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의 생일
2분만 더 지나면 또 난리가 날 테니, 빨리 들어가야 한다.
소파에 나란히 앉아 느긋하게 티브이를 시청하고 있는 두 사람을 보니, 나경은 왠지 억울한 감정이 들었다.
'어떻게 그럴 수 있을까...'
분명 어젯밤 두 사람은 아니 세 사람은 쫓고 쫓기는 관계가 아니었던가? 그런데 그것도 웃으며... 아무 일도 없던 것처럼 뻔뻔할 수가 있는 걸까?
"다녀왔습니다."
나경은 조심스레 인사를 하고 방으로 들어가려 했다.
"나경아 이리 와서 좀 앉아봐"
치가 떨리는 목소리가 나경을 불러 앉혔다.
그는 이번주 본인의 생일을 맞이하여 해외여행을 계획했고, 여행 자금을 보태라는 말을 하기 위해 불러앉힌것이었다.
그는 경제적으로 늘 넉넉하고, '부자' 소리를 듣는 비즈니스맨이지만, 나경에게서 일수돈 걷어가듯 정기적으로 돈을 걷어가는 일을 알바로 하는 사람이다. 그럴 때마다, 엄마는 눈을 찡긋하며 조금이라도 돈을 내놓으라는 신호를 주곤 한다. 패스시켜야 하는 난리통과 이런 달래기식 용돈 코스프레가 끝나면 당분간은 조용히 지낼 수 있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아는 나경은 고개를 끄덕였다.
'달램을 받아야 할 사람은 나경과 엄마인데.. 왜 저 사람이 모든 것을 다 차지하는 것일까?...'
거한 생일상을 새벽부터 대령하였더니 입꼬리가 귓불까지 찍어졌다. 초를 부는 그의 모습이 얼마나 밉상인지 저절로 미간이 찌푸려지는 걸 겨우 참았다. 공항으로 배웅 나와 그를 방콕행 비행기에 태워 보냈다.
" 살 것 같네. 방콕에서 죽어버려라. 생일날이 제삿날 되게."
"나경아 그런 말 하지 마, 그래도 누구 덕에 우리가 이렇게 멀쩡하게 밥 먹고 사는데....'
"엄마, 누구 덕에 우리가 편한 밥 한번 못 먹고사는데, 착가도 큰 착각이다 정말!"
낮 2시가 된 시각. 습관처럼 집으로 직행하는 지하철을 탔다.
아무 말 없이 작은 스크린만 보고 있다가 엄마와 나경은 동시에 눈이 마주쳤다.
"잊을 수 없는 누구 생일이군! "
나경과 엄마는 급히 공항으로 다시 발길을 돌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