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도도 Dec 03. 2019

죽은 연예인, 몇 번을 더 죽어야 하나

 걸그룹 레이디스코드가 교통사고로 사망하거나 다쳤을 때, 나는 어뷰징 팀에 있었다. 레이디스코드의 멤버는 다섯 명이었고 그 가운데 위대한탄생 첫 시즌에 출연해 이름을 알린 권리세도 있었다.


보도할만한 큰 사건이다. 교통사고로 즉사한 멤버도 있었고 생명에는 지장이 없는 멤버도 있었다. 멤버 가운데 가장 이름이 알려진 권리세가 화제였는데 11시간에 이르는 대수술을 감행해야할 정도로 중상을 입어 생사의 갈림길에 놓여 있었기 때문이다. 물론 일이 다 끝난 지금은 권리세가 안타깝게 사망했다는 것을 안다.

잔인하게 들리겠지만 이 11시간은 어뷰징 담당자에게 호재였다. 사람들이 어떤 소식을 알고 싶은지 너무나도 분명했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뭔가 진전된 정보를 언론이 제공해주기를 원했겠지만 당시 기사를 올리던 대다수의 어뷰징 담당자들에게는 그런 소식을 수집할 능력이 없었다. 관련자에게 전화를 걸 수도 없었고 아예 자리에 전화기도 없었다. 또한 사고 현장에 나갈 수도 없었으며 해당 연예인이나 가족에게 민폐를 끼칠 것을 감수하더라도 병원에 찾아갈 수 없었다. 어뷰징 담당자들은 자리를 떠나 살아있는 정보를 취재할 수 없었다.

그런 입장에서 뭘 할 수 있을까? 일단 실시간 검색어 대응이라는 취지에 맞게 뭔가 계속 기사는 생산해내야 했다. 그런데 취재는 못한다. 별 수 없이 옛 이야기를 끌어올려 이슈화해야 한다. 초반에는 위대한 탄생, 레이디스코드의 그룹 활동 등 그들의 스토리를 끌어올리라는 지시를 받았다. 특히 권리세에게 집중하라고 했다. 이유는 듣지 않아도 뻔했다. 생사의 기로에 선 걸그룹 멤버만큼 좋은 떡밥은 유래를 찾기 어려웠다.

권리세의 수술이 길어졌다. 권리세를 비롯, 사고 당시 즉사한 멤버와 경상을 입은 다른 멤버들의 이름이 실시간 급상승 검색어에서 내려오지 않았다. 어뷰징 담당자들은 타사가 올리는 연예인의 SNS 응원글을 깨작깨작 받아썼다. 응원하는 글, 해당 연예인과 레이디스코드의 인연이나 사연을 묶으면 그게 하나의 기사가 되었다. 연예인이 한두 명이 아니니 기사는 끝없이 양산할 수 있다. 직접 스타의 SNS를 모니터링하지도 않았다. 어차피 타사의 목적도 같다. 레이디스코드나 권리세라는 검색어에 걸리게끔 기사를 작성하기 때문에 우리가 할 일은 레이디스코드 또는 권리세라는 검색어를 주요 포털에서 계속 새로고침하다가 모르는 정보가 나오면 그대로 긁어붙이는 일이었다. 그제서야 해당 스타의 SNS를 확인하는 것도 아니다. 그냥 그 기사를 붙여 넣는다.

이즈음 어뷰징팀은 권리세의 사망이 기정 사실화되었다는 정보를 들었다. 병원 관계자가 권리세의 뇌를 열어보니 이미 뇌 주름이 다 펴져 있었다고 회사 고위 간부에게 제보했다고 했다. 이는 잘 풀려야 식물인간이나 뇌사로 이미 판정이 난 것이나 다름없다는 의미라고 했다. 우리는 이 이야기를 다루지 않았고 타사도 이 이야기를 다루지 않았다. 그저 혈압이 지나치게 떨어져 불가피하게 수술을 중단했다는 이야기만 앵무새처럼 반복했다. 전례에 비추어 볼 때, 이 조치가 레이디스코드에게 심리적 준비를 할 시간을 주기 위함은 아닌 것 같다. 추측으로는 정보원의 신변 문제나 기사화 이후의 부담을 우려하지 않았나 싶다.

내부에서는 권리세가 살아나기 어려우리라는 정보를 얻었지만 대외적으로는 권리세의 소생을 비는 되지 않는 희망고문 기사를 계속 써야 했다. 스타 SNS는 물론이고 이미 교통사고로 사망한 연예인들의 이야기를 쓰라는 지시를 새로 받았다. 예전 사건을 다시 기사화하는 이른바 리사이클링 기사다.

교통사고로 사망한 연예인은 그 수가 적지 않다. 과도한 스케줄로 차의 한계에 도전하는 과속을 한 연예인은 수없이 많고 그 가운데 사망한 사람도 있다. 우리의 일은 이런 문제점을 짚어 사고를 줄이자는 목소리를 내는 게 아니었다. 그저 비슷한 사례를 다시 끌어내는 일이었다. 업무 자체는 간단했다. 1년 전에 죽은 연예인, 몇 달 전에 사망한 연예인, 수 년 전에 우연한 사고를 겪은 연예인 등 케이스는 너무나 많았다. 나에게는 개그맨 두 명의 사례가 할당되었다.

그 가운데 한 명은 팀 회식 자리에서 술을 마시고 새벽에 혼자 도보로 이동하다가 무단횡단을 해 차에 치여 사망했다. 다른 한 명은 오토바이를 타고 달리다 차에 치여 사망했다. 앞선 케이스가 무단횡단이라는 명백한 과실임에 비해 후자는 시비를 가려야 하는 상황이었다. TV에 나오던 연예인이 사망했기 때문에 해당 개그맨이 사망했을 때 작성된 기사는 모두 어느 쪽 과실인지 밝히려면 시간이 걸리고 꼭 밝혀야 하며 경찰이 수사하고 있다고 마무리했다. 하지만 그에 대한 기사는 그게 마지막이었다. 꼭 밝혀야 한다는 그 이야기는 몇 달이 지나도 올라오지 않았다. 실시간 급상승 검색어에서 사건에 대한 이야기가 전부 사라지면서 언론사도 더 이상 진상에 관심을 두지 않았다. 이 사건에 대한 후속기사는 어디서도 찾아볼 수 없다. 언론에서 사람의 목숨은, 사건의 진상은 트래픽과 함께할 때만 내세우는 명분이다. 이들은 사람의 목숨보다, 사건의 진상보다 트래픽을 우선한다. 언론은 실시간 급상승 검색어에서 사라진 사람의 기사 따위는 내지 않았다.

불행히도 사망한 연예인의 친구나 가족, 연인은 우연히 그렇게 재생산된 값어치 없는 기사를 보면서 재차 마음의 상처를 입는다. 연예인 한 명이 교통사고로 죽을 때마다 이들은 도마 위에 오른다. 반면 그 기사를 통해 위로를 받는 사람은 아무도 없고 제대로 종합한 기사가 아니라 사례만 끌어 붙이다보니 겨우 잊으려는 상처를 들쑤시는 것, 그 뿐이다. 이런 기사들은 레이디스코드나 권리세 등의 실시간 급상승 검색어를 삽입해 작성해도 트래픽 순위조차 낮다. 포털의 검색어에는 걸리지만 사람들은 이미 오래 전 사망한 연예인에게 관심이 없기 때문이다. 이런 류의 리사이클링 기사는 물량 공세로 페이지뷰를 올려보겠다는 발버둥에 불과하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