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대학 수시 접수가 끝났다.

by 옥돌의 지혜

오늘로 고3 수시 접수가 끝났다. 토요일이지만 혹시 갑자기 질문이 들어올까 봐 수시상담노트와 학교 노트북을 들고 집에서 대기했다. 다행히 소소한 질문만 있을 뿐 큰 문제없이 지나갈 수 있었다. 다음 주에도 전문대 수시 지원이 이어지지만 전문대를 지원하는 학생은 소수라서 일단 큰 고개를 넘은 기분이다. 처음 고3 담임을 맡는 3월부터 9월 수시 접수를 앞둔 2주간이 정말 힘들다는 이야기를 들어왔기에 마음의 준비를 단단히 하고 있었다. 바쁜 것도 바쁜 거지만 마음이 힘들었다.


오히려 서른 명 가까운 담임 반 아이들의 수시 상담은 9월 모의고사 성적이 나온 뒤로 더 수월했다. 여름 방학 전에는 본인의 6월 모의고사 성적을 납득하기 어려워하던 아이들도 9월 모의고사 성적을 받은 뒤로는 어느 정도 자신의 성적을 받아들이고 보다 현실적인 대학 지원을 하려고 했다. 또, 재수를 하더라도 절대 상향지원을 포기하지 못하겠다는 학생과 학부모에 대해서 나 역시 두 번째 상담에서는 힘을 빼고 그들의 의견을 존중할 수 있었다.


그보다 힘든 건 자기소개서 지도였다. 자기소개서는 올해까지만 있고 내년에는 폐지되는 제도여서 이미 많은 대학들이 올해에도 폐지했지만, 여전히 서울대, 연대, 중앙대 등 자기소개서를 요구하는 상위권 대학들이 제법 있었다. 국어 교과를 가르치기 때문에 담임반 학생들 뿐만 아니라 내 국어 수업을 듣는 학생들의 자기소개서 지도 부탁까지 받다 보니 스무 개 넘는 자소서를 많으면 다섯 번 이상 첨삭해야 했다. 예전보다 이과생들이 많아져서인지, 코로나에 글 쓰는 연습을 많이 안 해서인지 아이들의 성적과 활동에 비해 글이 엉망이었다. 첨삭이라는 게 내가 처음부터 글을 쓰는 게 아니라 아이가 써온 글 안에서 이리저리 조금씩 손 봐야 하는 과정이라 아이의 수준을 뛰어넘기가 어려웠다. 그렇다고 적당히 글을 고쳐주고 넘어가기에는 또 3년간 그 학생이 종합전형을 위해 애써온 생기부가 너무 짠했다. 특히 우리 반에 서울대를 쓰는 학생들 자기소개서는 내 자기소개서 쓰는 것보다 더 과몰입이 되어 마음이 힘들었다. 학생들도 포기하지 않고 고쳐오라는 대로 계속해서 고쳐왔다. 정답이 없기에 어디까지 노력해야 하는지 알 수 없었다. 예전에 고3 교과 교사일 때 자기소개서 지도를 한 학생이 서울대 경영에 합격한 일이 있었는데, 자꾸 그 학생 수준으로 자기소개서를 맞추려다 보니 더 오래 끌게 되었다. 요령 없는 교사와 글솜씨 없는 학생들의 콜라보로 우리는 2주간 자기소개서의 늪에 빠졌다. 어쨌든 그것도 오늘로 끝.


수시 지원 기간 동안 아이들도 자신이 갈 대학이 어느 정도 정해졌다는 사실에, 오랫동안 꿈꿔왔던 학교를 수시 6개 카드에 넣어보지도 못하고 고등학교 생활이 끝난다는 사실에, 많이 좌절하고 흔들리는 것 같았다. 어제는 종례를 하려고 반에 들어갔다가 눈이 마주친 아이에게 "괜찮아?"라고 무심하게 물어봤는데, 곧바로 아이의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해졌다. 워낙 표현 없고 무심한 반 아이들이라 많이 정이 안 들 줄 알았는데, 같이 고생하다 보니 어느새 정들어버렸는지 그런 아이들이 짠하다. 살아가며 고3보다 힘든 날들 많다지만, 아이들은 인생에서 처음 겪는 힘든 시간이라 자기들 딴에는 겪어보지 못한 제일 힘든 시간이다. 그걸 어찌 저찌 견뎌내 보려고 자기 탓했다가 세상 탓했다가 좌절했다 일어섰다 하는 모습이 기특하고도 안쓰럽다.


아이들이 예민하고 지쳐갈수록 교사가 더 단단하고 여유로워야 하는데 내가 더 예민하고 지쳐간다. 학생이 툭툭 예의 없게 말하면 나는 더 기분 나쁘게 대답이 나간다. 프로답지 않다. 수능 두 달 앞두고 나도 떨리고 쫄린다. 내 수능 볼 때는 수능이 기다려졌는데, 거 참 인생 알 수 없다. 더 많이 기도해야지. 아이들에게 괜찮다고, 내가 옆에 있다고, 기도하고 있다고 매일 위안과 용기를 줄 수 있는 어른이 되어야지.


이 와중에 졸업생이 찾아왔다. 바라던 대학과 전공이 분명했던 학생인데 기대와 다른 대학과 전공을 하게 돼서 내심 마음에 걸렸던 학생이다. 담임을 할 때는 특별히 나를 찾아와 살갑게 말 붙인 적 한 번도 없는 학생이었는데 졸업 후 종종 찾아오는 게 신기하다. 이번에는 찾아와서 이 대학의 이 전공을 하게 돼서 참 운이 좋았다고 말한다. 좋은 교수님 만나 공부하는 게 재미있다고 한다. 그래. 너희에게는 또 행복을 찾아가는 힘이 있지. 위로가 된다.


최근에 학생들에게 한국계 최초로 수학 필즈상을 받은 허준이 교수님이 서울대 축사 영상을 보여주었다. 그 영상에서 시인보다 더 멋지게 말하는 수학자에 대한 감탄도 있었지만, 허준이 교수님을 바라보던 은사님의 흐뭇한 표정이 정말 인상 깊었다. 교육자의 보람은 어디에 있나. 청출어람. 나보다 더 나은 제자를 배출했을 때 있다. 나보다 더 멋지고 더 행복하게 살아갈 내 학생들. 나보다 훨씬 더 탐구력이 깊고, 자신이 원하는 것에 대해 일찍부터 생각하며, 국제 감각을 지닌 아이들. 그 아이들이 펼쳐나갈 미래에 내가 살아갈 것이 기대가 된다. 진심으로. 수능 따위가 그 아이들이 지난할 테지만 찬란할 미래를 어찌 가로막겠는가.

이전 13화수업시간에 이어폰 끼고 인강 듣는 너에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