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현종, <방문객>
일하면서 아이 키울 때는 하루하루 살아내기에 바빠 내 관계에 대해 오래 생각할 시간이 없었다. 휴직을 하고 시간이 생기니 비로소 나의 주변 관계들을 돌아보게 된다. 그간 모든 관계의 순간에 충실했다고 생각하며 지나왔는데, 나도 모르게 이미 멀어져 버린 관계와 가까워진 관계들이 있었다. 희미하게 느끼고 있었을 뿐 분명하게 인지하지 못했었다. 그러나 나 매일 누군가와 멀어져 가거나, 만나거나, 새로 사귀는 중이었다.
요즘 멀어져 버린 관계들에 대해 자꾸 생각이 나고 종종 그 관계가 그립다. 그렇다. 그 '사람'이 그립다기보다는 그때 좋았던 그 '관계'가 그립다. 누군가와 멀어질 때 나는 서로의 한 번의 실수나 오해로 멀어지기보다는 그 사람과 만나는 즐거움보다 괴로움이 더 커져가는 시간이 오래되면 어떤 '결심'에 의해 멀어지는 것 같다. 그런데 그렇게 해서 사람을 마음에서 내보내고 나니 그 사람이 차지하고 있던 관계의 자리가 덩그러니 남아있다. 어떤 관계는 나를 무장해제시켰다. 남편과 가도 어색한 노래방을 그 관계 속에서는 언제든 노래방에서 춤까지 추며 놀 수 있었다. 어떤 관계는 일상의 아주 소소한 안부들도 나눌 수 있었다. 이유 없이 연락해도 무색하지 않아 나를 외롭지 않게 했다. 어떤 관계는 끊임없는 유쾌한 농담으로 나를 웃게 만들었다. 그런데 이제 내 삶에는 그 관계들이 부재한다. 그래서 나는 더 이상 노래방에 가도 흥이 나지 않고, 일상의 소소한 안부를 혼자 삼키며, 라디오의 재미있는 사연을 들으면서 웃는다. 가까운 사람이 떠나가면 새로이 사귀는 사람이 생기는 건 맞는데, 떠나간 사람이 차지했던 고유한 관계를 누군가가 채우는 것은 쉽지 않은 것 같다. 그래서 누군가와 멀어질 때도 최선을 다해 예의 있게 헤어져야 하나보다. 한 때 나에게 큰 행복과 의미를 준 관계였음에 대한 감사와 앞으로 언제 우리가 다시 좋은 관계로 이어질지 모르는 삶에 대한 겸손함으로.
동시에 현재 나와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는 이들에 대해 생각한다. 요즘 제일 내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적당한 거리'이다. 코로나로 가정보육을 하며 나의 두 아이가 그렇게 버겁고 때때로 밉기까지 했다. 코로나로 연휴나 주말에도 집에서만 하루 종일 붙어 있으니 남편과도 사소한 시비가 종종 붙었다. 그런데 첫째를 유치원에 보내기 시작하고, 날이 풀려 주말에 남편과 각자 동네 산책이라도 다녀오니 그렇게 사이가 좋아질 수 없다. 잠깐 서로 보지 않는 시간 동안 사소한 서운함이나 힘든 마음이 녹아들고 다시 마음의 힘이 회복되기 때문이다. 헤어진 잠시 동안 서로의 마음을 헤아려볼 수 있는 여유도 생기고 살짝 애틋하고 보고 싶기도 하다. 다시 만나면 잘해줘야지 하는 반성과 다짐도 하게 된다.
반면 코로나에 신생아 육아를 하며 친구들을 아주 오래 못 만나고 있다. 십 년 넘은 우리 관계에 잠시 얼굴 못 보는 것쯤이야 하며 처음에는 안일하게 생각했다. 그러나 카톡으로 주고받는 안부는 점점 진부하고 형식적으로 변해갔다. 나도 하고 싶은 말들이 쌓여갔고 상대방도 마찬가지였다. 대화가 줄어들자 마음도 소원해지는 느낌이 들었다. 그래서 좀 쑥스럽지만 전화나 영상통화, 줌 모임을 시도하기 시작했다. 그게 뭐라고, 카톡으로 대화할 때보다 목소리를 들을 때가, 목소리만 들을 때보다 영상통화나 줌으로 얼굴을 볼 때가 훨씬 반갑고 친밀하게 느껴졌다. 관계라는 게 한 번 멀어지기 시작하면 순식간에 멀어질 수 있구나 싶었다. 때때로 거리를 좁히기 위한 노력들이 소중하단 생각이 들었다.
