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말했나? 사랑한다고!

3학년 마지막 수업을 마치며

by 옥돌의 지혜

3학년 2학기 중간고사와 수능 50일을 앞두고 고3 국어 수업을 마쳤다. 아이들에게는 12년간의 학교 생활, 또는 고등학교 3년 간의 국어 수업이 끝나는 날이다. 1, 2학년 수업 종강 날에는 다음 학년에서 또 만날 수 있다는 기대감이 있었는데 3학년 수업 종강 날에는 정말 '마지막'이라는 실감이 났다. 3월부터 9월까지 수능특강과 수능완성에 있는 문학 작품들을 모두 가르치고 배우려고 나도 아이들도 참 애썼다. 그동안에는 내 수업을 안 듣는 소수의 아이들만 신경 쓰였는데, 수업 마지막 날에는 2학기에도 눈을 반짝이며 최선을 다하는 훨씬 더 많은 아이들이 눈에 들어왔다.

마지막 문학 작품에 대한 강의를 마치고 책을 덮으며 말했다.

"애들아, 내가 그거 말했나?"

아이들은 선생님이 중간고사나 수능에 관련된 무슨 이야기를 하려나 눈이 동그래져서 쳐다본다.

"내가 너네 사랑한다고!"

장난기 섞인 나의 말에 아이들도 키득댄다.

"2학기까지 이렇게 수업 열심히 듣기 쉽지 않은데 마지막까지 노력해줘서 고마워. 1년간 너희 가르치면서 선생님 많이 행복하고 고마웠어. 우리는 수능의 결과와 상관없이 앞으로 잘 살아나갈 거야. 그렇지? 너희는 행복을 누릴 충분한 자격이 있어. 선생님이 생각날 때마다 너희 위해 기도할게."

지쳐있지만 순하고 따스한 표정으로 아이들도 나를 쳐다본다.

"이제 중간고사 마치고 수능 한 달 앞두면 쉬는 날도 많고, 떨리면서도 회피하고 싶고, 심란할 거야. 그래도 우리 수능 마쳤을 때 남는 건 뭐라고 했지? 마지막 기억. 우리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했다는 기억을 스스로에게 남겨주자. 수능 한 달 전 자으면서 궁금한 거 있으면 언제든 선생님한테 질문하고. 수능특강과 수능완성 작품 미처 다 못 본 친구는 먼저 수능 연계 작품인 이 교재부터 보고 다른 책 공부하는 거야. 알겠지?"

마지막까지 참지 못하고 잔소리를 덧붙였다. 이런 잔소리에도 고개를 끄덕이며 마음에 꼭 새기겠노라는 표정을 짓는 아이들이 있다. 그 맛에 자꾸 잔소리를 하게 된다.

처음 올해 고3 아이들을 만났을 때, 코로나 이전에 가르쳤던 고3들과는 너무 다른 면들에 놀라고 실망도 했었다. 코로나 이후 입학해서 1, 2학년 내내 학교를 매일 온 적 없는 아이들. 운동회나 소풍 따위는 가보지 못한 아이들. 짝꿍 없이 혼자 책상에 앉아 고등학교 3년을 보낸 아이들. 급식실에서도 떠들지 못하고 마스크 벗은 친구의 얼굴을 알지 못하는 아이들. 그 아이들이 안쓰럽고 이해가 되면서도, 매일 학교 오는 게 힘들다며 결석과 지각을 자주 하고, 수업 시간에도 엎드려 자거나 이어폰을 끼고 아무렇지 않은 표정으로 앉아 있고, 궂은일은 절대 안 맡으려고 하는 태도가 늘 아쉽고 못마땅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시간이 지나 보니 그 가운데서도 우리 아이들이 성장했다. 3학년 내내 오프라인 수업을 하며 제법 학교에 매일 나와 수업에 집중하는데 적응을 했고, 선생님과 친구들과 소통하는 데에도 전보다 예의를 갖추고 익숙해졌다. 자기가 맡은 일은 이제는 말하지 않아도 제법 책임감 있게 알아서 한다. 몇 달 뒤면 이 아이들이 성인으로, 어른으로 세상에 나가는구나.

내 눈에는 아직도 병아리 같은 아이들이 몇 달 뒤에는 스무 살 성인이 되어 세상을 만날 생각을 하면 괜히 물가에 아기 내놓은 것처럼 이런저런 잔소리를 더 해야 할 것 같다. 사람 조심해라, 다양한 경험을 해봐라, 부모님 말대로만 살지 마라.... 등등. 아이들에게 해주고 싶은 수없이 많은 말들 중 딱 한 가지만 골라서 말을 하자고 생각하니 이 시가 떠올랐다. 그래서 이 시를 읽어주는 것으로 내 마음을 전했다.

<애타는 가슴 하나 달랠 수 있다면>
- 에밀리 디킨슨

애타는 가슴 하나 달랠 수 있다면
내 삶은 결코 헛되지 않으리.
한 생명의 아픔 덜어줄 수 있거나,
괴로움 하나 달래 줄 수 있다면,
헐떡이는 작은 새 한 마리 도와
둥지에 다시 넣어줄 수 있다면,
내 삶은 결코 헛되지 않으리.

<If I can stop one heart from breaking>
- Emily Dickinson


If I can stop one heart from breaking
I shall not live in vain;
If I can ease one life the aching,
Or cool one pain,
Or help one fainting robin
Unto his nest again,
I shall not live in vain

"애들아, 샘이 마지막으로 너네한테 어떤 이야기를 해주고 싶을까 생각해봤는데 이 시를 읽어주고 싶었어. 우리가 대학 입시를 어찌 잘 치고 대학을 가잖아. 그러면 다 끝일 거 같은데, 또 교환학생 준비, 인턴 준비, 취업준비... 취업하면 결혼해야지, 결혼하면 아이 낳아야지, 아이 낳으면 집 사야지. 뭔가 인생에 끝없는 숙제가 펼쳐지는 기분이 들어. 그래서 나 하나만을 위해서 사는 것도 참 버겁다? 그래도 우리 살아가는 자리에서 떨어진 작은 새 한 마리 보고 지나치지 않고 둥지에 넣어주는 그런 사람 되었으면 해. 나의 작은 도움 필요한 사람에게 따듯한 마음 전해줄 수 있으면 그것으로 우리 삶은 헛되지 않은 거니까. 나중에 졸업해서 마스크 벗고 밖에서 샘 만났을 때 우리 아는 척 하기야! 그러면 샘 너무 반갑고 고마울 거 같아."

고등학교를 졸업하면 잔소리해주는 사람이 부모밖에 남지 않는다는 걸 아이들은 알까? 이제 세상의 사람들은 아이들을 어른으로 대하고, 굳이 그들에게 조언하려 들지 않는다. 그저 판단하고 평가하고 그에 따라 대우할 뿐. 우리 아이들 학교에서 받은 많은 사랑과 가르침으로 어른으로서도 거뜬히 잘 살아내기를, 소망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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