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밤, 내가 사랑하는 작가들을 생각한다

윤동주, <별 헤는 밤>

by 옥돌의 지혜

책을 읽다가 저자가 김연수의 <청춘의 문장들>이라는 책을 좋아한다는 구절을 보았다. 순간, '엇, 나도인데'라는 반가운 마음이 들었다. 김연수를 생각하니 마음이 몽글몽글해진다. 나의 이십대, 내가 참 많이도 아끼고 애정했던 작가. 김연수를 생각하니 또 내가 좋아하는 작가들이 하나 둘 떠오른다. 서재로 가서 소장하고 있는 책들의 목록을 보았다. 나는 쉽게 싫증을 내는 사람이라 한 번 읽은 책을 두 번 읽는 일은 잘 없다. 하지만 두 번 읽고도 다음에 또 읽고 싶다는 마음이 들 때면 책을 사서 소장한다. 내가 소장하는 책들은 대체로 같은 작가의 책들이다. 소설가 김연수, 이창준, 수필가 장영희, 피천득, 시인 백석, 윤동주, 기형도 그리고 이재철 목사님 등이다. 각 작가들에게 매료되어 빠져들었던 시기들이 있던 만큼 그 작가를 생각하면 떠오르는 감정들이 있다. 그 작가의 글들을 사랑하던 때의 내가 애틋해서 더욱 작가에게 애착을 갖는지도 모르겠다.


대학시절엔 김연수의 문체가 참 좋았다. 단편소설 <세계의 끝 여자친구>를 읽을 때는 문장 하나하나 흘려 읽지 않고 음미하려고 했다. 그가 쓴 에세이들도 내 마음에 꼬옥 맞아서 김연수 작가를 꼭 한 번쯤 직접 만나고 싶다는 로망을 간직하고 있다. 특히 그의 에세이 <청춘의 문장들>은 대학시절 나에게 큰 힘이 되었다. 지금도 학생들에게 그 책의 문장들을 읽어주곤 하는데 학생들도 무척 좋아한다.


이창준의 소설들은 대학 과제로 거의 다 읽었는데 나는 이청준을 '천재'라고 생각했다. 내가 읽은 어떤 소설보다 몰입감이 뛰어났다. 이창준 소설은 그에 대한 논문들을 찾아 읽고 토론하는 것조차 흥미롭게 느껴졌었다. 사실 대학시절 제일 자주 접했던 것은 이상의 글들이었지만 이상에게 빠져 지냈던 적은 없는 것 같아 이창준을 더 소중히 여긴다.


장영희의 에세이들은 나에게 처음으로 '나도 글을 쓰고 싶다'는 마음을 준 애틋한 작품들이다. 쉽게 읽히지만 따듯하고 마음에 깊은 울림을 준다. 열아홉 수험생 시절부터 장영희의 모든 에세이들을 아껴가며 반복해 읽었다. 주변 사람들과 제자들에게 가장 많이 선물한 책도 장영희의 <문학의 숲을 거닐다>이다. 학부와 석사 과정의 글쓰기 수업에서 모델로 삼았던 것도 장영희의 에세이였다. 그녀의 글처럼 향기가 나는 글을 쓰고 싶다. 언젠가 꼭 뵐 수 있을거라 막연히 기대했는데 생각보다 이른 나이에 돌아가셔서 다시는 그분을 만날 수도, 그분의 새로운 글을 만날 수도 없다는 것이 큰 아쉬움이다.


피천득의 수필을 읽으며 수필의 아름다움을 처음 느꼈다. 피천득의 <인연>을 읽은 후 수필을 애정하게 되었다. 모네의 그림을 보며 아름답다고 느끼고 마음이 정화되듯, 그의 글을 읽으면 내 마음이 한없이 맑아지는 기분이 든다. 언젠가 필사하고 싶은 글들이다.


