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국으로 보내는 노래

기억이 지워지는 할머니를 보내며

by 위즈의 울림

성악을 전공한 나는 지역 문화재단에 속해있는 예술가로 활동하고 있다. 얼마 전 재활하는 어르신들이 계신 곳으로 찾아가는 음악회가 있었다. 내가 부를 노래로 사랑에 대한 곡을 준비했는데, 김효근 시, 곡의 ‘첫사랑’과 드라마 고백부부 OST ‘바람의 노래’였다. 사랑이란 주제를 택한 이유는 사랑이라는 감정을 느끼면 어르신들이 힘이 나서 재활 치료를 잘할 수 있을 것 같아서였다.


오십 명 정도의 어르신들 앞에서 노래할 때, 할머니 할아버지께서 박수 치며 흐뭇하게 쳐다보시는 모습 사이에서 돌아가신 외할머니께서 웃고 계신 모습이 보였다. 그때 나는 살아생전 보지 못했던 외할머니의 미소를 처음 봐서 당황스럽기도 하고, 뭔가 마음이 울렁거리며 눈물이 나올 뻔하였다. 그렇지만 공연을 망칠 수 없어서 꾹 참고 끝까지 불렀다. 공연을 마치고 나서 지하철을 타고 집으로 가는 내내 외할머니의 모습이 눈앞에 아른거리며 마음을 흔들었다.


사실 나는 외할머니에 대해 좋지 못한 감정을 갖고 있었다. 외할머니가 치매로 아프시기 전, 외할머니댁이 있는 남해로 방학 때마다 놀러 갔었다. 그때 기억으로는 외할머니께서 나를 반갑게 맞이하거나 안아주신 기억이 전혀 없다. 항상 논밭에서 일을 하고 계셔서 내가 남해에서 기억하는 외할머니 모습은 일하시는 뒷모습이 다였다.


외할머니의 치매증상이 점점 심해지면서 혼자 생활하실 수 없는 상태가 되었다. 자식이 8남매였으나 다른 형제들은 외할머니의 치매증상이 중증이라 감당할 수 없다고 또는 경제적인 형편이 힘들다고 모시지 못하겠다고 하였다. 그래서 결국 어머니가 나서서 외할머니를 모셨고, 우리 집에서 함께 살게 되었다. 그때부터 집에 가면 항상 외할머니께서 소리 지르고 밥상을 던지시는 풍경이 일상이 되었다. 같은 말을 반복하시고 세상에 있는 욕을 다 하셔서 참고 견디기가 너무 힘들었다. 하지만 모든 식구들이 그런 힘든 상황을 견뎌왔기 때문에, 나까지 짐이 되면 안 된다는 생각에 힘들다는 얘기를 하지 못하고 자랐다. 그러다 딱 한 번 고등학교 때, 정말 견딜 수가 없어서 어머니께 ‘엄마, 외할머니께서 계속 욕을 반복해서 하셔서 너무 힘들어.’하고 말했다. 그때 어머니께서는 내 기분은 전혀 아랑곳하지 않고, ‘못 들은 척 해’하고 단호하게 말씀하셨다. 그 말을 들었을 때, 나는 내 마음을 전혀 몰라주는 어머니를 이해할 수 없었고, 사막 같은 세상에 나 혼자 있다는 기분이 들었다.


그 후 할머니의 치매증상이 더욱 심해지고 동생마저 아프면서 집에서 더 이상 외할머니를 모실 수 없게 되었다. 결국 외할머니를 요양병원으로 모시게 되었고, 거기서 지내시다가 돌아가시고 말았다. 그렇게 나는 외할머니에 대한 좋지 못한 감정을 정리하지 못하고 세월이 흘렀다.


어릴 때에는 미처 헤아리지 못했는데, 성인이 되면서 외할머니와 어머니가 얼마나 힘드셨을지 돌아보게 되었다. 외할머니는 팔 남매를 기르시면서 매년 수십 번의 제사를 치러야 하는 힘든 시집살이를 하셨다고 한다. 게다가 외할아버지는 너무 착하셔서 집안일은 뒷전이고, 남들 도와주는 데에만 열성이었다고 한다. 그런 이야기를 들으면서 혼자서 감당하셨을 외할머니의 고된 삶이 조금은 이해되었다. 치매에 걸린 외할머니가 시도 때도 없이 하시는 욕은 긴 세월 살아오면서 겪은 시집살이의 한이 터져 나온 게 아니었을까 싶은 생각이 들었다. 한편 어머니는 음식을 하시고 정성스럽게 차린 밥상이 날아가도, 치우고 다시 차리고를 매일 반복하셨다. 외할머니께서 거실이나 이불에 소변을 보시면 어머니는 항상 닦고 정리를 하셔야 했다. 물건을 던져 깨진 유리조각과 창문도 어머니께서 다 수습하셨다. 그리고 아직 어린 두 명의 딸까지 키우셨다. 아버지는 집안일엔 관심이 없으셔서 그런 상황을 잘 돌보지 않으시고 밖으로 많이 돌아다니셨다. 지금 생각해 보면 어머니는 친구도 별로 없으셨고, 대외 활동은 교회에 가는 것이 전부였는데, 어머니 역시 외할머니 못지않게 혼자서 힘든 삶을 견디셨던 것 같다.


재활하는 어르신들을 위한 음악회를 한다는 공고가 났을 때, 예전 같았으면 절대 신청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이번에는 고민이 되었다. ‘언제까지 과거의 상처 때문에 아파해야 할까? 언제까지 외할머니를 피해 다녀야 할까? 나도 언젠가는 할머니가 될 텐데, 그럼 나도 내 모습을 싫어하게 될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음악회에 참가 신청을 하였다. 직접 부딪혀서 앞으로의 삶으로 나아가지 못하도록 내 발목을 잡고 있는 마음의 족쇄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공연을 준비하면서 기도하는 중에 성경구절이 떠올랐다. ‘또 네 이웃을 사랑하고 네 원수를 미워하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박해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 (마태복음 5장 43,44절) 이 말씀을 붙들고 깊이 기도하였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는지 모르겠지만, 내 마음속 깊이 떠오르는 말이 있었다. ‘그들 또한 피해자다. 어느 누구도 가해자가 아니다.’ 그리고 나는 폭포수 같은 눈물을 쏟아 내었다. 눈물이 뺨을 타고 흐를 때, 내 마음에 상처를 냈던 오래된 수많은 비수들이 함께 빠져나가는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이것이 사람이 삶을 살아가는 거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의 삶이 고통의 형태로 지어진 것이다. 우리가 살아가는 삶이 너무 무겁구나. 그러나 이것 또한 정상적인 삶의 모습이구나.’ 하는 걸 깨달았다. 모두들 말을 하지 않아서 그렇지 이런저런 고통을 다 가지고 있을 것이었다. 그저 각자의 짐을 지고 묵묵하게 살아가고 있을 뿐.


어릴 때는 외할머니가 너무 싫고 무서워서 노래를 불러드리지 못하였다. 만일 그때 내가 노래를 불러드렸다면 외할머니가 기뻐하셨을까? 외할머니와의 관계가 조금은 좋아졌을까? 그리고 지금의 내 마음이 조금은 가벼워졌을까? 늦었지만 지금이라도 외할머니께 노래를 불러드려야 할 것 같다. 오롯이 외할머니만을 위한 노래를. 직접 뵙진 못하지만 내 노래가 멀리멀리 울려 퍼져 천국에 계신 외할머니께 닿기를 바라면서. 할머니, 이 손녀의 노래를 꼭 들어주셔야 해요.

죄송합니다.

그리고 사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