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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졔리 Jul 26. 2023

(불)효녀의 시작-1

<불효녀 일기>

외가의 빌런은 언제나 나였다.     


나는 외가에서 막내 딸의 막내 딸이다. 누가 보면 예쁨받았겠다 생각하겠지만 이름부터 알 수 있듯이 딸만 여섯인, 아들 없는 서러움을 모두 안은, 집안의 막내 딸이 복남 씨다. 그렇게 세대의 서러움 끄트머리에서 자랐다.

아들이 귀한 집안이었다. 이모들은 아들을 남편 다음으로 귀히 대접했다. 그런 집안에 오빠를 ‘너’라 부르고 엄마한테는 ‘싫어’가 디폴트인 아이, 엄마가 걱정하든 말든 내 감정이 먼저였던 아이가 나였다. 그래서 심부름을 가면 이모들에게 딱지가 앉게 들었다.

“엄마한테 잘해라.”

‘얼마나 내 흉을 봤으면 볼 때마다 저런 얘기만 하는 거야.’

그래서 더 패악을 부렸다.


“나 심부름 안 가!!!”     


그렇다. 나는 불효녀다.     


국어사전에는 효도를 ‘부모를 잘 섬기는 도리’, ‘부모를 정성껏 잘 섬기는 일’이라고 명명한다. 그러니까 ‘자식과 부모’의 일, 지극히 개인적인 가정사라는 말이다. 왜 옆에서 자꾸 효도하라고 하는 거냐고. 도대체 효도가 뭐냐고.

노모를 업은 자식의 형상을 본따서 만들었다는 그 한자어까지 영 마음에 들지 않았다. 왜 ‘효’를 강요하는 거지? 하고 싶으면 자기가 알아서 하겠지. 우러나는 마음 없이, 존경과 사랑 없이 그냥 말만 잘 들으면 그게 횬가? 속으로 불평불만을 하며 업고만 있으면 된다는 건가? 업지 않고 사랑하는 마음을 담아 손을 잡고 웃으며 같이 걸으면, 그건 효가 아닌 건가?

청개구리과여서 하라고 하면 더 삐딱해지는 마음선을 가졌다. 옆에서 등 떠미는 건 딱 질색이었다.

그래서 어미가 죽고 후회하며 무덤 옆에서 울어제끼는 것까지 닮았나 보다.     


10여 년 전 어느 여름, 교회에서 필리핀으로 아웃리치를 다녀왔다. 밤이 되어서 캐리어를 끌고 도착했는데 집에 불이 다 꺼져 있었다.

“엄마?”

해도 맞으러 나오는 이가 없었다. 안방 문을 여니 깜깜한 방 안 구석에 복남 씨가 다리를 웅크리고 앉아 있었다.

그날부터였다. 불 꺼진 마음을 헤매는 복남 씨를 돌보게 된 것이.     


복남 씨는 입을 굳게 닫았다. 왜 그런지, 어떤 마음인 건지, 무슨 일이 있었는지, 복남 씨는 말하지 않았다. 발설하면 안 된다고 누가 으름장이라도 놓은 것처럼, 뒤에서 누가 듣고 있는 것처럼 그 문제에 대해서는 입을 떼지 않았다.      


오빠는 지방 파견근무, 아빠는 일, 비교적 한가한 대학원생이자 집에 있을 수 있던 내가 복남 씨 케어와 집안일 맡게 되었다. 그렇게 복남 씨와 함께하는 24시간이 시작되었다.

처음에는 집에서 가족들을 돌보는 복남 씨의 하루가 이해되었다. 해도 티나지 않는 집안일. 머리카락은 훔치고 돌아서도 또 그 자리에 있었다. 다음 끼니가 제일 큰 고민이었고, 할 줄 아는 요리가 계란볶음밥밖에 없었지만 콩나물을 무치고 무생채를 하고 국을 끓여야 했다. 대답해주지 않는 복남 씨를 대상으로 묻는 것도 하루이틀이지… 집은 날로 적막해졌고, 해는 느슨하게 저물었다.      


분노가 차곡차곡 쌓였다. 왜 이 모든 일이 당연하게 내 몫인 거지. 아빠와 아들은 일상을 그대로 사는데, 왜 가사노동과 돌봄노동이 당연하게 나에게 배치되는 거지. 터뜨릴 데 없는 울분이 풍선처럼 부풀어지다가 종종 복남 씨 앞에서 터졌다. 그러면 복남 씨는 미안해했고 나는 복남 씨의 잘못이 아니라며, 나의 태생부터 못됨을 되뇌며 콜라를 마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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