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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직자라는 타이틀

현타

by 미쉘

2020년 나는 뉴질랜드에서 디자인 대학에 입학했다.

13년간의 이민자 엄마의 본캐를 잠시 수정하여, 아줌마 대학생을 자처했다.

사람들은 힘들겠다. 대단하다라고 했지만, 나에게는 더할 나위 없는 행복한 시간이었다.

나를 되찾은 것만 같았던 시간, 집이 아니라 다른 장소에서도 내 따끈한 뇌는 돌아간다는 사실을 깨달았던 시간이었다.


2024년 현재, 나는 외국인 구직자가 되었다.

뒤늦게 구직자라는 타이틀을 처음 달아본다.


한국에서는 비교적 취직에 있어서 만큼은 쉬운 길이 열렸었다.

유아교육과 마지막 학년 실습을 나간 뒤, 바로 픽업이 되었었고, 그 뒤로는 소개로 이루어진, 이력서 한 장 없어도 쉽사리 이루어졌던 취업과정이었다. 교사경력 몇 년 후 제 발로 시험을 치른다고 퇴사하고, 임용이 되고, 임용이 된 후엔 자동 발령.... 이력서와 면접은 임용고시 때뿐이었다.

그래서 사실 구직자의 마음을 잘 알지 못했다.


구직자는... 힘들다. 마음이 힘들고, 몸이 힘들다.

스트레스를 많이 받아 아무 일도 손에 잡히지 않는다.

다른 일을 하다가도 이력서를 수정하고 있으며, 티브이 보며 놀다가도 괜한 죄책감이 드는 사람.

나는 왜 이런 힘든 구직자 타이틀을 자청했을까.


구직자가 되고 싶어서 대학을 간 건 아니었다.

살림이 넉넉했었고, 남편의 일이 잘 되고 있었던 차, 나를 본 어떤 친구 말에 의하면, 시간 많은 부자 아줌마만 걸린다는 부자병, 우울증에 걸려 ( 우울증 환자 비하 하는 거 아님) 나를 찾아 떠났던 여행이라고 하면 딱 맞을까.


구직자 타이틀을 달고 힘겨워 본 적 없었던 비주류 이민자 아줌마의 신세한탄이었을까.

나도 이 사회에서 일도 하고 돈도 버는, 그런 사회구성원이 되고 싶었다. 그냥 말고 내 실력을 뽐내며


꾸역꾸역 꿈같은 일을 해냈고, 드디어 구직자 타이틀을 얻어 냈지만.. 현타가 온다.

현실은 너무 솔직하게 나를 드러내어 주고 있기 때문이다.

사실 외국에서 대학을 졸업하고 구직자라는 타이틀을 달아보는 것은, 나에게만큼은 참 대견한 일이다.

잘했다고 칭찬도 다 못했는데, 현실이 자존감을 깎아 먹는다.


매일 후회를 반복하다가 그만둔다.

왜 디자인과를 갔을까. 취업이 잘되지 않는 것 같은데...

왜 공부를 오래 한 것일까. 취업이 잘되는 공부로 일 년 코스만 하고 돈이나 벌걸...

학생 대출을 내어가며 공부한 세월 동안 카페 같은 곳에 가서 설거지라도 했더라면 대출금이 이렇게 불어나지는 않았을 텐데...


매일 아침 To Do List를 작성한다.

1. 책 읽기

2. 글쓰기

3. 운동하기

4. 부족한 디자인 실력 올리기

5. 디자인 알바 일하기 (주당 5시간짜리 알바를 계속하고 있다)

6. 아이들 간식 만들기

7. 잡 서치, 이력서 내기


매일 7번만 체크하고 있다.

7번만 하다 보면 한숨만 절로 나오고, 뱃살만 늘어난다.

하지만 구직자로서 예의를 지켜야 할 것 만 같다.


내가 직장을 빨리 잡고 싶은 이유는 사실 따로 있다.

늘 한결같이 건강할 줄만 알았던 남편이 몇 년째 힘겨워하고 있기 때문이다.

마음도 몸도 지칠 대로 지쳐서 많이 쉬고 싶어 하는 내 반쪽을 한국으로 요양 보내주고 싶다.

그는 요즘 물에 빠진 쥐새끼 마냥 힘이 없다.

내가 학교 다니면서 치료한 마음의 병, 팬데믹 이후로 받은 스트레스로 인한 후유증, 백신 후유증

경제적 압박, 시아버님 건강상태 악화소식.. 리 프레시가 필요한 직업병, 하루살이 돈벌이, 오른 대출금 이자.


자영업자인 남편은 코로나를 제대로 맞았고, 우린 빚더미에 앉았다.

아이들은 들어가기 어렵다던 좋은 준 사립학교에 다니게 되었고(당연히 안 걸릴 줄 알았음), 지출은 두 세배로 늘어났다. 아무리 힘들어도 아이들에게는 좋은 교육 환경을 제공해 주고 싶은 부모마음에서 벼랑 끝에 서있든 말든, 지출과 입금을 계산하며 돌려 막기하고 있지만, 자식교육에 목매달 하는 느낌이다. 이렇게 하는 것이 맞는 것일까?


아무튼 결론은 내가 취업을 해서 조금이라도 수익을 내는 것.. 그렇다면 모든 문제는 잘 해결된다.

그렇게 생각하니 더 조급해지는 구직자 마음...


'미쉘... 이 지역은 취업이 잘 안돼.. 6개월에서 1년은 기다려야 네가 원하는 직업을 구할 수 있을 거야. 조급해하지 말고 기다려...' 지난해... 조급해 하는 날 보고 교수가 해준말이 생각난다. 언제까지 기다려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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