또한 나는 요즘 새로운 관계들을 조금씩 맺고 있다. 첫째 봄이가 유치원에 가기 시작하면서 같은 유치원을 보내는 엄마들을 새로 사귀게 되었다. 코로나와 어린 둘째 육아로 따로 사람들을 만나기 쉽지 않은데, 첫째를 등하원하는 길에 매일같이 마주치는 엄마들과 소소한 대화를 나누는 게 그나마 하루 중 유일하게 가족이 아닌 사람과 하는 관계 맺기인 것이다. 또한 첫째가 하원하고 놀이터에서 삼십 분이고 한 시간이고 죽치고 놀면 엄마들이 할 수 있는 것은 눈으로는 아이를 지켜보며 입으로는 서로 대화하는 것이다. 신기하게 새로 사귀고 있는 동네 엄마들 가운데 세 명이나 간호사이다. 나는 주변에서 간호사라는 직업을 가진 사람을 개인적으로 처음 사귀는데, 세 사람이나 같은 직업이다 보니 그 직업에 대해 새롭게 알게 되는 것이 많다. 그리고 괜히 간호사에 더 친근감이 생기고 그 직업에 대한 긍정적인 인식이 생긴다. 사람을 사귄다는 것은 하나의 우주를 만나는 것과 같다는데 절대 과장된 말이 아니란 생각이 든다. 어릴 때는 사람을 사귈 때 내 마음의 창문을 먼저 확 열어서 상대방에게 나를 다 보여주며 다가갔는데, 나이가 들수록 그런 것이 조심스럽다. 단순히 나만의 관계가 아니라 딸아이의 관계가 얽혀있어서 그렇기도 하고, 어른이 되니 자꾸만 걱정과 경계심이 커져가는 것도 있다. 그래도 상대방도 나와 같은 마음이려니 생각하며 먼저 조금씩 마음을 열어가려고 노력 중이다. 어쩌면 지나간 관계보다 앞으로 새로 만날 관계가 삶에서 더 소중하고 오랫동안 의미 있을 관계일지 모르므로.
관계에 대한 유명한 시가 있다. 어린 시절부터 여러 번 읽었는데도 그때마다 감탄한다. 학기 초에 학생들에게 이 시를 읽어주며 말한다. 아인슈타인이 한 말로 '인생을 살아가는 두 가지 방식이 있다. 하나는 모든 것을 기적이라고 믿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그렇지 않는 것이다'는 말을 소개한다. 그리고 그 수많은 학교 중 우리 학교에서 이 시간 우리가 만난 기적을 나는 일 년간 소중히 여길 것이라며 잘 부탁한다고 말한다. 그 시는 바로 정현종 시인의 <방문객>이다.
사람이 온다는 건
실은 어마어마한 일이다.
그는
그의 과거와
현재와
그리고
그의 미래와 함께 오기 때문이다.
한 사람의 일생이 오기 때문이다.
부서지기 쉬운
그래서 부서지기도 했을
마음이 오는 것이다 - 그 갈피를
아마 바람은 더듬어 볼 수 있을
마음,
내 마음이 그런 바람을 흉내낸다면
필경 환대가 될 것이다.
-정현종, <방문객>
하버드에서 졸업생을 대상으로 한 종단연구에서 결국 행복에 가장 영향을 미치는 삶의 요소는 '관계'라는 책을 읽은 기억이 있다. 우리 모두 부서지기 쉬운 마음끼리 만나 부대끼며 살아간다. 그럼에도 서로를 통해 위로와 격려를 받으며 살아갈 용기를 얻기를 소망해본다.