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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옥돌의 지혜 Feb 07. 2021

학교에서의 말하기 교육에 대하여(1)

나는 왜 말하기 교육에 관심을 갖게 되었을까

  고등학교 국어 첫 수업에서 나는 아이들에게 앞으로 우리가 수업 시간에 배울 국어는 '문학, 비문학, 화법과 작문'의 영역으로 나뉜다고 가르친다. 어느 것 하나 더 중요하고 덜 중요한 것 없이 우리가 살아가며 자기 자신, 타인, 그리고 사회 및 세계와 온전히 소통하고 행복하게 살아가기 위해 꼭 공부가 필요한 영역들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실제 고등학교에서 이루어지는 수업은 '문학> 비문학>> 작문>>>>> 화법'의 비중으로 이루어진다. 이것은 일단 수능 국어와 깊은 관련이 있다고 생각한다. 수능 국어에서 화법 문제는 모두가 납득할만한 쉬운 수준에서 출제된다. 그래서 학생들이나 교사들이 특별히 화법 공부에 애쓰지 않는 부분도 있다. 수능이나 고등학교 교육과정에서 말하기 교육이 경시되는 가장 큰 이유는 '평가가 어렵다는 점'이라고 생각한다. 말하기를 평가하는 기준에 '유창성, 눈을 마주치며 당당하게 말하는 태도, 시간 내로 전달하는 것, 간결하고 구조적인 내용 등'이 있다. 하지만 판단이 상당히 주관적이라서 평가 결과에 대해 학생들이 쉽게 수긍하지 않는다. 나 역시 말하기 평가를 할 때 감점을 주는 요인은 거의 '시간제한, 대본 보지 않기'를 지키는 정도이다. (물론 평가 기준을 까다롭게 하지 않아야 아이들이 대중 앞에서 말하는 경험을 통해 자신감을 얻는 이유도 있다.) 하지만 평가가 쉽지 않은 것은 '글쓰기'도 마찬가지인데 그렇다면 왜 '말하기 교육'은 '쓰기 교육'보다 더 교육 현장에서 무관심하게 여겨질까. 나는 우리 사회의 문화도 한몫한다고 생각한다. 글을 잘 쓰는 사람은 동경하지만 말을 잘하는 사람은 그저 말재주를 타고났다고 본다. 또한 말을 유창하게 잘하는 사람을 속 빈 강정 취급하며 다소 경계하는 분위기도 있다. 그리고 말은 따로 가르치지 않아도 의사소통만 된다면 큰 상관이 없다고 여기는 듯하다.  

  나는 읽고 쓰고 말하는 것을 모두 즐기는 사람이다. 그래서 국어교육 석사 논문 주제를 선택할 때 고민스러웠다. '현대시 읽기'도 더 연구하고 싶고, '치유적 글쓰기'에 대해서도 탐구하고 싶고, '말하기 교육'에 대해서도 알아보고 싶은데 어떤 것을 선택하나. 물론 최종 결정에 영향을 미친 여러 요인이 있었지만 가장 크게 작용한 것은 '지금 학교 현장에서 가장 필요한 교육이 무엇인가'였다. 현대시나 작문에 대한 논문도 쏟아지고, 현장에서 문학 교육과 쓰기 교육은 활성화되어 있는 것 같은데 말하기 교육은 아직도 저 구석에서 아무 관심을 받지 못하는 것 같았다. 그래서 나는 '화법 교육'을 논문의 주제로 선택했다. (석사논문은 교사 임용시험을 준비하며 썼던 터라 간신히 통과될 만큼의 엉성한 수준으로 완성해 지금도 나의 부끄러움이다.)