그리고 백석. 내 학생들은 다 안다. 내가 가장 사랑하는 시인을. 백석 수업을 할 때마다 나는 이 감탄스러운 시인을 누구한테 알릴 수 있다는 기쁨에 설레며 정성스레 가르친다. 평소와 다른 나의 예찬적 태도에 학생들은 웃는다. 그럴 때 백석의 젊은 시절 사진을 보여주면 모두 수긍한다. 외면도 아름다운 사람이 이토록 아름다운 감성의 시를 남겼다. 백석과 관련된 시라면 다 읽고, 시집과 평전도 사고, 백석 생애를 다룬 연극도 보러가고, 백석 굿즈도 산다. 대학시절 나는 나만 백석을 이토록 사랑하는 줄 알았는데, 언젠가 '한국 시인들이 가장 사랑하는 시인 1위'로 꼽힌 뉴스를 보고 나만의 연예인을 빼앗긴 기분이 들었다. 내 인생을 통틀어 나를 가장 깊이 위로하고 감동케 하는 백석의 시. 그 중 <남신의주 유동 박시봉방>을 가장 애정한다.


윤동주 역시 내가 애정하는 시인이다. 모든 한국인이 사랑하는 시인이기도 하지만. 그의 시는 쉽지만 쉽지 않다. 표현과 이해는 어렵지 않은데, 시에 담겨 있는 시인의 마음은 높다. 윤동주의 생애와 그의 시세계를 아낀다.


기형도의 시도 무척 동경한다. '대학시절', '질투는 나의 힘', '빈집' 등. 그의 시를 읽으며 때로 이 시들이 없었다면 내 마음은 누가 대신 말해줄 수 있었을까 생각하며 안도하곤 했다. 천재는 요절한다는 사실이 안타깝다.


끝으로 이재철 목사님의 신앙 서적들도 다 읽으려고 노력하는 편이다. 직설적이고 올바르며 겸손한 목사님의 신앙을 존경한다. 목사님의 글들을 통해 자주 신앙의 자극을 받고 마음을 동여매게 된다.


이 외에서 천상병, 허수경, 황인숙 등의 시들, 필립 얀시, C.S.루이스 등의 신앙서들, 작가 이름만 보고 무조건 집어드는 책들은 더 많다. 믿고 읽을 수 있는 작가들이 있어 행복하다. 내 삶에 읽는 기쁨과 쓰는 즐거움이 있어 얼마나 다행스럽고 감사한지. 마음이 부자가 된 기분이 드는 밤이다. 조금 더 실컷 읽고 마음껏 쓸 수 있는 삶을 살고 싶다. 그리고 나의 이 기쁨을 내가 가르치는 학생들과 조금이라도 나누고 싶다.


윤동주의 이 시를 읽으면, 윤동주 또한 나처럼 사랑하는 작가들을 헤아리던 밤이 있었구나 싶다. 윤동주만큼 위대한 문학인은 되지 못할지라도 그와 같은 고결한 삶은 살지 못할지라도 그와 아주 조금은 비슷한 결의 마음으로 이 밤을 보낼 수 있음에 감사하다.


계절이 지나가는 하늘에는
가을로 가득 차 있습니다.
나는 아무 걱정도 없이
가을 속의 별들을 다 헬 듯합니다.

가슴 속에 하나 둘 새겨지는 별을
이제 다 못 헤는 것은
쉬이 아침이 오는 까닭이요
내일 밤이 남은 까닭이요
아직 나의 청춘이 다 하지 않은 까닭입니다.
별 하나에 추억과
별 하나에 사랑과
별 하나에 쓸쓸함과
별 하나에 동경과
별 하나에 시와
별 하나에 어머니, 어머니,

어머님, 나는 별 하나에 아름다운 말 한마디씩 불러 봅니다. 소학교 때 책상을 같이 했던 아이들의 이름과 패, 경, 옥, 이런 이국 소녀들의 이름과, 벌써 아기 어머니된 계집애들의 이름과, 가난한 이웃 사람들의 이름과, 비둘기, 강아지, 토끼, 노새, 노루, '프랑시스 잠', '라이너 마리아 릴케' 이런 시인의 이름을 불러 봅니다.

이네들은 너무나 멀리 있습니다.
별이 아스라이 멀 듯이.

어머님,
그리고 당신은 멀리 북간도에 계십니다.
나는 무엇인지 그리워
이 많은 별빛이 내린 언덕 위에
내 이름자를 써 보고
흙으로 덮어 버리었습니다.

딴은 밤을 새워 우는 벌레는
부끄러운 이름을 슬퍼하는 까닭입니다.

그러나 겨울이 지나고 나의 별에도 봄이 오면
무덤 위에 파란 잔디가 피어나듯이
내 이름자 묻힌 언덕 우에도
자랑처럼 풀이 무성할거외다

-윤동주, <별 헤는 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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