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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옥돌의 지혜 Feb 07. 2021

학교에서의 말하기 교육에 대하여(2)

내가 고등학교에서 시도하고 있는 말하기 교육

  교사가 된 나는 우선 내가 담임과 국어 교사로서 학교에서 할 수 있는 말하기 교육을 조금씩 시도해보기로 했다. 물론 요즘은 일방적인 강의식 수업보다 학생들의 발표와 토론으로 이루어지는 수업 방식이 늘고 있고, 학생들도 자기표현을 하는 것에 점점 더 적극적이고 익숙해져 가는 세대이다. 하지만 여전해 대부분의 말하기 기회들이 학급 임원이 아니면 끼가 많고 적극적인 아이들에게 돌아가고 있었다. 말하기가 두려운 소심한 아이들은 한 번도 앞에 나와 말하는 경험 없이 성인이 되기도 하는 것이다. 지난 3년간 내가 시도한 말하기 교육들은 이런 모습이었다.

  첫째,  우리 반 아이들은 1년 동안 돌아가며 아침마다 3분 말하기를 한다. '자기소개-자신을 소개할 수 있는 그 어떤 것'도 좋고, '친구들에게 꼭 전해주고 싶은 메시지'도 좋다. 기왕이면 생기부에 녹일 수 있도록 하고 싶은 것이나 좋아하는 것에 대해 언급하면 좋을 것 같다고 추천한다. 처음 말할 때는 어색하게 시작하지만 그 3분을 통해 미처 알지 못했던 한 아이의 면모에 대해 모두가 알게 된다. 우선은 자신에게 '익숙한 청자'인 같은 반 아이들 앞에서 말하고 또 '자기가 가장 잘 아는 주제'인 스스로에 대해 말하기 때문에 평소 말하기에 자신 없어하는 아이들도 너무 힘들지 않게 말하기를 한다. 3분 말하기가 끝나면 이 아이의 말하기에 대해 다른 학생이 평가하게 한다. 좋았던 점 하나와 아쉬웠던 점 하나를 꼭 말하게 한다. 보통 같은 스피치를 들었을 때 모두가 느끼는 점이 비슷하기 때문에 친구가 해주는 피드백은 말하는 학생에게도 실제적인 도움이 될 뿐 아니라 피드백을 해줘야 하기 때문에 앞에 나와 말하는 친구의 말을 더 열심히 듣는다. 특히 이때 중요한 것은 많이 떨거나 대본을 그냥 읽는 학생에 대해서도 담담하게 격려하는 것이다. "많이 떨리는데도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읽는 태도가 정말 용기 있었어. 다음에는 더 편하게 할 수 있게 될 거야"와 같은 말을 하거나 많이 떨었다는 사실을 아예 언급하지 않고 "네가 말한 말 중에 그 말은 정말 선생님도 공감되더라"와 같은 긍정적인 피드백을 주면 이미 많이 주눅 들어 있는 학생들은 큰 위안을 얻는다. 실제 교원평가 때 이 말하기 피드백에 격려받은 경험에 대해 쓴 아이들이 꽤 많다. 담임인 나는 아이들 생기부에 '발표, 자기 주도성, 말하기 능력, 학생의 특성'에 대해 보다 꼼꼼하게 적을 수 있어서 좋고, 반 아이들끼리는 서로를 이해하는 계기가 되어 좋고, 무엇보다 모든 아이들이 학창 시절에 한 번은 여러 사람 앞에서 말하기를 한 경험을 쌓을 수 있어서 좋다고 생각한다. 

  둘째, 국어 수업 5분 도입 시간을 자원하는 학생들에 한해서 기회를 준다. 1학기 때는 교사인 내가 좋아하는 문학이나 노랫말로 수업 5분 도입을 연다. 아이들은 그 시간을 무척 좋아하면서도 동시에 '아, 나도 진짜 아끼는 구절 하나 있는데, 나도 정말 좋아하는 보석 같은 노랫말 아는데'하는 생각을 한다(귀엽게도 얼굴에 쓰여있다). 1학기를 처음 시작하면서부터 말을 해둔다. "1학기엔 샘이 좋아하는 말들로 5분 수업 도입을 할 건데, 2학기에 원하는 사람이 있으면 그 사람에게 기회를 줄게. 없으면 샘이 하고 싶은 것도 엄청 많으니 샘이 할 거야. 참고로 학기말 시험 끝나고 선착순으로 신청받는다." 그러면 1학기 내내 벼르던 아이들이 학기말에 정말 '달려와서' 자원을 한다. 별로 어려운 자료 조사를 하는 것도 아니고 자기가 좋아하는 것을 친구들에게 널리 알릴 수 있다는 생각에 너도 나도 하고 싶어 한다. 솔직히 선착순이라고 해놓고 자원한 사람은 다 받아준다. 5분 도입이 마지막엔 50분 도입이 되기도 한다. 이 경험을 통해서 나는 아이들이 '내가 하고 싶은 말을 사람들 앞에서 전달했을 때의 기쁨'을 느껴봤으면 좋겠다. 또한 '남들 앞에서 말하는 게 생각보다 별거 아니네'라는 자신감을 얻었으면 좋겠다. 