  말하기 교육에 내가 관심을 갖게 된 데에는 여러 계기가 있었다. 우선 나는 고등학생 때 전국 말하기 대회에서 수상을 한 경험이 있었다. 그 대회 전에 나는 그저 친구들과 수다 떠는 것을 좋아하고 반장이 되어 앞에 나가 말하는 것에 은근한 뿌듯함을 느끼는 평범한 학생이었다. 좀 다른 게 있었다면 가정에서 부모님이 매일 저녁 모여 이야기 나누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하셔서, 내 생각을 남에게 말하는 것에 별로 거리낌이나 어려움이 없었던 정도였다. 아, 한 가지 더 보태자면 다섯 살에 웅변학원 겸 유치원을 다니면서 다른 사람 앞에 나가 말하는 것(외치는 것)을 즐겼던 경험도 있었다. 아무튼 말하기 대회 전에는 내가 특별히 말을 잘한다고 느꼈던 적이 한 번도 없었다. 그런데 고2 담임선생님이 어느 날 어떤 주제로 글을 써오라고 하셨다. 당시 편집부였던 나는 글쓰기 대회에 원고를 내는 건가 보다 하고 써서 드렸는데 선생님은 내 동의 없이 말하기 대회에 원고를 제출하셨다. 그리고 원고가 통과되었으니 대회에 나가라고 하셨다. 얼떨결에 떠밀려 나간 대회에서 처음에는 교내 말하기 대회에서 1등을 하고, 그다음 구 대회에서 1등을 하고, 그다음은 시 대회에서 수상을 하게 되었다. 수 백명의 사람들 앞에서 내가 준비한 말하기를 하는데 처음으로 1등이라는 등수를 받으니 얼떨떨했다. 선생님은 나에게 '너는 네가 생각하는 것보다 더 큰 사람이다. 네 뒤에 날개가 있는데 왜 너만 못 보고 있다.'라며 무조건적인 신뢰와 격려를 보내주셨다. 말하기 대회 수상은 단순히 '내가 생각보다 말하기에 재능이 좀 있나 보다'라고 뿌듯하고 마는 정도가 아니라 '어쩌면 나는 더 무궁무진한 잠재력을 가진 사람일 수도 있다'는 커다란 희망이 되었다. 그 마음이 고2 때부터 본격적으로 공부에 매진할 수 있는 커다란 동기부여가 되었다. 나의 이 경험을 통해 나는 다른 사람들 앞에서 당당하게 나의 이야기를 말할 수 있는 능력과 경험이 한 사람의 자존감에 깊은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믿게 되었다. 

  그렇게 나는 대학에 갔다. 대학을 가니 거의 모든 수업이 조모임과 발표로 이루어졌다. 나는 발표에 큰 어려움이 없는 사람이었으므로 보통 조장을 맡아 발표를 했다. 그런데 그때 굉장히 놀란 사실이 있었다. 이렇게 우수한 성적으로 대학에 입학한 내 동기들 중에는 발표 전에 청심환을 먹거나, 발표 내내 원고에서 눈을 떼지 못하거나, 목소리가 덜덜 떨려서 내용이 전달되지 않을 정도로 다른 사람들 앞에 서서 말하는 것을 두려워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이었다. 물론 남들 앞에서 말하는 것이 어느 정도 긴장되는 일이지만 이토록 스트레스를 받는 사람이 있을 거라고 생각을 못했다. 당시 1학년인 나는 가입할 동아리를 찾다가 토론동아리에 면접을 보았다. 전국 대학 토론 대회에서 매번 우승하는 동아리라고 하니 그곳에 들어가면 어디서도 지지 않을 말의 기술을 배울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최종 합격을 앞두고 엄마에게 동아리에 대해 말을 했는데, 엄마는 내가 토론동아리에 들어가는 것을 만류하셨다. 사람의 말에 깊이가 있는 게 중요하지 말발만 번지르르한 것이 오히려 해가 될 것 같다고 하셨다. 순간 내가 토론동아리에 들어가고 싶었던 속마음을 들킨 것만 같았다. 결국 나는 동아리에 들어가지 않고 대학을 졸업할 때까지 교육봉사를 하는 것으로 대신했다. 토론동아리에 들어가지는 못했지만 정식으로 말하기에 대해 배워보고 싶었다. 조금만 더 다듬으면 나의 말하기가 보다 큰 재능이 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때 발견한 것이 대학에서 진행하는 '말하기와 토론'이라는 수업이었다. 그 수업은 내 대학생활을 통틀어 만족도가 가장 높은 수업 중 하나였다. 상황에 따라 어떻게 말하는 것이 좋은지 구체적인 방법을 배우고 사람들 앞에서 말하기 실연을 해볼 수 있었다. 수업에 반해버린 나는 내 동기들에게 적극적으로 수업을 소개했다. 놀랍게도 그 수업을 계기로 내 동기들은 말하기 공포증에서 상당히 벗어날 수 있었다. 나의 가장 친한 동기는 그 수업을 계기로 말하기에 자신감을 갖게 되었다고 말하며 지금은 교육청에서 연수하는 교사가 되었다. 말하기가 이토록 한 사람의 삶에 영향을 준다는 것이 놀라웠다. 그리고 성인이 되어보니 자신감 있게 상황에 따라 말할 수 있는 능력이 어쩌면 성적보다 더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왜냐하면 나는 면접이 있는 전형에서는 꼭 붙었기 때문이다. 대학원생 때 말하기 수업 교수님의 조교가 되어 말하기 수업을 참관하며 이런 수업이 고등학교에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했다. 교사가 된다면 꼭 학생들의 말하기를 돕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다. 그리고 나는 교사가 되어 내가 할 수 있는 말하기 교육을 조금씩 시도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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