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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riya Jul 08. 2017

세월은 흘러가고

한 학생이 기묘하게 생긴 물건을 갖고 있다. 무엇에 쓰는 것이냐고 물었더니 이것도 모르느냐는 표정이다. 외계인 영화에 나오는 로봇처럼 생긴 것이 카메라 같기도 하다. 씩 웃는 아이가 뭔가를 만지자 음악이 흘러나온다. 요즘 유행하는 물건이냐 했더니 벌써 한물간 것이라 한다. 


 우리 세대는 기계를 잘 알지 못한다. 물론 우리 때도 마이 마이나 워크맨이라는 소형 카세트 레코드도 있었고 흔하지는 않았지만 올림푸스 사에서 나오는 카메라도 대중화되어 있었긴 했다. 하지만 그런 것들은 대도시의 잘 사는 아이들이나 가질 수 있다는 생각에 탐을 낼 수도 만질 수도 없었다. 그러다 보니 기계는 자연 멀어지게 되고 잘 알 수 없는 신비한 존재가 되어버렸다. 


  벽돌만큼 커다란 휴대폰이 사라지고 진짜 손에 들고 다닐 수 있는 핸드폰이 처음 나왔을 때 남편은 자신도 갖지 못한 그것을 선물로 사 주었다. 정말 고맙고 좋아서 그 많고 많은 새로운 모델들이 들어가고 나오곤 했지만 버튼이 안 눌러질 때까지 사용했다. 스마트폰이란 것이 나오고 그야말로 스마트하게도 전화는 물론 모든 정보를 다 찾아볼 수 있을 정도로 편리했지만 018 번호를 구시대 유물처럼 갖고 있었다. 

보다 못한 남편이 공짜 폰이라고 새 폰을 바꾸어 주었다. 사용해 보니 편리하기가 이를 데가 없다. 정보를 찾아보는 거야 말할 필요도 없고 유튜브라는 곳에 들어가면 언제나 듣고 싶은 강의와 노래를 마음껏 들을 수도 있다. 그래도 기계에 대한 두려움은 여전하고 왠지 고장을 낼 것 같아 함부로 눌러보지도 못한다.


 어디 그런 일이 기계뿐이겠는가? 우리 할머니가 옛날에 큰 도시에 살고 있던 며느리 집을 다녀올 때였다. 버스를 타고 몇 시간을 달리자 차멀미가 나더란다. 마실 물도 없어서 어쩔 줄을 몰라했는데 며느리가 사준 가방을 뒤져보니 인삼이 그려진 통이 하나 있더란다. 인삼이 그려져 있으니 몸에 좋은 것임에 틀림없다고 생각한 할머니는 뚜껑을 열고 벌컥 들이키셨다 한다. 나중에 안 일이지만 그것은 샴푸였다. 

토하고 설사하고 난리를 겪고 죽다 살아난 한참 후에 “너만 알고 있어라”라고 몰래 말씀해 주신 것이다. “야야 그게 뭐하는 데 쓰는 거냐?” 하고 물어 보시 길래 머리 감는 데 사용하는 것이라 했더니 뭔 놈의 세상이 그 귀한 삼을 머리에 쳐 바르느냐며 역정을 내셨다.


 또한 최근의 일도 있다. 옆집 할머니가 들려준 이야기다. 명절이면 내려오는 손자 손녀들이 샤워를 하면서 바르는 것도 많고 사용하는 것도 많더란다. 

요즘 젊은것들은 저렇게 좋은 것들을 쓰니 피부도 매끈하고 예뻐 보일 거라는 생각에 식구들이 자고 난 후 목욕탕에 들어가 손자가 사용하다 둔 통을 열고 크림을 듬뿍 얼굴에 발랐다. 평상시에 사용하던 크림과는 달리 좀 빡빡하다는 생각은 했지만 젊은 애들 것이라 그러려니 여겼기에 찬찬히 꼼꼼히 발랐다. 

그런데 조금 있으니 얼굴이 화끈거리고 따끔거려서 급히 씻어 내긴 했지만 다음날까지 얼굴이 화끈거려서 혼이 났다는 이야기다. 다음날 넌지시 며느리에게 물어보았더니 아이들 머리에 바르는 왁스였다 나.


 시대가 너무나 급박하게 변화하다 보니 웃지 못할 이런 일들이 일어난다. 우리 입장에서야 나의 할머니 이야기도 옆집 할머니의 이야기도 시대가 다른데서 오는 재미있는 에피소드에 불과하다. 그러나 가끔씩 아이들이 하는 이야기를 못 알아들을 때 드라마에 나오는 대사들을 이해하지 못해 아이들에게 되물어 볼 때 외딴섬에 고립되어 있는 섬뜩함을 느낀다. 

앞으로 무슨 새로운 기계가 나오고 어떤 이상한 물건들이 등장할 거라 예상되기는 하지만 내 핏줄들과 대화를 나눌 수는 있을까 라는 생각이 들 때는 쓸쓸함마저 든다.

 나의 할머니가 느꼈을 괴리감을 나도 내 손자들에게서 느끼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그런 때를 대비해서 요즘 아이들이 즐겨 사용한다는 대화하는 앱이라도 깔아서 익혀두어야 하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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