다. 앞을 바라다보니 날 비춰주는 조명 때문에 잘 보이지 않았지만 몇백명이 되는 관객들이 느껴졌다. 어딘가에 내 가족이 그리고 지도교수님, 내 친구들, 선후배 그리고 다른 대학교의 성악전공들이 있다는 생각이 오히려 마음을 차분하게 만들어 주었다. ‘이제 내 시간이다. 정신 똑바로 차려야한다. 욕심 부리지 말고 80%만 보여주자. 모든 순간에 집중하자’라는 생각밖에 하지 않았다.


떨리는 마음을 잘 가다듬고 가사 하나에 내 마음을 가득 담아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점점 마지막으로 다가오는데, 나도 어떻게 될지 모르는 불안감은 있었지만 이젠 어쩔 수 없고 물러 설 곳도 없다고 생각을 했다. 오케스트라의 반주가 잠시 멈추고 나 혼자 고음을 냈는데, 결과는 경이로웠다. 제대로 된 피치로 고음을 낸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는데, 처음으로 완벽한 high D#이 나는 것이 아닌가.그 후에 나오는 오케스트라의 마지막 반주도 경쾌하게 흘러나오고 그 반주에 맞춰 고음을 잘 유지해서 안정적으로 노래를 마무리를 했다. 내가 부르면서도 너무 신기했고 이런 게 가능하다니, 기쁨이 넘쳤다. 오케스트라 사람들은 ‘그렇게 나지 않던 고음이 리허설 할 때마다 점점 실력이 늘고 결국엔 공연 날에 마지막에 해냈네?’ ‘어떻게 그럴 수 있지? 정말 너무 신기하다. 대단하다.’라고 칭찬을 해주었다.


공연이 끝나고 며칠 뒤 지도 교수님을 뵈러갔는데 그렇게 떨리는 음악회는 처음이었다고 하셨다. 그냥 자신이 부르는 것이 덜 떨릴 것 같다고, 두 손을 모으고 계속 기도하는 마음으로 공연을 지켜봤다고 하셨다. 굳이 묻진 않았지만 가족도, 친한 친구들도 지도 교수님처럼 손을 모으고 기도를 했을 것 같았다.

사실 이 공연이 끝나고 그 고음은 다시 잘 났나하면 그것도 아니었다. 그 뒤로 한번 씩 나다 안 났다 하다가 점차 안정이 되더니 시간이 지난 뒤에야 안정이 되었다.

결국 연주회 때의 성공은 많은 사람들이 응원해 주고 진실된 마음으로 기도해주었기 때문에 초인적인 힘이 전달되어서 가능했던 게 아닌가 싶다.


첫사랑에 빠진 노래를 선택해서 불렀던 내 인생에서 정말 중요한 연주회. 그리고 멋진 고음으로 완성해 낸 마무리. 정말 너무도 감사하고 행복한 일이었다.

그러나 돌이켜보면 그것은 결코 나 혼자만의 노력으로 이루어낸 것이 아니었다. 주위 사람들이 얼마나 날 걱정 어린 눈빛으로 지켜보고, 사랑하는 마음으로 기도하고 응원해 주었는지. 아침에 눈 뜨자마자 내지르는 소리를 감내하셨던 어머니, 연습할 때마다 옆에 자리해 주었던 제일 친한 친구 둘 그리고 고집 센 나 때문에 공연 날에도 마음 졸이셔야 했던 지도 교수님. 지금 생각하면 너무나도 감사한 분들이다. 그때는 내가 잘나서, 내 실력이 좋아서 잘한 줄 알아서, 고맙다는 인사조차도 제대로 못한 것 같다. 내가 첫사랑에 빠진 인생 미션곡을 여전히 아름다운 기억으로 남게 해준 그분들께 정말 감사하다는 인사를 드리고 싶다.


감사합니다.

고맙습니다.

그리고 사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