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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졔리 Jul 19. 2023

샤워하는 날

<불효녀 일기>

복남 씨를 돌보게 되면 무엇보다 나는 청결에 힘쓴다.

아빠는 복남 씨가 싫다고 하면 억지로 시키지 않는 편이다. 비염으로 냄새를 잘 못 맡는 아빠는 복남 씨의 체취를 감지하지 못한다. 씻기 싫다고 하면 “그래 내일 해!” 한다. 하지만 나는 그렇게 허용적이지 않다. 일단 복남 씨에게서 나는 할머니 냄새를 벗기는 데 집중한다.


가장 먼저 이를 닦게 한다.

혼자서는 서 있는 것도 휘청거리는 복남 씨라 한 손으로는 세면대를 힘껏 잡고 한 손으로 휘적거리며 이를 닦는다. 복남 씨의 칫솔질은 젓가락질만큼 서툴러졌다. 우울증 약이 원인인지, 수전증이 생긴 건지, 가늠할 수 없으나 이제 긴장하거나 젓가락질할 때 손이 위아래로 5~10센티 정도는 흔들린다. 이 닦는 것은 도와주지 않는다. 스스로 닦는 데까지 닦으라고, 최소한이라도 스스로 관리하라고, 치약을 짜주고 물컵에 물을 담아주고 옆에서 지켜본다.      


그다음은 머리 감기다.

며칠 감지 않아 기름 진 머리는 한 번의 샴푸질로 해결되지 않는다. 두 번을 감고 헹궈내야 냄새가 가시고 기름기를 떨칠 수 있다. 그렇지만 공을 들일 여유는 없다. 머리카락을 세면대로 늘어뜨리려 구부정하게 숙이면서 버티려고 세면대를 꽉 잡은 양손이 눈에 들어오고 다리가 후들후들 떨리는 것이 눈에 보인다. 복남 씨가 더 힘들지 않게, 주저앉거나 넘어지기 전에 끝내야 한다.      


그다음은 몸이다.

복남 씨는 숙인 허리를 세우고 거울을 한번 보고서는 샤워부스 쪽으로 나, 세면대, 벽을 번갈아 잡고 더듬더듬 발걸음을 뗀다. 안전하게 선 것을 확인하며 나는 샤워기 온도를 체크한다. 따뜻한 온도로 올라갈 때까지 눈이 따갑진 않은지, 더 서 있을 수 있는지, 앉아서 씻을지 물어본다.

온도가 적당해지면 복남 씨 몸에 물을 뿌리고 손에 바디워시를 묻혀 온몸을 쓰다듬는다. 피부가 건조하기에 샤워타월은 되도록 쓰지 않는다. 굳이 손으로 하는 이유가 하나 더 있는데, 복남 씨의 몸 상태를 체크하기 위해서이다. 어깨가 굽었고 많이 뭉쳐 있다. 팔에는 물렁살이 전보다 는 것 같고, 뱃살이 좀 찐 것 같다. 탄력을 잃은 허벅지에서는 근육이 거의 느껴지지 않는다. 종아리는 지난주 운동으로 조금 단단해진 것 같다. 돌쟁이만큼? 발은 5월인데도 차갑고 건조하고 붉다. 혈액순환이 여전히 안 되는 것 같다. 다 확인하면 재빨리 손과 물로, 위에서 아래로 거품을 지운다.      

화장실 입구에 있는 수건을 잡아채 수건으로 머리와 몸의 물기까지 훔친 뒤 손을 내민다. 복남 씨는 내 손목을 동아줄처럼 잡고 뒤뚱뒤뚱 몇 걸음 걷는다. 나는 못 닦은 등 부분을 마저 닦고, 한 손에 바디로션을 꾹 눌러 짜 양손으로 나눠 어깨부터 발뒤꿈치까지 바른다.


앉는 것이 시급하다. 더 서 있는 것은 복남 씨의 근육들에게 버거운 일이다. 이제 마지막 레이스인 듯, 벽과 손목을 잡고 잰걸음들로 통통 달리듯 가서 풀썩, 소파에 몸을 던진다. 아이에게 입히듯 속옷과 옷을 차례로 입히고 스킨과 로션을 가져다주고 복남 씨가 바르는 동안 머리를 빗기고 드라이기로 머리를 말려준다.


샤워는, 그러니까 일종의 점검이다. 눈으로 볼 수 없는 곳까지 복남 씨의 상태를 점검하는 일.

그리고 딸이라서 어쩔 수 없이 하는 것이 아니라, 한때 복남 씨가 내게 해줬던 것을 갚는 작은 보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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