셋째, 국어 수업 시간에 본격적인 자료 조사 발표를 시킨다. 예를 들어 학생들에게 낯선 시인의 삶을 발표하게 하거나, 교과서에서 일부만 수록된 장편소설을 전부 다 읽고 전체 스토리를 요약 발표하게 하거나, 비문학의 어려운 주제에 대해 뉴스나 자료 조사를 해 설명하게 하는 등이다.  솔직하게 교사인 내 입장에서 수업 때 5분 가까이의 별도의 시간을 학생에게 내주는 게 수업의 흐름이 끊기고 늘어진다는 점에서 썩 반가운 일은 아니다. 그리고 각반 아이들의 발표 수준이 천차만별이기 때문에 결국은 내가 준비한 내용을 다시 한번 정리해 준다는 점에서 오히려 번거로운 일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수업 계획을 짜면서 항상 학생에게 줄 발표 거리가 없나 늘 유심히 살펴보는 이유는 이 또한 아이들에게 소중한 말하기 기회가 되기 때문이다. 대학에서의 조모임을 통한 수업 발표가 이와 별다르지 않다는 것을 미리 경험시켜주고 싶다. 

넷째, 나는 교내 '말하기 동아리'를 만들어서 운영한다. 이 동아리는 내가 대학 때 들은 말하기와 토론 수업의 작은 모형이다. 일 년 동안 '자기 소개하기, 설득적 말하기, 정보를 제공하는 말하기' 등 여러 상황의 말하기 기술과 방법에 대해 소개하고 학생들에게 돌아가며 말하기를 시연하게 한다. 그리고 서로 피드백을 주고 평가한다. 그런데 뭐가 문제인지 내 뜻처럼 동아리가 활기차게 운영 되지를 않는다. 일단은 교사 주도형의 동아리인 게 문제인듯하다. 학생들의 태도가 수동적이다. 또한 대학 수업은 학점을 따야 하는 동기부여가 있는데 동아리는 평가 시간이 아니다 보니 학생들이 생각보다 성의 없이 참여한다. 그러다 보니 일 년간 말하기 연습을 대여섯 번은 하는데도 말하기 태도나 실력이 크게 나아지지 않는다. 그리고 여고 1, 2학년들이 함께 모여 있으니 특히 1학년이 2학년을 평가하는 것을 다소 부담스럽게 여기고 어려워한다. 복직 전에 다른 학교는 말하기 동아리가 있다면 어떻게 운영하는지 알아봐야겠다. 그리고 가능하면 이 동아리를 학생들 주도의 말하기와 토론 동아리로 키우고 싶다. 

다섯째, 이것은 내 희망사항인데 '교내 말하기 대회'를 기획하고 싶다. 요즘 학생들의 '꿈'과 '끼'를 살리고자 하는 교육 트렌드로 학교마다 축제나 동아리 발표회, 장기자랑 같은 기회가 많이 있다. 하지만 자신의 말하기 능력을 선보이고 평가받을 수 있는 기회는 전교회장 선거 외에는 수업 시간 발표 정도가 전부이다. 우리 학교도 독서 대회, 논술 대회, 백일장 등 다양한 국어과 대회가 있는데 아직 말하기 대회가 없다. 학교에 말하기 대회가 있으면 학생들도 '말하기를 잘하면 좋은 것'이라고 생각하고 더 나은 말하기를 위해 노력할 것이다. 당장 올해 복직 후 업무 분장에는 독서 대회 담당이던데 부디 나의 체력과 의지가 힘을 내어서 말하기 대회도 정착시키고 싶다.

  아마 알아보면 학교 내에서 말하기 교육에 더 힘쓸 수 있는 여러 방법이 있을 듯하다. 교사로서 공부하고 알아가고 싶은 것들이 너무 많다. 어쨌든 나는 우리 학생들이 사회에 나가서 어디서든 자신 있게 자기표현을 하는 사람들로 살아가면 좋겠다. 말하기가 두려워서 기회를 놓치는 것이 아니라 말하기에 자신이 있어서 기회를 얻었으면 좋겠다. 고등학교에서의 말하기 경험이 살아가는데 큰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다. 또한 내가 글에 쓴 현재 학교 현장에서 애쓰고 있는 말하기 교육은 다수의 대중 앞에서 말하는 공적 말하기에 치우쳐 있지만, 더 나아가 아이들이 가장 가까운 사람과의 편한 대화에서도 자기답고도 예의를 지키는 말하기를 할 수 있기를 바란다. 사실 가장 어려운 말하기는 그런 말하기라고 생각한다. 교사의 수준이 교육의 수준이라는 말을 좋아한다. 내가 말하기 교육을 공부하고 애쓰는 교사이기에 나의 학생들이 보다 더 양질의 말하기를 누리며 살아가게 된다면 더 바랄 것이 없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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