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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졔리 Jul 21. 2023

날마다 하체데이

<불효녀 일기>

‘10바퀴 걷기 + 스트레칭 혹은 간단한 운동 + 10바퀴 걷기’


복남 씨의 운동 목록이다.

엄청난 양인 듯해 보이지만 여기 적힌 1바퀴의 정체는 4인용 식탁 1바퀴다.

식탁의자와 식탁을 잡고 다른 한 손으로는 나나 아빠의 손을 잡고, 오늘도 복남 씨는 더듬더듬 걷는다.


복남 씨가 처음부터 못 걸었던 것은 아니다. 뚜벅이로 놀러다니는 나의 씩씩함은 복남 씨를 닮았다.

복남 씨에게는 마음의 문제 말고도 크고 작은 사건이 있었다. 십여 년 전, 줄넘기를 하다가 발목이 바스러져 수술했고, 다섯 해 전에는 우리 둘째 밥상을 옮기다가 넘어져서 허리가 골절됐었다. 3년 전에는 무지외반증 수술을 해서 발이 불편해졌다. 누군가의 부축을 받으며 걷는 자신의 모습을 보이는 게 싫었던 복남 씨는 더욱 집안에만 있으려고 하게 되었다. 그렇게 다리 근육이 훅훅 빠져서 혼자 서는 것도 버거운 현재에 이르렀다.


복남 씨에게 시급한 것은 상담일까 재활일까.

재활병원을 다녀야 하는 거 아닐까, 그치만 사람 만나는 걸 힘들어할 텐데, 상담센터를 먼저 알아볼까, 그런데 걷는 것도 힘든데 주기적인 상담을 할 수 있을까? 아빠는 상담에 호응적이지 않은데, 그럼 온전히 내 몫이 될 텐데, 운전도 못하는 내가 매번 복남 씨를 모시고 다닐 수 있을까?


먼저, 재활전공자 지인에게 병원 추천을 구했다. 복남 씨의 상태를 듣더니 지금 하는 운동이 무릎에 무리가 될 수 있다며 앉아서 할 수 있는 하체운동을 알려주었다. 재활병원에 가도 지금은 그 정도밖에 할 수 없을 거라며.


복남 씨의 운동 기록이 시작되었다. (돈을 버는 책 읽기 워크숍 과제였음)

운동법과 횟수를 기록하고 복남 씨에게 얼굴과 컨디션을 노트에 적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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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탁 돌기 10바퀴

(- 표는 쇼파에 앉아서)

- 목-어깨-허리 돌리기 각 1세트씩

- 무릎 펴서 들고 있는 책 치기 10회씩

- 발 들어서 옆에 둔 책 찍기 10회씩

- 발끝 포인-플랙스 5회씩

- 허벅지 벌리기 10회

- 무릎 누르면 허벅지로 올리려고 노력하기 10회씩

식탁 돌기 10바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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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록하다 보니 복남 씨는 눈맞춤과 말을 하지 않으려 하였다. 내 손과 식탁을 잡으면서 걷는데도 허리가 점점 구부러져 몇 차례 자세를 고쳐줘야 했고, 쉬지 않고 2바퀴를 도는 것도 어려워 5초 정도는 서서 쉬었다가 걸어야 했다.


“1바퀴, 2바퀴, … 9바퀴, 마지막 한 바퀴 남았어!” 이런 세는 말들만 하다가 “복남 씨! 할 수 있어!” “복남 씨 화이팅!!”, “잘하는데?” 작은 추임새를 추가하였다. 아이들에게는 무수히 했고 타인에게도 쉽게 건네던 응원의 말을 복남 씨에게 왜 그리 아꼈을까. 회색빛이 돌던 복남 씨의 눈동자가 점점 또렷해졌다.


앉아서 하는 운동은 걷기보다는 잘했다. 무릎 펴서 다리 들기는 처음에는 10회도 겨우 했는데 점차 20회로 늘릴 정도로 거뜬히 해내고 있다. 나는 “잘하는데~” 시선을 분산시키며 책의 높이를 슬쩍 올린다.


“2바퀸가?” 이제는 내가 숫자를 잘못 세면 복남 씨는 멈춰 서서 손가락을 펴보이며 “3바퀴.”라고 정정해준다. 식탁을 돌다가 힘이 들면 “쉬었다가 할래….”라며 의견도 말한다.


그렇게 식탁을 돌고 운동의 종류를 하나씩 늘리거나, 같은 동작의 횟수를 늘리며, 복남 씨는 날마다 하체운동 중이다.

산책하는 날을 향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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